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밍웨이 Apr 20. 2020

너를 생각하며 내가 바라는 것들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나’가 보내는 편지

혜민아!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써본다. 누구보다 너를 잘 아는 내가 어쭙잖은 조언을 하여 괜한 반항심을 건드릴까 걱정이 되기도 해, 너는 자존심이 세고, 누가 시키면 더 하기 싫어하니깐. 그래도 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몇 글자 써 내려가 본다.


7년 전의 너의 모습을 기억해. 너는 경찰이 될 거라고 했었지, 무릎이 나온 추리닝 바지에 뒤꿈치가 해진 운동화, 손으로 대충 훔친 머리카락과 삶의 무게처럼 보이는 책가방을 메고, 피곤한 몸을 버스에 맡긴 채 학원을 오가며 공부를 했었지. 버스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자도, 하차할 곳에 이르면 자연스레 눈이 떠지는 게 신기하다며, 종점까지 가본 적은 없다며 자랑하듯 내게 말했던 모습이 선하네.


그렇게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의 절반을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었지. 막연히 멀게만 느껴지던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뎌 갈 때, 너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어. 경쟁률이 70:1인데 그 한 명이 될 자신이 없다고, 공부를 해도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고, 엄마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 부담스럽다고, 그렇다고 다른 것을 선택할 용기도 없다고...


그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 너 스스로를 부정하며 한없이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네가 느껴지더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마음을 터놓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내는 너의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그 모습은 안쓰러웠지만, 나는 알고 있어. 네가 경찰이 되고 싶어서 선택한 길이 아니란 걸.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서도 아무런 취업 준비가 되지 못하여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엄마의 권유가 네가 선택한 길인 것처럼 편승하여 시작하였는데 어쩌면 이 시련은 이미 예고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쓰러질 듯이 위태로운 너...


시험이 뭐라고, 혹여나 삶을 포기할까 봐
불안했던 너....

어떤 순간이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갈대같이 한없이 흔들리던 네가 뿌리 깊은 나무로 변해있더라, 너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위로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있다고 했었지. 나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니? 그동안 ' 합격의 방법'을 고민했던 게 아니라 '불합격에 대한 두려움'을 걱정했었다며, 가져온 책에 나에게 보여주었지.

'도전해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수험생이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일 뿐이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맞아. 네가 울면서 내게 말했을 때도, 너는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속 공포에 휩싸여 있었던 거야.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느끼고 있구나 싶더라. 역시 책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은 우주같이 무한한 거 같아. 그렇게 네 삶을 보살펴주니 긍정이 싹트면서 시험에 대한 용기가 생기는 게 보이더라. 합격을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이 보이더라.



봄바람이 불어올 무렵, 이제는 합격 소식이 들리겠거니, 네게 말 못 하고 속으로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어찌나 기쁘던지!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에 한없이 기뻤고, 온 마음으로 축해해 줬었지. 아주 잘했어. 네가 자랑스러웠다.


혜민아, 나는 네가 앞으로의 삶에서 결과도 중요하지만 네가 최선을 다했던 과정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단순히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준비하는 과정 속에 너 자신을 성장시키고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해. 결과는 네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지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해.


그러면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과를 이뤄내기 위한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온 우주를 감동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간절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거야.


네가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었던 그 마지막 시험을 준비했던 과정의 모습을 잊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것을 보았어. ‘제일 쉬운 게 부정입니다. 긍정은 어려운 거죠’라는 이 말이 와 닿더라. 그래서  ‘긍정’이라는 사고를 지속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해. 네가 책 읽기를 통해서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찾아갈 때 정말이지 굉장히 기특했었어. 이 습관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길 바란다.


혼자서 많이 이야기했지? 괜히 부끄러웠던 기억들을 들춰낸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너를 위한 조언을 한다고 했지만, 이미 내가 바라는 모습을 너는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멋진 결과로 증명해 주었어. 그런 너의 모습을 잘 지켜나가길 바란다.


너의 삶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도록, 내가 항상 기도할게. 사랑하고, 응원한다.


너의 영원한 조력자가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을까?(클루지 제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