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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미지 Jun 01. 2021

‘정치꾼’의 생존 방법, <더 게이트>

아쉽씨네(Cine)-아쉬운 영화 다시 보기<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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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볼만한 영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대. 그건 단지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라서가 아니라, 그대가 영화의 홍수 속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대의 취향이었을지도 모르는 영화들은 막대한 P&A(Print & Advertisement, 배급 및 마케팅비의 준말)를 등에 지고 극장을 지배하는 대형 한국영화, 프랜차이즈 외화들에 달리, 빈약한 P&A 혹은 잘못된 마케팅, 그로 인한 낮은 인지도로 개봉 사실조차 묻힌 채 사라졌거나, 수많은 우려와 고민 끝에 제 때를 놓친 채 극장을 지나쳐 소리 소문 없이 VOD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VOD 출시 스케줄만 봐도 이런 외화들이 한 주에만 두 자릿수에 이르다 보니, 보물을 찾아 정글로 들어가는 모험가의 마음으로 영화 VOD 메뉴를 샅샅이 뒤지지 않는 이상 그대가 원하던 그 영화와는 영영 랑데부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일상에 지쳐 식사 메뉴조차 오래 들여다보기 어려운 그대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색다른 영화를 찾기를 원하는 그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그대가 놓쳤을만한 좋은 영화들을 소개하는 목적입니다. 만에하나 이 중 하나라도 그대의 마음에 든 영화가 있다면, 검색과 알고리즘을 통해 이를 타고 타고 그대 취향의 또 다른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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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1. ‘정치꾼’의 생존 방법, <더 게이트(2018)>


원제: El Reino (스페인어로 ‘왕국’을 의미)

국내 개봉: 2020.12.08

장르: 스릴러/ 드라마

국가: 스페인

감독: 로드리고 소로고옌
주연: 안토니오 데 라 토르레

기타: 33회 고야상 7개 부문 수상(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https://youtu.be/cVoDT-OM2T8

<더 게이트(2018)> 예고편


요즘 넷플릭스를 통해 <종이의 집>이 유명세를 타면서 스페인 콘텐츠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만, 실은 넷플릭스 이전부터도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스페인 영화들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익숙지 않은 스페인어의 장벽과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스토리와 연출로 영화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웰메이드 영화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페인의 스릴러 영화들 중에는 뛰어난 시나리오로 저예산의 약점을 극복한 영화들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최근에 계속적으로 한국영화 리메이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도 하죠.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김상경, 김강우, 김희애 주연의 <사라진 밤(2018)>은 <더 바디(El Cuerpo, 2012)>의 리메이크, 소지섭 주연의 <자백(2020)>은 <인비저블 게스트(Contratiempo, 2017)>의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더 게이트>도 그 계보를 잇는 또 다른 웰메이드 스페인 스릴러 영화입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영화상인 고야상을 무려 7개나 수상한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짐작케 하는 이 작품은 앞에 말씀드렸던 스릴러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부패 정치죠.


부정부패로 연결된 그들의 즐거운 한 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 국민에게 촉망받던 유능한 정치가 ‘마누엘’입니다. 카리스마 있는 인기 정치가인 그는 실은 부정부패한 권력을 대변하고 정경유착을 비호하며 자신이 속한 정당의 비리를 적당히 잘 감춰온 악당이자,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이죠.


영화 <더 게이트>는 이런 부패 인사들과의 견고한 관계 속에서 희희낙락하며 자신만의 왕국을 가꾸던 이런 정치꾼, ‘마누엘’이 최악의 정치 스캔들로 자신이 지켜왔던 당에서 소위 ‘꼬리 자르기’를 당할 위기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여줍니다.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분명한 피해자와 숨겨진 가해자로 이루어진, 직선적 스토리라인을 가진 스릴러들과 다르게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정치적 계산과 부정부패의 끈으로 연결된 관계들이 복잡하게 나열되죠.


책략가이자 달변가인 주인공 '마누엘'


그러나 영리한 각본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우리가 이 어려운 이야기에 스르륵 빠져들도록 만듭니다. 이 영화의 각본 콘셉트는 기본적으로 넷플릭스의 명품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하오카)>를 연상시키는데(마누엘이 하오카의 프랭크 같은 책략가 스타일이어서 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아주 서서히 텐션을 높이다가 절정에서는 보는 사람의 숨이 막힐 정도로 압박하는 이야기 전개는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의 정치 버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특히 이 영화의 백미는 주인공인 마누엘의 캐릭터의 활약을 지켜보는 데 있습니다. 마누엘은 그리 호락호락한 악당이 아닙니다. 그는 빠른 두뇌 회전과 수완을 가진 책략가이며 달변가로서 스캔들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해 가능한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죠. 그래서 배신은 기본이고 때로는 자신에게 칼을 겨눈 적들에게 거리낌 없이 협상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치부가 전국에 드러났는데도 자신은 오래된 기계의 부품일 뿐이라며 당당하게 대응하기도 하죠. 


그리고 이런 마누엘의 연기를 맡은 주연배우 안토니오 데 라 토르레는 이 모순적인 캐릭터를 영화 내내 자유자재로 갖고 놀면서 관객의 멱살을 잡고 이야기 내내 끌고 가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처음에 마누엘의 뻔뻔한 행동들을 보며 혀를 차다가 어느 순간 그의 논리에 빠져들어 그가 복수에 성공할 수 있길 응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최민식에게 그랬듯 말이죠.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연기 또한 훌륭합니다. 같은 정치꾼이거나 악덕 사업가인 그들은 처음에는 마치 가족처럼 주인공을 아끼고 추켜세우다 스캔들이 터지자마자 그를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비겁한 모습들을 각자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노골적인 악역이 아닌 일반 생활인으로서의 악역인 점을 잘 알고 그 점을 연기에서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특히 발코니 시퀀스에서는 이런 연기와 훌륭한 연출이 시너지를 내어 높은 몰입도를 만들어냅니다. 캐릭터 모두에게 동정의 여지가 없다는 점은 영화 <아수라>의 연기 앙상블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나름 신선한 결말


이 영화는 대사와 연출면에서도 여러 인상적인 시퀀스들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마지막 결말에서 관객들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하는데, 이 결말은 왜 마누엘이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이러한 내용의 결말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이 영화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소 외우기 어려운 이름들과 심심한 초반부라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영화 <더 게이트>는 조금만 참고 따라간다면 보는 사람에게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웰메이드 정치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다른 작품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이 작품이 유해진 배우 같은 연기파 주연으로 리메이크되면 신선하고 좋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바람을 남기면서 이번 리뷰를 마칠까 합니다.



※첨언 : ‘정치꾼’은 뭐고 정치가랑 뭐가 다르지? 하고 궁금하실 분들이 있으실 듯하여 말씀드리면 정치가(스테이츠먼)는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는 경세가(經世家)라면 정치꾼(폴리티션)은 국가보다 자신과 당파의 이익에 집착하는 정상배(政商輩)라 할 수 있습니다. 영국 경제학자였던 콜린 클라크는 이에 대해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라고 명쾌하게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정치가와 정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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