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사랑꾼-단테 가브리엘 로제티 편]
"리지, 천천히 가도 돼."
1860년, 영국.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가 엘리자베스 시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둘은 나란히 걸었다. 로제티는 시달이 휘청일 때마다 어깨를 꽉 잡았다. 허리를 감싸 부축했다. 시달의 눈은 처연했다. 얼굴과 몸 모두 창백했다. 혼이 빠진 사람 같았다. 시달은 말없이 거친 숨만 내쉬었다. 로제티에게 딱히 눈길도 주지 않았다.
둘은 겨우 교회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었다. 안은 고요했다. 로제티의 가족도, 시달의 가족도, 두 사람의 친구들도 없었다. 마을 주민만 몇 명 있었다. 이들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눈치를 보니 스르르 빠져나갔다. "미안해. 다 내 탓이야." 로제티는 텅 빈 곳을 앞에 두고 고개를 숙였다. 시달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날, 로제티와 시달은 결혼했다.
너무 늦게 맺는 가약이었다. 서로를 만나고 10년, 약혼을 하고도 6년이 흐른 후에야 치른 결혼식이었다. 로제티는 웃었다. 시달에 대고 오늘이 우리에게 가장 기쁜 날이라고 했다. 시달은 웃지 않았다. 왜 오늘에서야…? 봄날의 꽃 같던 시달은 이날을 기다리는 동안 생기를 잃었다. 기약 없는 결혼을 꿈꾸다가 건강도, 청춘도 다 내려놨다. 시달에게 남은 건 우울증과 신경쇠약뿐이었다.
시달은 묻고 싶었다.
나와 언제 결혼하겠느냐는 말을 있는 힘껏 무시하던 사람, 나랑 약혼을 하고서도 바람이란 바람은 다 피우던 사람, 그런 인간이 왜 오늘에서야 정신을 차린 척하는지. 하긴, 그럴 힘이 있었다면 이렇게 또 맥없이 속아주지도 않았을 터였다. 젊음. 친구들의 축복, 꽃과 음악,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시달은 고작 이런 결혼을 꿈꿨다. 비싼 드레스, 반짝이는 장식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신분이 미천하니 어울릴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달은 비틀댔다. 로제티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걸었다. 휘청대며 행진길의 끝자락에 닿았다. 더는 할 일이 없었다. 결혼식의 끝이었다.
로제티는 이제 유부남이었다.
그래도 그는 달라진 게 없었다. 바람을 피웠다. 지겹도록 한눈을 팔았다. 그림 모델부터 친구의 약혼녀 등 공략 대상도 다양했다. 시달은 딱 한 번 희망을 품었다. 임신한 시달은 아이를 낳는다면 상황이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시달은 아이를 낳기에는 너무나 허약해져 있었다. 사산했다. 시달은 그날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시달은 아편에 빠졌다. 노출되는 양이 점점 많아졌다. 결국 약 기운이 빠져나오질 못했다.
시달은 죽었다. 33살이었다. 결혼 겨우 2년 만이었다.
1850년, 로제티는 시달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풍성한 머리칼, 깊은 눈동자, 길쭉한 팔다리에 정신을 못 차렸다. 로제티는 동료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시달을 눕혀놓고 그린 '오필리아'를 보고 그녀 존재를 알았다는 말이 있다. "내 운명 같은 여인이라고!"라며 동료들을 닦달해 겨우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설이 있다.
'단테 선생님, 드디어 저도 저만의 베아트리체를 찾았습니다!'
로제티는 감격에 겨웠다. 평생 자기만의 베아트리체를 찾고 있던 로제티는 이렇게나 빨리 주인공이 등장할지는 생각도 못했다. 그에게선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하지만 시달에게는, 불행의 서막이었다.
그런데 로제티는 시달을 본 그 순간, 왜 대문호 단테 알리기에리를 찾았을까.
로제티가 말하는 '베아트리체'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이는 로제티의 유년 시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로제티는 182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의 문학 교수였다. 단테의 시를 흠모하는 시인이었다. 그는 아들이 단테에 버금가는 예술 소양을 갖추길 바랐다. 그래서 이름도 '단테'로 지었다. 로제티는 자기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린 그가 봐도 단테의 시는 환상적이었다. 단테의 작품 '신곡', '새로운 인생' 등을 달달 외우고 다녔다. 로제티는 자신을 단테의 분신으로 여겼다. 아예 자기 삶과 단테의 일생을 동일시했다는 말도 있다.
