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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커피 그리고 삶 Mar 16. 2024

말레이시아 여행(페낭) 6

의외의 상황이 추억이 될 수도... 페낭으로 가다.

이번 글에 대한 말레이시아 여행 계획과 일정은 이전글 참고


오늘 페낭으로 출발하는 시간이 12시쯤이라 오전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체라스 지역에 있는 숙소 주변을 다녀보기로 하였다. 돌아다니다 적당한 식당이 있으면 아침을 먹을 생각이었다. 아침부터 더위 때문에 금방 지쳤다. 걷기 시작한지 얼마가지 않아 잠시 쉬면서 식사도 해결할 겸 로컬식당에 들어갔다. 찐 로컬식당이다. 주변에 이슬람 음식점도 있었지만 중국 음식이 더 끌렸다.



약간 짠맛의 여운과 부족한 양으로 인해 메뉴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 왔다. 니글거리는 속을 달래고 잠시 더위도 식힐겸 구글맵으로 근처 카페를 검색해 본다. 마침 나름 평점이 괜찮은 카페가 가까이 있었고 깔끔한 내부가 마음에 들었다. 그냥 동네 카페 수준이지만 리뷰를 보니, 나름 이 지역의 대표적인 카페 같았다. 아이스커피를 시키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물 한잔과 꽃잎을 넣어 화려한 커피가 나왔다. 달달한 맛에, 살찌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여행에서 이동에 필요한 칼로리라고 정당성을 부여해 본다.



오른쪽 커다란 창문 넘어로 풍경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만약 우리나라의 가을처럼 낙엽이 진다면 참 낭만적인 풍경일 것 같다. 초록색 잎파리에 갈색과 붉은 색의 낙엽을 덧붙여 상상해 본다.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지하철로 시외버스 터미널(TBS)로 가는 경로를 살펴보았다. 한번만 경유하면 되기에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시간도 넉넉하니, 일단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지하철로 향한다.




▣ 예약 오류

터미널에 도착하고 승차장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E메일로 받은 QR코드를 찍는데, 계속 오류가 난다. 게이트를 관리하는 직원분에게 왜 안되는지 물어보았다. 메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오늘 낮 12시가 아니라 어제 새벽 12시 심야버스라는 것이다.


'하....'


어쩐지, 어제밤에 버스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었다. '아..' 환불에 대해 문의해 보니, 안된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예약한 것에 화가 났다. 음.. 그 돈이면, 괜찮은 저녁이 4끼인데....


한 10분정도 멘탈이 나가서 페낭에 가지 말까도 생각했지만 여기 그냥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이며, 페낭을 꼭 가고 싶었기에 일단 멘탈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음.. 이런 실수를 하다니...'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금 여행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원래 사고는 항상 이럴 순간에 일어나기 마련이라 조금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5시경에 말라카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다시 끊었고 오늘도 어김없이 버스가 연착이 되어 생각보다 늦게 출발하였다. 매번 연착이 되는 것을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출발한다.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시간이 지날 무렵, 잠깐 눈을 붙였다가 노트북에 저장된 영상도 보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의자가 편해서 그런지,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페낭 도착 1시간 전, 에포 근처 작은 휴게소에 잠시 들린다. 특별히 입맛도 없고 살 것도 없어 화장실만 잠시 들렸다가 버스에 다시 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페낭이다.




▣ 버터워스? 페낭버스터미널?

어제 시외버스를 예약할 때, 페낭 도착 정류장이 '페낭버스터미널'와 '버터워스(ButterWorth)' 두 군데가 있었다. 페낭버스터미널은 페낭섬 안에 있는 터미널이고 버터워스는 페낭섬 근처 내륙에 있는 정류장이다. 어제밤 예약은 페낭버스터미널로 예약했지만 새로 구입한 티켓은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하는 버터워스 행이었다.


둘 중 어느 곳에 내려도 상관없지만 버터워스의 경우, 페리를 타고 섬으로 입장해야 한다.(아니면 그랩을 불러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버터워스로 향하는 버스를 탄 나는 도착시 페리 운항이 종료될 것 같아 조금 불안하였다. 나중에 느끼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버터워스를 추천하는데, 페리를 타고 바로 조지타운으로 들어갈 수 있고 (페낭버스터미널은 조지타운과 조금 떨어져 있다.) 배를 탄다는 낭만도 있다. 또한, 다시 쿠알라로 돌아올 때, 고속열차도 여기 버터워스에서 탑승할 수 있다.




▣ 페리를 타고..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직 버스안이다. 페낭으로 들어가는 배 시간을 놓칠까봐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11시까지 운행하는 것을 확인했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뭐 혹시나 놓치게 되면,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들어가지 뭐..'


버스가 버터워스에 도착하였고 페리를 탈 수 있는 선착장으로 이동을 하였다. 하지만, 여기가 워낙 넓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사람들에게 묻고 확인하면서 한참을 이동하여 매표소 앞에 도착하였다.(안내판이 없어 찾는데, 조금 헤매였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는데, 누군가 옆에 다가온다. 신용카드로만 티켓 구매가 가능한데, 자기는 카드가 없어서 표값을 현금으로 줄테니, 내 카드로 한장 더 끊어달라는 것이다. 흔쾌히 수락하고 QR코드를 찍어 건물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페리를 기다리고 있다. 점심식사를 빵으로 대충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파온다. 일단 페낭섬에 들어가 호텔을 체크인한 후 저녁부터 먹으러 가야할 듯하다.


