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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린 Mar 06. 2022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3월의 바람

3월에 부는 바람에는 기묘한 느낌이 있다. 차가운 바람인 줄 알고 서둘러 재킷을 여밀려고 손을 들때 쯤이면 이상하게 뒤끝이 찝찝한 따뜻함이 남아있는 그런 바람이 부는 것이다. 그럼 나는 재킷을 여며야 하나 아니면 벗어야하나 어리둥절해 있다가 이내 재킷은 까맣게 잊어버리곤 뒤숭숭하고 설레이며 혼란스럽고 두근거리는 기분과 함께 거리에 남겨진다.


20살 대학교에 막 입학한 당시 친하게 지내던 초등학교 동창 A가 있었다. A와 나는 새내기의 풋풋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지독한 염세주의자들로, 당시 대학교라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잔잔한 우울에 잠겨 살았다. 우리는 당시 2012년 12월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우스개소리에 진지하게 d-day를 세며 '우리만 죽지 않고 다같이 죽어서 다행이야' 라는 정신나간 소리를 주고받기도 했다. 3월 말 A와 홍대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귀가하는 도중 우리는 이 기묘한 바람을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A와 나는 동시에 입밖으로 조용하게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A와 나는 한참동안 이 정의할 수 없는 바람에 대해 토론하였다. 왜 3월 달에 부는 바람은 사람의 기분을 이토록 헤집어놓는 것인지. 토할정도로 울렁이게 만드는 것인지. 이내 스마트폰을 열어 우리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하였다. 3월 달이 되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원치않게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것. 과학적인 원인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침착해졌지만 매년 같은 불안을 겪을 생각을 하니 동시에 기분이 가라앉기도 하였다. 난 이 당시 3월의 바람을 들이쉬고 불안으로 내쉬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나는 각종 대외활동, 동아리 등단체 생활에 완벽 적응하여 온갖 술자리에 참석하는 프로 술꾼이 되어있었다.  중에서도 바깥에서 마시는 야장 술자리를 가장 좋아했다. 매장 안에 자리가 남아있지만 술기운을 빌려 굳이 주인 아주머니께 바깥에 자리를 펴줄  있는지 너스레를 떠는 애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야장 술자리는 날씨가 산뜻한 3월에서 5, 9월에서 11 정도까지 밖에 즐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여름에는 어찌저찌 더위를 달래가며 야장을 즐기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추위가 극심한 한겨울에는 바깥에서 마시는 것은 자살 선언과 다름 없어 2월까지는 야장을 아예 즐기지 못하는데,  기묘한 바람이 부는 3월이   쯤이면 슬금슬금 바깥에 자리를 까는 가게들이 하나 둘씩 생긴다. 이런 가게들을 나만 주의깊게 보는 것은 아니었던 것인지 자주 술잔을 기울이던 주변 친구들은 콧바람에 따뜻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질 때면 성급하게 인스타 디엠을 보내곤 했다. 그럼 나는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고  술값들을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 항목에 뻔뻔하게 얹어 놓는다. 3월에 야장을 즐기지 않는 것은 범죄라는 변명과 함께.  이제  3월의 바람을 들이쉬고 즐거움으로 내쉰다.

바람이 분다고 디엠을 주신다니요


사람의 마음이 어찌 이리 간사한지 모를 일이다. 10 동안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묘한 바람이 더욱 지랄맞아지기라도  것일까? 모르겠다.  가지 알게   10 동안  기묘한 바람을 맞을 때면 야장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를 떠올리는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야장의 계절에만 고정비가 늘어나는  요상한 가계부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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