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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Apr 23. 2024

엄마, 저는 사는 게 즐거워요.

나는 경험해보지 못하고, 너는 경험해 본 것

"엄마. 저는 사는 게 즐거워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말했다. '사는 게 즐겁다고?' 의아했다. 사는 것이 즐거운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인데, 듣는 순간 의아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라서 저 마음은 무엇인지 잘 와닿지가 않았다. 나는 사는 것이 항상 감사하기는 했으나, 즐겁다고 느낀 적은 딱히 없다. 오히려 사는 것은 고난에 더 가까웠다. 사는 것은 엄청 힘들고, 고된 것인데 그래도 삶은 감사한 것 투성이라고나 할까. 아침에 뜨는 해도, 저녁에 뜨는 달도, 나무나 구름, 꽃 같은 것을 보면 늘 감사함을 느끼고는 했다. 물론 순간순간 즐겁고 기쁜 찰나의 경험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나에게 삶은 힘든 것이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눈에 삶은 '즐거운 것'이라니.


잠시 멈추어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 사는 게 즐거워? 그럼 최근에 즐거운 일은 뭐가 있었어?"


아이는 대답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잖아요! 엄마는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게 즐겁지 않으세요?"


두 번째 충격이 이어졌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아이에게 가장 마음속에 먼저 떠오르는 즐거운 일이었다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 내가 유일하게 영어로도 같이 외우고 있는 말씀 구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 말씀을 삶에 적용하면 아이처럼 기쁘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가장 큰 목적이 축복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이게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 감사는 한데, 기쁘다니! 아직도 나에게는 조금 어렵다.


아이가 이어서 즐거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피아노를 치는 것도 즐겁고, 테니스를 하는 것도 즐겁고.. 등등. 물론 좋지 않은 일들도 있지만 사는 게 즐거운 이유에 대해서 종알종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다. 내 자식이 사는 게 즐겁다니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리고 내 자식이 사는 게 즐겁다고 하면 앞으로 내 인생도 즐거워질 수 있는 희망이 보였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자식이 먼저 경험해보고 있으니, 이제는 내가 배울 차례이다.


그래서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노력이냐면, 습관적인 부지런함과 책임감이 쾌락의 욕구와 싸울 때 이전에는 하지 않던 선택들을 해보고 있다. 밀린 일들이 있어도 가끔은 낮잠도 자주고, 울리는 메일을 열어보지 않고 아이들과 밥 먹으며 하는 대화에 집중하고, 집이 조금 어질러져도 돌멩이로 그림을 그려보는 미술 활동을 진행하고,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예쁘기만 하다는 이유로 소비도 해보고, 매번 비싸다고 짚었다가 내려놨던 리코타 치즈도 사봤다. 노력치고는 너무 같잖은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이전의 내가 선택하던 것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0분 단위로 쪼개사는 엄마의 모습을 쭉 보는 것이 꼭 좋지 많은 않을 것 같다. 어른이 되면 너무 힘들게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 아빠처럼 저렇게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지 않으면 자기는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서 자수성가하는 것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내 성공방식을 아이에게 그대로 강요하는 순간 성공 공식은 실패의 공식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조금 유연하게 살기로 노력하고자 한다. 그렇게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자기 성찰을 해도 바꾸기 어렵던 것이, 아이가 사는 것이 즐겁다는 말 한마디에 바뀌었다. 엄마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네가 먼저 경험해보고 있으니, 이제는 엄마가 바뀌어볼게. 사랑하고 축복한다 우리 아들, 그리고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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