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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Apr 07. 2024

주머니 속의 장르 24

목요일엔 목요일의 일을 하듯 책방에서는 책방의 일이 있습니다


동네 책방 지구불시착은 2016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법무사 사무실이 즐비한 오피스텔 2층 복도 끝에서 특별한 개업식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시작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 못 합니다. 하지만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연필을 손에 쥐고 선을 그으면 그림이 시작되는 것처럼 지구불시착도 분명한 시작은 있었습니다. 백열전구 세 개를 사 와 천장에 설치하고 조명을 켰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실내가 밝아지고 따뜻한 빛이 책방을 감싸안으면 형광등 아래 책장 하나 없었던 오피스텔은 너무도 쉽게 책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빛은 마법의 빛. 지구불시착을 만들고 지구불시착이 닮고 싶고, 지구불시착이 말하고 싶은 빛입니다. 빛을 품은 지구불시착은 책이라 하면, 책방이라면 기꺼이 마음을 내주는 사람이 하나둘 모여 토닥거리고, 웃으며, 위로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책방이 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처음부터 책방을 시작한 이유가 필요했던 건 아니기에 왜 책방인가에 대한 답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지구불시착이란 책방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는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책방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그렇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기다리는 일과 견디는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넘칩니다. 책방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을 삶의 처방으로 알고 지내온 사람들에게만 느껴지는 결이 있습니다. 이제는 8년 가까이 함께한 결들이 지구불시착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책방에도 연륜이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 한 권 팔리면 만세를 불러보던 날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손님이 없는 날도 있고, 또 어느 날은 책이 많이 팔리는 날도 있고. 책 판매 평균 법칙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늘 손님이 없더라도 나는 다른 일을 합니다. 목요일엔 목요일의 일을 하듯 책방에서는 책방의 일이 있습니다. 


책방에는 책이 있고, 그림이 있고, 글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책과 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책방이 만드는 분위기는 확실했습니다. 독자가 없는 글을 써 봤습니다. 글은 스스로 작가이면서 스스로 독자인 글쓰기로 발전했습니다. 잘 쓴다거나 못 쓰는 것은 욕심이었습니다. 그냥 글 하나를 썼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드는 글이 되기도 하며 은근히 독자이자 작가인 자신을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지구불시착은 스스로 출판사를 겸하며 책을 출간하기도 합니다. [지구불시착 그림 그리기 팁 초간단 편], [성수기도 없는데 비수기라니], [하루만 하루끼], [너에게 반했어 나머지 반 부탁해], [지구불시착 글쓰기 팁 초간단 편]을 출간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전시도 하고, 초상화도 그립니다. 필요하다면 굿즈도 만들고 있습니다. 


책방은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 안에서 6년을 지내고 24년 1월부터 지금 이곳에서 시즌 3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방이 좋은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작은 메모 하나가 눈길을 끌 수도 있고, 오래된 mp3의 음질이 마음에 닿을 수도 있어요. 가끔 턴테이블에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e la vita를 듣기도 합니다.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운이 좋다면 지구불시착도 운이 좋아집니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들만 아는 이야기로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일이 지구불시착의 큰 그림입니다.



지구불시착은 현재 인스타 계정 하나로만 홍보하고 있어요. 해시태그 지구불시착이나, 지구불시착 계정 @illruwa2를 팔로우해 주세요.  



 by 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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