배에 승선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오토바이들이 배 한쪽 벽쪽에 정차되어 있고 다른 쪽에는 사람들이 반대쪽 선실에 앉아 있었다. 배가 페낭섬과 워터버스 중간즈음 왔을 때,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저 멀리 불빛들이 배가 그곳에서 출발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불빛들을 보면서 점심때 어제밤 잘못된 예약으로 인해 올라오는 짜증과 이동하는 지루함을 날리고 오히려 나에게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여행중 예상하지 못한 일들은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과제를 풀어내면서 한층 여행 레벨이 높아짐을 느낀다. 만약 원래 예약했던대로 페낭버스터미널로 도착했다면, 그것 또한 나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야밤에 페리를 타고 섬에 들어가는 경험은 나에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요즘 새로운 환경에서 근무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행왔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위로를 하는데, 도움이 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내 의도대로 되었다면, 가는 길이 재미있었을
까...



▣ 체크인과 늦은 저녁

배는 어느덧 팡카란(Pangkalan Raja Tun Uda) 선착장에 도착하고 사람들 뒤를 졸졸 따라서 선착장 밖으로 나왔다.(뭔지 모르니 이럴때는 사람들따라 가는 것이 국룰~!) 여기서 그랩을 불러 호텔로 이동할까 생각했지만 도보로 20분 정도이고 교통비를 아끼고 싶어서 걸어가기로 하였다.(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구글맵의 20분은 실제 30분인듯...)



페낭 거리의 밤 풍경은 참 좋았다. 생기 넘치고 화려하다. 더위에 지쳤지만 쿠알라나 말라카와 다른 분위기에 새로운 힘이 솟았다.


말레이시아 여행의 참 매력적인 점은 이동한 도시마다 그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도시마다 서로의 문화가 혼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만 쿠알라룸푸르는 좀 더 도시적 느낌이고 말라카는 중국풍의 화려함이 있으며, 페낭은 서양의 독특한 개성을 볼 수 있었다. 어릴때부터 집단의 중요성을 강요받은 세대라, 예를 들어, 단일 민족, 우리 학교, 우리 지역, 우리 회사 등 사상과 문화의 통일성을 높은 가치로 생각되었으나 여기 오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다양성의 또 다른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다양성을 가치있게 말하지만 습관적으로 나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나의 성향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거북함을 느낀다.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인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아마 이것이 여행의 소득인 듯하다.


호텔에 근처에서 잠시 헤매였다. 호텔 주변이 조금 어두었고 낡은 건물에 귀신 나올 것 같은 외관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정말 호텔이 맞는지 지도에서 몇번을 확인하였다. 뭐, 전날에 싼값이 예약했기에 이정도는 감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호텔 문을 열었다. 외관과 별개로 내부는 비교적 깔끔하였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더운물도 나왔다. 2만 3천원짜리 호텔치고 양호하다. 일단 방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을 검색해 보았다.



호텔 근처 중국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여기 식당이 조금 낯설었던 점이 식당 테이블에 있는 QR코드를 찍어 웹사이트에 접속하고 메뉴를 고른 다음 카운터로 가서 계산하는 방식이다. 내가 헤매고 있으니 직원이 와서 주문을 도와준다. 시장끼가 반찬이라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 야밤에 보는 벽화

페낭의 대표적인 벽화(페낭스트리트 아트)를 보러 걸어갔다. 몸은 피곤했지만 오늘 낭비한 시간을 생각하니 어자피 호텔에서 할 것도 없고 밤 거리를 둘러보고 싶었다. 거리가 정말 예뻤고 걷기에도 적당한 기온이였다. 벽화에 도착했니 사람들이 거의 없어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낮에는 사람들이 많다.)



남매처럼 보이는 두 아이가 자전거를 타며 어디론가 가는 모습에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림을 그린 배경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얼룩진 벽과 아이들의 모습이 상반된 모습은 암울한 시대적 배경 따위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순수함만이 시대적 암울함을 압도하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페낭에는 이런 벽화들이 곳곳이 숨어 있다. 벽화가 섬의 랜드마크가 되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이 섬에 잘 설정된 대표성은 섬을 활력을 불어 놓고 관광객이 지역 경제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문득, 우리 삶에도 랜드마크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과 더불어 삶의 가치를 불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9시가 넘어 호텔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동시 버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콘윌리스 요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해안가 사람들의 삶

걸어서 30분... 해가 없으니 걸을만 했으나 당연하게도 땀에 옷이 푹 젖었다. 페낭시청 근처에 오자 많은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모여 있었다. 현지인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은 처음인 것 같다.



다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서 가족들이 생각났다. 가족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참 행복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었고 젊은 남녀는 해안가 가드레일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종종 베트맨과 스파이더맨 복장으로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완벽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웃는 얼굴 속에서도 내일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저 사람들은 현재의 행복을 완벽하게 즐기고 있다.

어쩌면.. 행복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있는 지금 느끼는 여러 감정속에서 행복감 그 자체를 그대로 취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10시가 넘어간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 쉬어야 하는데, 외이리도 아쉬운 감정이 들을까? 마침 호텔로 가는 길목에 bar가 검색된다. 일단, 분위기를 보고 맥주를 마실지 결정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멋진 바를 발견했다. 라이브 공연에 사람들이 호응하면서 사람들이 이야기 꽃을 피고 있었다. 페낭 거리에 외국인이 별로 없다고 생각되었는데, 모두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만석이라 바로 입장하지 못하고 10여분 정도 기다리다 들어갈 수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의 바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였다. 



왠지 하루의 마무리가 깔끔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호텔로 돌아와 오늘도 빨래를 하였다. 아.. 단벌신사.. 내일은 페낭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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