그렇기에 로제티는 사랑도 단테처럼 하고 싶었다.
단테는 베키오 다리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단테는 그녀를 곧장 사랑하게 됐다. 단테가 9살, 소녀는 고작 8살이었다. 둘은 9년이 지나고서야 재회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그녀를 다시 만났지만, 할 수 있는 건 정중한 인사뿐이었다. 둘이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단테는 찰나의 두 만남을 평생 간직했다. 소녀를 평생 그리워하며 시를 썼다. 사랑을 노래했다. 그녀의 이름이 베아트리체였다.
로제티는 자신만의, 하늘이 점지해준 베아트리체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찾아나섰다. 수많은 여성을 만났다. 영혼이 흔들릴 만큼의 사랑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평생 혼자 살 수 있다는 잔소리가 슬슬 들려왔다. 그런데, 운명처럼 나의 베아트리체가 눈앞에 등장했다. 마음의 종이 드디어 울렸다. 그녀가 바로 시달이었다.
"나도 당신을 리지(Lizzie·엘리자베스의 애칭 중 하나)라고 불러도 될까?"
로제티는 그렇게 시달에게 다가갔다. 시달은 몰랐다. 이 멀끔한 사내가 그녀의 삶을 철저하게 짓밟을 것을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그러세요." 시달은 로제티를 슬쩍 봤다. 로제티의 눈은 맑았다. 자세는 꼿꼿했다. 옷에서는 잉크 냄새가 났다. 배운 사람 특유의 여유도 묻어났다. 낯 뜨거운 애칭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로제티는 그림을 잘 그렸다.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라는 동료 화가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시도 잘 썼다. 말주변과 위트도 있었다. 그는 교양 있는 남자였다.
시달은 늘 그런 남자에게 약했다.
시달은 장사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유롭지 않은 가문이었다. 시달은 모자가게 아르바이트생으로 돈벌이를 했다. 그 시절 젊고 예쁘지만 돈도, 연줄도 없는 여성이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게 문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핵심 업무였다. 어느 날, 시달은 한 화가에게 모델 제의를 받았다. 재밌을 것 같았다. 해보자고 했다. 생각보다 재능도 있었다. 그렇게 회회판을 누빈 결과, 지금 로제티를 보고 있다. 로제티가 시달에게 빠진 만큼, 시달도 로제티에게 푹 빠졌다.
서로에 대한 호감을 본 둘은 그날 이후 찰싹 달라붙었다.
로제티는 시달을 독점했다. 매일 시달을 모델로 한 그림을 그렸다. 수백점을 찍어냈다. 매일 시달을 찬양하는 시도 썼다. 수백통을 바쳤다. 로제티는 시달에게 붓질과 문장도 가르쳤다. 대신 시달에게는 다른 화가의 모델 일은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이제 둘은 정말 한 몸 같았다. 1853년부터는 동거를 시작했다. 1년 후에는 약혼까지 했다.
이때부터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로제티는 시달과의 결혼을 차일피일 미뤘다. 기를 쓰고 외면했다. 로제티는 집안 반대를 이유로 댔다. 학자 가문의 어른들이 평범한 시달을 문제 삼는다고 핑계를 댔다. 시달은 속이 탔다. 시달이 안고 온 젊은 날의 특권을 로제티에게 바쳤다. 모든 인연, 모든 기회를 포기했다. 나의 베아트리체니 어쩌니 할 때는 언제고,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실망했다.
시달의 불안감은 차츰 커졌다.
집안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열등감도 깊어졌다. 그런 시달에게 충격적인 말이 와닿았다. 로제티가 자기 몰래 새로운 여자들을 만나 사랑의 속삭임을 나눈다는 소문이었다. 사실이었다. 로제티가 결혼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였다.
"나한테 할 말 없어요?"
시달이 로제티에게 따졌다. 로제티는 그제야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시달은 그의 변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로제티는 이른바 천상의 사랑, 지상의 사랑론을 말했다고 한다. 나의 베아트리체, 시달은 천상의 사랑이며, 다른 모든 여성은 스쳐 지나가는 지상의 사랑일 뿐이라는 것이다. 천상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듯, 지상의 사랑도 내려놓을 수 없다. 다만, 천상의 사랑이 있는 곳을 지상의 사랑은 결코 침범할 수 없으니 마음 놓아도 된다….
