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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Nov 21. 2018

가성비

가성비의 시대

어떤 유행이 주목할 만한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 바로 우리 엄마다. 

며칠 전 홈쇼핑으로 주문했던 옷을 받아 보면서 엄마가 말했다.

“가성비 갑이라고 하더만은 이게 진짜 가성비 갑이네.”


늘 절약하는 것이 몸에 벤 엄마는 가성비를 말할 수는 있어도 최고라는 의미로 ‘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가성비 갑’ 그 자체가 한 덩어리로 엄마 머릿속에서 나왔고, 엄마가 언급했다는 건 세대를 아우르는 대세인증이다.


조금만 둘러봐도, 물건은 물론이고 음식, 관광지, 심지어 운동 선수까지 ‘가성비’라는 말이 붙은 걸 볼 수 있다. 선택을 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고려하던 요소가 부쩍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침체된 경기에 겉멋은 버리고 본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일까? 잘 모르겠다.


‘단기 속성’, ‘족집게’, ‘한 달 완성’……. 학원가를 걷다보면 자주 볼 수 있으며 이미 익숙한 글귀들이다. 하나 같이 인풋 대비 아웃풋을 내세우며 학부모들의 현명한 선택을 호소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노벨상을 받은 교육 방식이라도, ‘초단기 속성 족집게 수업’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적지 않은 돈을 교육에 투자하는데,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달리 선택이 없어서 일단 흐름에 몸을 맡기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학원 교무실 구석의 복사기가 눈에 들어온다. 수업에 쓸 자료를 학생 수 만큼 신속하게 착착 내뱉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어쩌면 지금 이 흐름의 저 쪽 끝에는 거대한 복사기가 우뚝 서있지 않을까. 빈 A4용지 처럼 학원으로 들어가자마자, 전달할 지식이 입력 된 채로 줄줄이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효과도 확실하고, 지도하는 교사와 공부하는 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을 없애다시피 최소화한 효율성의 끝판왕이다.


비현실 적인 얘기지만, 이걸 교육이라고 부르기를 망설인다면, 인풋과 아웃풋 그 사이에 교육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 불안한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효율성을 최고의 척도로 여기는 이 세태가, 교육을 대하는 학부모들의 생각과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걱정이다. 밤새 열심히 해서 만점 받은 아이가, 벼락치기로 운좋게 90점 받은 아이를 부러워하는 게 현실이다.


오늘도,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질문을 하는 학생과, 다 됐고 지름길을 알려달라는 학생과, 시험에서 찍은 답이 맞다고 환호하는 학생 앞에서, ‘야들아…….’하다가 말아버린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내 고민까지 안길 수는 없다.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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