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이 전성기를 맞이했던 90년대 초반, 많은 래퍼와 댄서가 사랑한 스트릿 웨어 브랜드가 있다. 그 브랜드는 바로 칼카니(Karl Kani). 래퍼들은 칼카니의 옷을 입고, 때로는 랩 가사 중간에 칼카니의 이름을 넣으며 브랜드에 대한 존중심을 드러냈다. 칼카니가 대체 어떤 브랜드이길래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걸까?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칼카니라는 브랜드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칼카니는 1989년 칼 윌리엄스가 창립한 브랜드다. 브루클린의 플랫부시 출신인 칼 윌리엄스는 어려서부터 브레이킹 댄스, 랩, DJ를 하며 스트릿 컬처에 흠뻑 빠져 지낸 스트릿 키드였다. 아쉽게도 음악적으로 빼어난 재능을 보이진 못했지만, 손재주는 뛰어났고, 사랑하는 스트릿 컬처의 일원으로 남고 싶었던 칼 윌리엄스는 의류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칼 윌리엄스의 옷은 입소문을 타며 점차 인기를 얻었다. 브랜드 칼카니의 탄생이었다.
칼카니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파는 의류 브랜드가 아니었다. 스트릿의 힙합 스타일을 빠르게 반영하는 한편, 몇 가지 디테일을 더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핏을 선보였다. 당시 칼카니의 대표적인 상품은 배기진. 크고 늘어지는 청바지가 인기를 끄는 걸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의 핏을 반영한 의류 브랜드, Started from the bottom의 정신을 가진 칼카니를 많은 래퍼와 댄서들이 알아본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칼카니를 가장 사랑한 아티스트는 단연 투팍이다. 투팍은 칼카니를 입고 많은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화보도 찍었다. 아직도 ‘칼카니’ 하면 ‘투팍’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다. 투팍은 그렇게나 칼카니를 입으면서도 창립자 칼 윌리엄스에게 돈 한 푼 요구한 적 없다고 한다. 흑인이 거리에서 시작한 브랜드를, 컬쳐를 지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칼카니가 스트릿을 기반에 둔 브랜드라는 이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시 스트릿 웨어는 유명 캐주얼 회사가 꽉 잡고 있는 시장이었다. 타미 힐피거,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DKNY 등이 대표적이다. 모든 걸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대형 브랜드였지만, 부족한 게 있었다. 바로 스트릿과의 스토리였다.
반대로 칼카니는 스토리가 넘쳐흘렀다. 창립자가 힙합, 스트릿 컬처와 밀접했고, 스트릿의 고객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표현하는 브랜드였다. 칼카니는 스트릿 컬처를 일구는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아티스트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스트릿 컬처의 소스를 디자인으로 풀어낸 칼카니를 존중했다. 아티스트와 브랜드가 서로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같은 뿌리라는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칼카니는 힙합 스트릿웨어의 선구자로 탄탄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때마침 아이덴티티 브랜드가 필요했던 힙합과 칼카니의 궁합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당대 최고의 힙합 스타들은 물론, 미고스나 투체인즈 같은 요즘의 힙합 스타들도 자랑스럽게 칼카니의 옷을 걸칠 수 있는 이유이다.
요즘 칼카니는 편집샵과 온라인을 중심으로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규모나 확장세 모두 아쉽게도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당시만큼의 영향력을 보이거나 높은 세일즈 수치를 기록하지도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칼카니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칼카니의 유산은 결코 판매량에 있지 않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브랜드 스토리를 지니고 있고, 많은 브랜드가 사라져 간 스트릿의 영토에서 여전히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하나의 역사이다. 변하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칼카니라는 브랜드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힙합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는 일로 계속 남지 않을까. 스트릿웨어의 갓파더라는 칭호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돈으로 유산은 살 수 없습니다. 역사 또한 살 수 없습니다.
Money can't buy legacy, and it can't buy history,
본 글을 작성한 더트(DIRT)는 스트릿 문화에 기반을 둔 스트릿웨어 컬쳐 브랜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