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화콘텐츠, 그 차이에 대하여
페이스북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의 일러스트를 발견했다. 일명 '캘리툰'. 예쁜 글씨와 수채화가 어우러진 일러스트였다.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이전 콘텐츠들을 살펴본 뒤, 무척이나 공감 가는 글이 마음에 들어 '좋아요'를 눌렀다. 작가는 꾸준히 자신의 글과 그림을 공유했고, 새로운 창작물들은 꼬박꼬박 나의 타임라인에 등장했다.
그 창작자의 콘텐츠에는 항상 응원이 가득했다. 작가의 예쁜 마음이 담긴 작품에 팬들의 예쁜 반응이 따라오는 건 당연한 일. 때로는 그의 우울한 마음이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런 게시물에는 위로의 릴레이가 펼쳐졌다. '창작자-나 우울해요' > '팬들-힘내요' > '창작자-여러분 고마워요'의 사이클. 페이지를 구독하며 한두 번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의 감정을 정확히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모두에게 '우울'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심경의 변화는 보편적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어느 날 그가 "어젯밤..."으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을 때, 그것이 또 어김없이 그의 복잡한 마음, 곧 우울과 기복, 고난과 슬픔, 분노와 증오 등 고통스러운 감정을 있는 힘껏 사실적으로 표현한 글이었을 때, 나는 '좋아요'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다시는 그 페이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창작자의 '지나치게 솔직한 표현'이 불쾌했다. 누군가가 나락으로 떨어진 순간의 기분을 묘사한 글과 그림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 당장 나 스스로의 지질함과 괴로움을 오롯이 마주하고 포용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어두운 면을 지켜보기란 사실 훨씬 더 짜증 나는 일이었다.
'나 참 힘들었어. 그래도 응원해줘서 고마워.'
분명 흔하디 흔한 내용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좋아요', 내지는 위로의 댓글이나 작품에 대한 평가 같은 소비층의 반응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조금 껄끄러웠다. 그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로 대중의 관심 + 'α', 다시 말해 돈을 버는 사람이다. 그런데 친한 친구에게서나 들을 법한 하소연을 자꾸 대중들에게 들이민다는 것은, 결국 더 이상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자신만의 고통과 아픔을 사람들에게 설득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나는 그 창작자가 자기 자신에게도 맞지만 나에게도 맞는 이야기, 즉 여러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의 콘텐츠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감정을 오로지 개인의 것으로 돌리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한없이 특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면서 이를 구분 없이 모두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그가 과연 '공감을 얻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이든 공감해주는 사람'을 원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나는 그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것이지,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소비자인 내가 이 혼란에서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정체성,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작업은 물론 모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업이 타인의 공감이나 위로를 얻기 위한 수단이 되거나,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가장 지질하고 헤픈 순간들은 전부 나 자신의 것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풀어내고 기록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나의 못남을 털어내는 과정이자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고 개인의 성장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타인의 지나친 관심이나 의견이 끼어들게 된다면, 나는 과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글쎄, 나는 회의적이다. 이 창작자의 목적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오롯이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는 콘텐츠 제작이 아닌 예술을 해야 마땅하다.
사람들은 흔히 예술과 문화콘텐츠의 차이를 혼동하는 듯하다. 예술이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작업이라면, 문화콘텐츠는 나 자신이 아닌 소비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대중이 공감할만한 내용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대중들이 나의 콘텐츠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의 예술까지 포용해 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창작자들의 오만한 착각이다. 문화콘텐츠를 창작하고 이것이 대중에게 소비되어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자신이 만든 창작물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타인에게 공감할 자격과 더불어 공감하지 '않을' 자격이 있다. 문화콘텐츠 소비의 가장 큰 동력이 '공감'에 있는 것임을 안다면, 창작자들에게 부디 그 공감의 크기를 쉬이 한정 짓는 일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러니까, 일기는 딴 데 가서 쓰라는 말이다. 대중은 당신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소비자일 뿐, 그들로부터 친구나 가족처럼 위로받기를 바라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