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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애플이 새로운 디자인 스타일을 내놨다

스큐어모피즘에서 미니멀리즘, 그리고 리퀴드글라스

by 비범한츈

지금에 와서 보면 ‘Flat’한 미니멀한 디자인은 당연한 듯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디자이너가 Flat 디자인을 제안하고 실제 양산 제품에 적용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간을 덜 들인 것 같다''완성도가 낮아 보인다'는 편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포토샵을 가스라이팅하던 스큐어모피즘의 시대

2013년, 내가 입사하던 시기는 디자인 트렌드의 큰 전환기였다. 아이폰을 필두로 스마트폰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사용자에게 낯선 기기를 어떻게 친숙하게 경험시키느냐가 업계의 가장 큰 과제였다. 그 해답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었다.

애플의 초기 아이콘들은 실제 사물을 기반으로 정교하게 표현되었고, 이를 통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접근은 하나의 철학이자 디자인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수많은 회사가 따라갔다.

나 역시 스마트 TV GUI 디자이너로 입사해 스큐어모피즘을 직접 경험했다. 홈 화면의 아이콘 하나에도 수십 개의 포토샵 레이어가 쌓여 있었고, 광고 영역에는 나무 질감으로 만든 선반이, 팝업 버튼에는 볼록한 입체감이 더해졌다. 구분선조차 돌출된 형태로 표현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과도하다 싶을 만큼 ‘포토샵을 가스라이팅’하는 디테일이 표준이었던 시기였다.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 GUI



2013년 애플의 화려한 변신— 미니멀리즘의 표준을 만들다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을 요구하던 애플이 2013년 돌연 스큐어모피즘의 정반대 콘셉트인 미니멀리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의 해상도가 나날이 발전되는 상황에서 미니멀리즘은 언뜻 상충된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급격히 늘어나는 플랫폼과 앱 디자인을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니멀리즘이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었다.


2013년 9월 18일 (iOS7) - 아이콘 스타일이 지금과 매우 유사하다.


스큐어모피즘에 익숙한 사용자들은 불호를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더 이상 포토샵을 가스라이팅하지 않아도 되었고, 실제로 디자인에 투입되는 시간이 비교적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디자인에 미니멀리즘을 적용하기까지..

애플이 iOS7을 발표하던 무렵, 이미 스타트업들을 필두로 빠르게 미니멀리즘으로 전환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다음 출시 예정인 스마트 TV GUI에 이 콘셉트를 적용해야 했다. 마침 TV에도 OS가 본격적으로 탑재되면서 다양한 앱 디자인을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미니멀리즘은 필수적이었다.

문제는 스큐어모피즘에 익숙해진 윗선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내부 설득을 위해 “왜 미니멀리즘으로 가야 하는가”라는 설명 슬라이드를 따로 준비했다. 내가 담당한 발표의 요지는 이랬다.


지금 디자인 업계에는 두 개의 큰 산이 있다. 하나는 스큐어모피즘, 다른 하나는 미니멀리즘. 그리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미니멀리즘의 산을 오르고 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야 한다.


오랜 시간 설득 끝에 결국 미니멀리즘이 적용된 스마트 TV GUI가 세상에 나왔고, 지금까지도 그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2025년 역시 애플 - 리퀴드 글라스
Liquid Glass

2014년 이후 꽤 오랜 기간 미니멀리즘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블러 처리나 반투명 효과가 도입되었고, 단순해진 아이콘을 보완하기 위해 가이드 이미지가 더 화려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2025년 6월 WWDC에서 애플은 리퀴드 글라스(Liquid Glass)라는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발표했다. 2013년 이후 가장 큰 변화였으며, GUI 디자이너로서 오랜만에 눈이 즐거워지는 순간이었다.


2025 리퀴드 글라스Liquid Glass

리퀴드 글라스는 투명하면서도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질감을 실시간으로 구현해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듯한 깊이와 감각을 전달한다. 미니멀리즘 위에 풍부한 감성 표현을 더하며, 스큐어모피즘 시대의 장점을 다시 불러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자, 이제 애플이 했으니 이제 또 우리 차례가 되었다.


리퀴드글라스는 단순히 미니멀리즘의 다음 단계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스큐어모피즘이 추구하던 리얼리티와 입체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라 봐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하드웨어 성능의 한계로 정적인 그래픽에 머물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효과를 실시간 기능으로 구현해 냈다. 콘셉트가 아니라 진짜 양산되는 기기들에 적용했고, 심지어 구형 기기들에도 완벽하게 동작하니 애플은 참으로 대단하다.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데로 모든 게 구현되니 디자이너도 참 신날것 같다.


자, 이제 애플이 했으니 이제 또 우리 차례가 되었다.

과연 우리도 따라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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