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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Jan 03. 2019

[가정법] 현재의 반대 라면서 왜 굳이 가정법 과거를?

배우고도 제대로 쓰지를 못했던 표현

’현재의 사실과 반대’라면서 가정법 ‘과거’?

가정법 구문은 그냥 공식처럼 외워서 대입하는 식으로 배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무리 설명을 듣고 요점 정리를 보아도 ‘현재 사실과 반대되는 걸 말할 때는 가정법 과거를 쓴다’는 말은 이해는 해도 공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말은 가정법 과거든 현재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부자라면 차를 살 수 있을 텐데. 
= 내가 부자였다면 차를 살 수 있을 텐데.

인과관계를 뒤집지만 않으면, 시제도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이 때문에, 가정법 과거 구문을 해석하는 것도 ‘-였다면, -했을 텐데’인지, ‘-였다면, -할 텐데’인지(이러면 가정법 과거완료와 혼합 가정법과 겹친다), 헷갈려 하는 학생들도 있다. 도대체 현재 사실의 반대와 과거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원어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길래 자연스럽게 ‘가정법 과거’를 쓸 수 있을까?


지금과 다른 지금

가정법을 쓰는 상황부터 들여다보자. ‘만약 -라면, …할텐데’ 처한 상황에 대한 불만족과 아쉬움이 대부분이다. 안타깝게도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 사는 우리는, 다른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위안을 얻는 수 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은 인지하자마자 바로 과거가 되어버리고, 미래는 계속해서 얼굴을 들이민다. 새로운 기회를 얻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그래서 ‘어바웃 타임’과 ‘나비 효과’ 같은 영화는 매력적이다.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특정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현실이 마음에 안 들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고, 다른 선택을 하고,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하려고 한다.


그들의 행동에 가정법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가 있었다. 그들은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과거로 간다. 왜? 과거를 바꿔야 다시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이 왔을 때, 다른 지금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 변화를 주는 건 다가올 미래를 바꿀 뿐이다.


가정법도 마찬가지다. 현재와 다른 상황을 가정하고 싶은가. 그럼, 과거를 손보면 된다. 지금 이 상황이 되는데 제일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그 순간을. 또는,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그 순간을. 그런 다음, 바라던 상황을 그리면 된다.


If (주어) (동사의 과거시제) -, (주어) (조동사의 과거시제) 동사원형 -.

그럼 가정법 구문이 어떻게 해서 우리가 배운 공식의 형태가 되었을까.

‘가정법 과거’라고 하면 ‘if절’에 과거 시제를 쓰고, ‘가정법 과거 완료’라고 하면 과거 완료 시제를 쓴다. 그래서 ‘가정법’이라는 명칭은 ‘if절’을 쓰는 법을 뜻한다. ’if’라는 접속사를 써서 ’만약 -라면’이라는 뜻을 가진 부사절을 만들고, 그 가정에 의해서 벌어질 상황을 주절에 나타내는 것이다.

If (주어) (동사의 과거시제) -, (주어) (조동사의 과거시제) (동사원형) -.
If (주어) (had 과거 분사) -, (주어) (조동사의 과거시제) (have 과거분사)-.

앞에서, 다른 현재의 상황을 그리기 위해 과거를 가정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럼 주절에는 바뀐 현재를 그리므로 현재시제가 와야 하는데, 조동사의 과거형이 왔다. 이건 어떻게 봐야할까?


조동사의 과거시제는 항상 과거를 뜻하지 않는다. 조동사 원형일 때 보다 말에 힘이 빠지고, 추측하는 뉘앙스를 나타내기도 한다. 공손한 의미를 위해 동사의 과거형을 쓰는 것도 같은 의미다.

Can you do me a favor? (제게 좋은 일 해줄 수 있나요?)
Could you do me a favor? (제게 좋은 일 해줄 수 있으시겠..죠?) (과거 아님)

따라서 주절의 ‘(주어) (조동사의 과거시제) (동사원형) -.’는 현재 상황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가상의 일이기 때문에 그냥 현재시제를 쓰지 않고 약간 힘을 뺀 조동사의 과거시제를 쓴 것이다.


가정법 과거완료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바꾸고 싶으면, 그 과거보다 더 이전의 순간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과거보다 더 이전의 과거, 소위 ‘대과거’라고 불리는 ‘과거완료’를 ‘if절’에 쓴다. 주절의 ‘조동사 have 과거분사’는 과거의 일에 대한 추측과 아쉬움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이다.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동사의 과거시제를 쓰지 않고 조동사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ex) would (- 일 것이다), would have p.p. (- 였을 것이다)

문제는 혼합 가정법이다. 혼합 가정법은 부사절은 ‘가정법 과거완료’인데 주절은 ‘가정법 과거’에 쓰이는 형식이다. 의미상으로는 ‘가정법 과거’와 의미상 큰 차이는 없어보인다. ‘가정하는 절이 지금 이 순간과 시간적으로 얼마나 거리가 있느냐’에 따라서 ‘가정법 과거’ 또는 ‘혼합 가정법’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If (주어) (had 과거 분사) -, (주어) (조동사의 과거시제) (동사원형)-.

이렇게 ‘현재의 사실과 반대되는 걸 그리는데 왜 가정법 과거를 쓸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해서 가정법을 살펴봤다. 원어민을 붙잡고 물어본 것도 아니고 논문을 찾아본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정말로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 이상 납득이 가는 대안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정법은 문제를 풀거나 해석은 기가 막히게 잘하면서, 실제로 자신있게 쓰지 못하는 구문 중에 하나다. 우리 말에 익숙해져 있어서 대부분 조건절 형식(If 주어 동사의 현재시제 -)으로 문장이 내뱉어질 것이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가 바뀌고 현재를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는 것, ‘조동사의 과거형은 늘 과거만 의미하지 않고 추측할 때도 쓰인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잘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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