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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y 19. 2016

직장인과 비직장인의 경계에서

상암동의 점심시간을 바라보는 시선

 대학 4학년, 모 영화사의 인턴 면접을 위해 상암동에 왔다. 미리 면접장 근처 카페에 도착해 착석한 시간은 오후 1시. 누리꿈스퀘어 주변으로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어디론가 바삐 향하고, 손에 든 아이스커피와 목에 걸린 사원증은 그들이 직장인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삭막한 사무실에서 나와 광장에서 드론을 날리기도 하고, 햇볕을 쬐며 담배를 태우기도 하는 그들. 직장인들은 사실 한때 나의 가장 큰 기피대상이었다. 얼마나 일이 힘들면 회사 밖으로 나와 저렇게 애꿎은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댈까, 속 타는 마음이 그들의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났기에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직장인의 삶을 고달프고 가련한 것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덧 대학 4학년이 되어 직장인과 비직장인의 경계에 서있는 나는, 그들의 재촉하는 발걸음마저 흠모하는 눈길로 뒤쫓게 되고 말았다.


 사회로 발을 내딛기 전, 대학의 문간에 서서 바라본 바깥세상은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후줄근한 운동복을 입고 통학하던 내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상상을 하면 앞이 보이지 않았다. 회사 사무실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 기획서를 작성하는 나의 모습, 어디론가 업무 전화를 걸고 있는 나의 모습, 상사에게 깨지고 시말서를 작성하는 모습까지. 이번 인턴을 지원한 것은 순전히 '경험 삼아'라는 얕은 의도였지만 최종 전형에 가까워질수록 새내기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보여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었다.  


 면접 전날 밤, 이제는 진짜 실무자들을 만날 차례라는 생각에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예상 질문을 생각하며 혼자 꾸물꾸물 중얼거려보기도 하고, 혹시나 당황스러운 질문에 난색 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합격한다 해도 당장 남은 학기가 걱정이고, 회사를 다니면서 과연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과제를 제때 잘 낼 수 있을까, 괜히 교수님들께 밉보여 학점이 바닥을 치게 되진 않을까 무서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직장인으로서 처음 발걸음을 내딛는 나의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내가 한없이 부족하고 덜떨어진 사람이면 어쩌지, 내 얕은 실력이 바닥을 보이면 어쩌지,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막연함이 눈앞을 가렸다. 그렇다고 또 마지막 면접전형에서 떨어진다면 자존심이 무진장 상할 것 같고, 여기까지 왔는데 기회를 눈앞에서 놓쳐버린다면 그 아쉬움 때문에 더욱더 우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면접장에 들어서기 한 시간 전부터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작은 확신을 품었다.


부딪혀보자. 나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사실 면접 전날까지만 해도 무서운 직장생활과 지겨운 학점관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지만, 어느새 마음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돌아보면 이미 틀에 박힌 대학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일을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학점이나 학교생활에 있어 꽤 큰 희생을 하더라도 말이다. 학기도 어느새 4분의 3선을 넘었고, 남은 것은 이제 3주 동안의 수업과 기말시험이다.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병행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직장인의 삶은 나에게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업무강도, 늘어나는 스트레스 때문만이 아니다. 그 두려움은 근원적으로 학교라는 익숙한 세계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다는, 소위 '어른의 영역'에 들어선다는 데에 있다.


 삭막한 사무실 사이에서, 재촉하는 발걸음 사이에서, 공허한 얼굴 틈새에서, 나는 불안한 경계에 서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문득 아직 철들지 않은 나를 아끼고 보듬어줄 사람은 결국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오늘 면접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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