시달은 기가 찼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바람을 계속 피운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여졌다. 시처럼 잘 포장된 궤변 같았다. 시달은 그런 자유로운 영혼의 로제티를 6년 더 견뎠다. 그제야 로제티는 결혼 이야기를 했다. 내가 곧 죽을 것 같으니…? 결핵과 우울증에 허약해진 시달은 섬뜩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달은 깨달았다. 로제티가 생각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란 것을. 모순덩어리의 인간이란 점을.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시달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공식적인 원인은 사고였다.
실제로는 아편 과다복용에 따른 극단적 선택에 가까웠다. 로제티는 시달이 죽고서야 그녀를 애타게 찾았다. 스스로 생을 마쳤다는 말에 혼이 빠졌다. 로제티는 뒤늦게 후회했다. 천상의 사랑으로 영원할 줄 알았던 그만의 베아트리체가 외롭고, 불안하고, 병들고, 끝내 비극적인 죽음으로 결말을 맞이한 것이었다. 로제티는 그간 쓴 사랑의 시를 모았다. 이 원고를 시달의 관에 넣고 함께 묻었다.
로제티는 그리고서 붓을 들었다.
로제티는 시달을 다시 베아트리체로 부활시켰다. 하늘 위 시달이 좋아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를 위한 그림을 만들었다. 그림 속 시달은 두 눈을 감은 채 입술을 살짝 벌렸다. 신비로움과 요염함을 함께 품은 모습이다. 성녀이자 요부, 그녀가 발산하던 이중적 매력이 모두 담겨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시달 뒤에 선 채 서로를 보고 있다. 이들과 시달 사이에는 해시계가 있다. 우리 사랑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처럼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점, 나아가 해시계처럼 영원히 작동된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시달의 무릎 위로는 후광을 두른 새가 날아온다.
새는 양귀비 꽃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양귀비 꽃은 잠과 죽음의 상징이자 아편의 원료다. 이는 시달이 약물중독으로 죽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로제티는 시달의 진한 눈썹, 약간 부어오른 듯한 동그란 입술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다른 여인보다 더 섬세하며 단호했고, 더 다정하고 격렬했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꾹꾹 눌렀다. 이 그림은 사랑과 후회, 그리움과 체념을 꾹꾹 눌러담은 편지였다. 부치지 못한 러브레터였다.
그림 제목은 베아타 베아트릭스(Beata Beatrix)로 달았다. 축복받은 베아트리체라는 뜻이었다.
이런 그림까지 그린 로제티는 평생 수도승처럼 살았을까.
아니었다. 잠시 은둔 생활을 했지만, 그뿐이었다. 로제티는 모순의 삶을 이어갔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식이었다. 1868년, 로제티는 또 한 여성을 사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제인 모리스였다. 이번에는 유부녀였다. 너무나도 가까웠던 친구, 윌리엄 모리스의 배우자였다.
로제티는 제인을 보고 또 첫눈에 반했다.
제인은 죽은 시달과 외모가 닮았다. 평범한 집안, 라파엘전파 화가들의 모델 등 배경도 비슷했다. 다른 점도 있었다. 제인은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시달보다도 삶을 더 공격적으로 살았다. 그녀는 시와 미술,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피아노 등 여러 분야에 경험이 풍부했다. 로제티는 하루가 다르게 고상해지는 제인을 눈여겨봤다. 제인이 "여왕 같다"는 말을 들을 만큼 우아한 귀부인이 됐을 때쯤부터는 뜨거운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제인이 남편 윌리엄과 쇼윈도 부부라는 말을 들었을 땐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로제티는 이제 제인을 찬양했다.
그녀를 위한 시를 쓰고, 그녀를 위한 그림을 그렸다. 제인도 그런 로제티에게 호기심이 갔다. 둘은 미묘한 관계를 맺었다. 사이는 점차 깊어졌다. 남편 윌리엄은 이를 눈감아줬다. 그는 누구보다 로제티를 잘 알았다. 그가 격정적이며, 그렇기에 금방 싫증을 낸다는 점 또한 모르지 않았다. 신과 같은 인내심을 쥔 채 불장난이 끝나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로제티와 제인은 그런 윌리엄의 동의 아래(!) 둘이 한 계절을 보내기도 했다.
