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래퍼들이 타던 그 차에 대해
2000년대 힙합 뮤직비디오에 단골로 등장하던 자동차가 있다. 낮게 달리다가 오토바이 묘기를 부리듯 느닷없이 앞바퀴를 힘차게 들어 올리는 자동차. 이름하여 로우라이더(Lowrider)다. 들썩이는 자동차의 리듬에 맞춰 랩을 하고 몸을 들썩이던 래퍼들의 움직임은 그 시절 힙합 뮤직비디오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한 게 생긴다. 그들은 왜 그런 자동차를 몰았던 걸까? 로우라이더와 웨스트 코스트 힙합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법을 피해 만들었던 자동차, 로우라이더
로우라이더는 1940년대 처음 등장했다. 주인공은 멕시코계 미국인들. 차체를 의도적으로 낮췄다. 목표는 차를 스무스하게, 가능한 천천히 몰며 다니겠다는 것. 여기에 로우라이더 오너들은 차 내부와 외부에 화려한 아트워크를 입히고 개인의 입맛에 맞게 비주얼을 커스텀하며 독특하면서도 심미적인 개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멋을 부리는 것이 조금씩 퍼지며 그 자체로 하나의 커뮤니티가 완성됐다. 로우라이더를 하나의 자동차가 아닌, 하나의 문화로 보는 이유다.
그런데 차체가 낮기만 했던 로우라이더에 특별한 기능이 더해졌다. 위아래로 통통 튀는 기능이 바로 그것. 이 기능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론 아귀레(Ron Aguirre)라는 엔지니어였다. 때는 1950년대, 차체를 기준치 이하로 낮추는 게 불법이 되자 아귀레는 묘수를 냈다. 차체를 유압장치로 높여서 단속을 피해 보자는 거였다. 아귀레는 특정 프레임을 공유하는 자동차와 유압장치의 궁합이 좋다는 걸 알아냈고, 유압장치 작동을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해 바퀴도 작은 걸 달았다. 클래식 자동차인데 묘하게 차체는 낮고, 바퀴는 작은데 특정 버튼을 누르면 차체가 올라가며 앞쪽이 퉁퉁 튀는 로우라이더는 그렇게 탄생했다.
웨스트코스트 힙합과 로우라이더
로우라이더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LA의 라티노 커뮤니티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자연스럽게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눈에 띄었고, 그 중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멕시코계 미국인을 따라 자연스레 로우라이더 커스텀을 시작했다. 변곡점은 1980년대에 찾아왔다. LA에 코카인이 크게 유행(Crack Epidemic)한 후, 갱단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등에 업고 등장한 갱스터 랩 덕분에 1990년대의 LA는 힙합 음악과 문화의 허브로 자리했다.
미디어의 조명을 받게 되자 강렬한 비주얼이 필요했던 뮤지션들은 로우라이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아무나 가질 수 없고, 심미적으로 훌륭하며, 강한 개성을 드러내는 로우라이더만큼 훌륭한 소품은 없었다. 힙합이 자동차를 통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자주 드러냈다는 걸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했다. 미 서부의 갱스터 랩 뮤직비디오에서 로우라이더가 자주 등장했던 이유다.
로우라이더는 분명 힙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과거 갱스터 랩의 이미지에 로우라이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멕시코계 아메리칸을 중심으로 한 로우라이더 커뮤니티는 갱과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술, 마약, 갱을 하지 않는다는 운동도 존재했다고 한다. 어쩌면 미디어 때문에, 힙합 때문에 로우라이더는 갱의 하위문화라는 오해를 받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에 로우라이더를 그렇게 사랑하던 힙합은 더 이상 로우라이더를 찾지 않는다. 이제는 슈퍼스타가 되어 막대한 부를 챙기고 로우라이더가 심심해진 그들은 람보르기니, 부가티, 포르쉐 같은 슈퍼카로 로우라이더를 대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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