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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Sep 20. 2023

주머니 속의 장르 10

여행의 시스템 1


오전 8시 호텔을 나왔다. 단지 이곳이 낯설다는 이유로 뭔가 특별함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영화에서 처럼 단팥빵으로 일생을 살아온 장인의 빵집이 있다거나, 아지트 같은 카페에는 레코드 음색에 어우러진 빛바랜 갈색 테이블, 각설탕과 티스푼, 푸른색의 장미넝쿨이 그려진 찻잔이 있고 그 앞에 주간 신문 스포츠면을 읽는 중년이 있을 것만 같은 장소를 발견해도 좋겠다. 고즈넉한 책방과 무심한 책방 주인, 자기주장이 강한 고양이 한 마리쯤 마주칠 줄 알았다. 소문에 의하면 이곳은 주민 복지가 잘 된 지방 소도시로 사람들은 이외로 돈이 많다고 했다. 가볍게 동네를 걷다 보면 카페 하나쯤 나올 분위기의 거리였다. 길은 지방 도시 답지 않게 곧게 정방형으로 정비되어 있고 집들은 낮은 담과 정원이 보이는 전원주택이 늘어서 있다. 포도 향이 바람에 실려있다. 어느 집인가 틀림없이 포도 넝쿨이 있을 거야 하면 포도송이가 늘어진 정원이 나왔다. 강아지 한 마리가 수상히 여긴 불청객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는 것을 등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땀이 나기 시작했다. 카페 하나쯤은 있을 것도 같은데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던 건 이 도시에서 움직이는 건은 나와 하늘에 떠 축제를 알리는 대형 애드벌룬뿐이었다. 이 낯선 도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안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불안을 점점 키웠다. 아마도 잘 짜인 각본의 드라마를 기대한 대가 일지도 모른다. 산책은 그저 산책일 때 좋았던 것을 이리도 쉽게 까먹는다.


9시 30분부터 시작되어 오후 5시까지의 일정을 무리 없이 마친 후 다시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지난밤에 비가 내려서인지 하늘의 푸른색과 구름, 산의 초록은 저무는 태양의 색과 어우러져 채도를 높이고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 야외 벤치에 앉아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군인의 도시답게 곳곳에 군복이 보였고 그들은 모두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군인은 여인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뒤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창문을 열었다. 여인에게 눈길을 한 번 주고, 먼 곳을 보고, 다시 여인을 바라본다. 캐주얼한 후드 점퍼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쓴 여인은 휴대폰을 한 번 보고, 떠나는 군인을 보고, 다시 휴대폰을 본다. 그들의 시선은 한 번도 교차하지 못했다. 이별 버스 앞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눈을 마주치지 못 한채 무사와 안녕을 기도하고 있었다. 출발이 예정된 버스의 시간은 냉정했다. 군부대를 지나는 버스는 이런 장면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노을이 머무는 지방 도시의 하늘은 멋진 그림을 수놓았지만 허름한 터미널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은 아프고 애절하게 아름다웠다.

 




이곳에 한 껏 멋을 부린 카페와 사람들로 붐비는 맛집, 또는 흔한 관광지의 뷰포인트 하나 없는 이유를 내 나름의 이론에 맞춰가며 멀어 저가는 버스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또 다른 시외버스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떠날 차례가 됐다.



김택수

insta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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