이쯤 로제티는 제인을 그리스 신화 속 여신 페르세포네로 그렸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는 슬픈 사연을 품고 있다. 모녀는 여느 때처럼 땅을 보살폈다. 그런데 데메테르가 한눈을 판 사이,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했다. 데메테르는 분노했다. 내 딸을 내놓지 않으면 곡물을 다 말려죽인다고 협박했다. 하데스는 생각보다 순순히 페르세포네를 보내줬다. 하지만 이미 페르세포네에게 석류 네 알을 먹인 후였다. 당시 저승의 음식을 먹은 이는 저승으로 돌아가는 게 법도였다. 결국 페르세포네는 8개월은 지상에서, 4개월은 하데스의 신부로 지하에 머물러야 했다.
로제티는 제인의 삶을 페르세포네의 처지에 빗댔다.
제인이 남편 윌리엄과 있는 시간을 페르세포네가 지하 세계에 갇힌 시간과 비유했다. 그림 속 페르세포네는 한 손으로 석류알을 쥐고 있다. 또 다른 손은 그 석류알을 떨어뜨리려는 모습이다. 지하의 윌리엄과 남을지, 지상의 나와 함께할지를 택하라는 듯하다.
이번에도 끝은 좋지 못했다.
스멀스멀 따라붙는 그것은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덩치를 키웠다. 업보였다. 로제티는 시달의 영을 떨치지 못했다. 시달은 어디에나 있었다. 꽃에도 있고, 바다에도 있었다. 제인의 얼굴에도 구석구석 스며있었다. 삭둑 자른다고 잘라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869년, 로제티는 한 친구에게 시달의 관과 함께 묻은 시 원고를 꺼내와달라고 부탁했다.
시는 묻어두는 게 아니다, 시달을 진정 애도하기 위해서는 세상 빛을 보여줘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설득한 탓이었다.
"그게 말이야. 관 속 시달의 시신은 놀랄 만큼 생전 모습 그대로였어. 그녀의 붉은 머리칼이 더 길게 자랐더군. 원고에도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그 끝단을 잘라야 할 정도였지."
로제티는 시달 묘지에 다녀온 친구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가슴 한쪽에 아릿하던 통증이 마침내 터졌다. 로제티는 그날부터 불면증을 겪었다. 몇 해가 지나선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시달을 괴롭히던 그 증세였다. 제인은 로제티를 간호했다. 그러나 그녀도 알고 있었다. 예전만큼 좋은 날은 없을 것을.
로제티는 마취제에 몸을 통째로 내맡겼다.
약물이 빚어낸 환영을 타고 악몽에서 도망쳤다. 우여곡절 끝에 낸 시집은 꽤 인기를 얻었지만, 비평가들은 그의 시가 육감적이라며 맹렬히 공격했다.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1876년쯤부터는 제인과의 만남도 뜸해졌다. 제인은 얼마 더 지나선 윌리엄과 다시 가정을 꾸렸다. 로제티의 끝은 쓸쓸했다. 대책 없는 자유 영혼의 말로(末路) 같았다. 그는 1882년에 죽었다. 52세였다. 사인은 약물 중독, 시달과 같은 것이었다.
로제티의 천재성은 미술과 문학을 오갔다.
그의 예술혼은 유럽의 상징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 업적만 본다면 단테의 신곡 속 천국에 갈 몸이었다. 하지만 로제티는 소중한 상대를 막 대했다. 상처는 남겨진 사람의 몫이었다. 잘해야 할 상대에게 잘하지 않고, 외면해도 상관없을 상대에게 정성을 쏟기를 반복했다. 그런 일을 따진다면 지옥행이 확정돼도 고개를 떨궈야 할 생이었다.
〈참고 자료〉
미술대사전(인명편), 한국사전연구사(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에 대해선 '로제티'가 아닌 '로세티'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술대사전에 맞춰 '로제티'로 표기했습니다.)
501 위대한 화가, 스티븐 파딩, 마로니에북스
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민음사
Life of Dante Gabriel Rosetti, Knight, Joseph, Franklin Classics Trade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