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채 Nov 11. 2022

문제없이 문제 풀기

할말하않 에피소드 나누기 

편협하고 협소한 경험에 기반하여 작성된 똥글입니다.


01. 디자인 스무고개 대작전


우리는"최소한 마라탕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 가게의 배달비는 얼마인지 얼마나 매운지 리뷰를 보고
사진도 확인하고 가게의 별점과 배달전문 매장인지까지 확인하고
마라탕을 배달시킨다

그런데 디자인은 이상하게도 스무고개 시스템이 일반화되어있다

그게 마치 "디자인을 잘한다"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커뮤니케이션도 디자인의 일부이지만)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고역인 게 사실이다

말을 안 하고 뇌파 주문하나 보다

어떤 클라이언트들은

콘텐츠의 내용도 정해지지 않고, 결과물만을 요구한다


대뜸

ㅇㅇ시, ㅁㅁ협회입니다 현수막, X배너, 리플릿 내용은 없는데 일단 시안부터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알아서 좀 해주실 줄 알았는데, 경험 (혹은 경력)이 아직 모자라신가 봐요(이런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


무슨 내용인지, 얼마나 시간이 드는 작업인지 알 방법이 없다. 당연히 견적도 내줄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레퍼런스도 없다.(시안을 레퍼런스랑 같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담당자의 머릿속에도 완성본이 없다.

그저 날짜 맞춰서 뚝딱 인쇄해서 들고 사진 찍어서 결과보고서에 넣을 이미지를 만드는 용도일 뿐이다.


그저 무속신앙처럼 디자이너가 맘에 드는 걸로 떡하니

재물을 바치면 흡족하구나 돌아서고 싶은가 보다


협회 로고와 아동 대상 홍보물이라는 실오라기 같은 내용 하나로

(제작 예시 물이나 포트폴리오가 아닌) 시안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야말로 문제없이 문제를 풀어달라는 말이 된 것이다.


디자이너는 뭐든지 만들어 줄 수 있는 지니쯤 여기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 속을 알아맞혀 보라는 무당한테나 물어봐라.




02. 책임전가계의 가마니, 디자이너

기획과 제작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러기에 서로를 존중해야만 한다.


좋은 기획은 제작마저도 쉽고 효과적으로 만들어 주고,

나쁜 기획은 제작마저도 어렵고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생각보다 회사 내 디자인팀의 파워가 엄청나서

회사의 큰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저, 기획팀이 딜 레이시 킨 날짜만큼, 디자인팀이 더 빠르게 메꿔야 하거나

론칭 날짜에 쫓겨 인쇄를 맡긴 공장에 최최최최종을 맡기고도, 전전긍긍하는 것도 디자이너다.


대부분의 제품, 콘텐츠의 제작과정이 그렇듯이 기획의 과정이 거쳐야 제작이 시작된다.

그러다 보니 데드라인과 맞닿들어 있는 게 당연하다.

일이라는 게 딜레이 되는 경우도 많고, 짜낸다고 마라톤 회의를 한다 해도

갑자기 대단한 크리에이티브가 튀어나오진 않는 것 다 아니까

왜 종착역은 디자이너일까..?

하지만 제작이 촉박해졌을 때, 거꾸로 조려는 이상한 행동은 하지 말길 바란다.

기획 미리 안 내놓는다고 닦달받고 싶지 않으면




03. 뒤틀린 연옥의 알 잘 딱 깔 센

누구든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일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다는 것 또한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말한 대로 잘 이해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로 회의를 하고, 회의록을 똑같이 나눠갖는데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엄한 소리를 하는 담당자들 많다.


혹은 자신이 설명해주겠다며 요약을 한 건지 만 건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게 적어놓은(언어영역 해석 같은) 구조하나 없는 글자 나부랭이

로고 파일은 hwp에 넣은 이미지를 활용하라며 던져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조각 파일을 받으면 당연히 역으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레퍼런스들을 보여주며, 의뢰인 본인도 모르는 머릿속 완성품을 찾아가는 수밖에

이런 대화마저 귀찮게 여기는 분들을 만나면,

사실 더 이상 해드릴 말이 없다.


미팅을 다녀온 후 나의 모습을 모티브 한 것만 같은 뒤틀린 황천의 쿠기 요리이다.
A: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가요?

B: 알아서 좀 잘해주실 줄 알았는데 기대에 못 미치네요.

A: (뭘...? 그래 돌아가셔라 나도 미쳐버릴 노릇이다.)



작가의 이전글 빨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