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물이 내게 준 것 편]
"경이로운 상상력이군."
1938년, 멕시코 멕시코시티대학교 갤러리. 초현실주의 주창자(主唱者)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1896~1966)은 이곳에서 한 그림을 보고 거듭 감탄했다. 초현실주의라는 게 무엇인가. 발칙한 꿈의 세상, 도발적인 상상의 세계를 치덕치덕하게 버무려 보이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예술 강연차 물 건너온 브르통은 이 땅에서 이토록 그 정신에 맞는 작품을 발견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어디 보자. 그린 이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 브르통에게 이 화가의 이름은 묘하게 친숙했다.
브르통은 기억을 돌아봤다. "…이보게, 브르통 씨. 이 여인이 내 아내일세." 멕시코 예술계의 거물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1886~1957)의 걸걸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프리다 칼로라고 해. 여보, 당신도 인사하게." 아, 얼마 전 리베라와 만났을 때 함께 본 그 여자였다. 짙은 갈매기 눈썹을 한 강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치렁치렁한 옷과 장신구 등 그녀는 그때도 보통은 아닌 듯 보였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나 독창적인 그림까지 그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브르통의 마음을 가장 크게 울린 칼로의 그림은 〈물이 내게 준 것〉이었다.
브르통은 칼로의 시선이 돼 욕조 안 그녀 발과 다리를 볼 수 있었다. 비죽 나온 발가락은 그 자체로 외계 생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그것은 목욕물 위로 둥둥 뜬 파괴와 소멸, 성욕과 고통의 형상들이었다. 구멍 뚫린 조개껍데기와 무너지는 건물, 연인으로 추정되는 두 여성과 목이 졸린 채 죽어가는 여인…. 브르통은 이게 무슨 뜻인지 백 퍼센트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쨌건 초현실주의 기법, 데페이즈망(depaysement·낯익은 대상을 예상치 못한 곳에 배치하는 기법)을 적극 활용한 건 분명해보였다. "순수한 초현실적 요소로 충만한 칼로의 그림은 (…) 독특한 유머와 잔혹함을 함께 담고 있다." 브르통이 쓴 찬사의 감상평이었다.
"당신은 초현실주의계의 진주가 될 수 있어요. 같이 프랑스로 갑시다."
곧장 칼로와 다시 마주 앉은 브르통은 다짜고짜 파리에서 전시를 열 것을 제안했다. "문제가 있어요? 남편 리베라가 마음에 걸리는 건가요?" 브르통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칼로에게 되물었다. "브르통 선생님. 그런 건 절대로 아니지만…." "좋아요. 그럼, 일단 갑시다!" 브르통은 특유의 불도저 기질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밀어붙인 덕에 칼로의 그림은 1년 뒤 파리의 갤러리에 걸릴 수 있었다. 그의 눈썰미는 적중했다. 칼로의 작품은 파리 땅을 밟은 직후부터 바로 이목을 끌었다. 특히 그 사이 새롭게 그린 〈두 명의 프리다〉가 화제 몰이를 했다. 이는 칼로의 이중 자화상이었다. 수수한 멕시코 전통 옷을 입은 오른편의 칼로, 화려한 유럽 빅토리아풍 드레스를 입은 왼편의 칼로가 나란히 앉은 작품이었다. 가장 큰 존재감을 보이는 건 두 칼로가 각각 품은 심장, 그리고 이어지는 핏줄이었다. 오른편 칼로의 심장은 밋밋해보인다. 하지만 왼편 칼로의 심장은 반으로 잘린 듯 속이 훤히 보인다. 가위에 잘린 핏줄에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는 분명 〈물이 내게 준 것〉만큼 기괴한 작품이었다. 그간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강렬한 표현의 결과물이었다. "이토록 과감한 초현실주의 그림은 처음이군." 그 건방진 파블로 피카소, 그토록 칭찬에 인색했던 마르셀 뒤샹 등 현대미술 기수들도 칼로의 작품을 인정했다.
'(…) 칼로의 표현은 다소 과격하지만, 그녀만의 독보적인 초현실 세상을 갖고 있는 건 확실해보인다.'
칼로는 작업실에 앉은 채 자기 그림을 평가한 기사를 읽고 있었다. 그녀의 초현실주의자로 이름값을 나날이 높였다. 하지만 정작 칼로는 이 모든 상황에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나 했는데, 다들 똑같아…." 한숨까지 길게 내쉬었다. 대체 왜? 사실 칼로는 스스로 초현실을 그린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칼로가 긋고 칠한 건 처절한 현실이었다. 쉼 없이 몰아치는 고통과 신음의 순간들이었다. 〈물이 내게 준 것〉 속 조개껍데기부터 〈두 명의 프리다〉에 그려진 쪼개진 심장 모두 당장의 상황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칼로는 이 모든 게 상상에서 건져올린 무의식의 부산물 따위로 읽히는 데 모욕감까지 느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제 현실을 그리고 있어요."
칼로는 언젠가부터 발언 기회가 있으면 꼭 이렇게 말했다. 브르통은 칼로가 괜히 쑥스러워 이런 말을 한다고 여겼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작고 가녀린 그녀가 화폭 속 그 처참한 장면들, 피비린내 나는 모든 광경에 있었다곤 차마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칼로의 말은 진심이자, 진실이었다.
"한 세기 분량의 고통이 이어졌어요. 거의 이성을 잃을 만큼…."
언젠가 칼로는 자기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과장도, 허풍도 아닌 솔직한 고백이었다. 불의의 사고와 평생의 후유증, 사람과 사랑의 배신은 칼로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신은 그녀에게 절망과 좌절만 바라는 듯 무자비했다. 하지만 칼로는 굴복하지 않았다. 배 앞머리가 파도를 마주 보고 있어야 외려 침몰하지 않듯, 그녀 또한 밀려오는 풍랑을 당당히 직시했다. 휩쓸리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그녀는 외려 파도를 잡아타고 헤엄치는 법을 익혔다. 그렇게 '결국'으로 끝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삶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생으로 바꿔버렸다. 그녀의 참혹하고도 절절한 예술은 이 여로에서 피어나는 꽃이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네…. 여기가 어디지요?" 눈을 뜬 칼로는 침대 위에 있는 자기 몸을 볼 수 있었다. 석고 깁스로 둘둘 싸인 팔다리도 시야에 들어왔다. "선생님, 환자가 깨어났어요!" 칼로는 간호사의 다급한 외침도 들을 수 있었다. "아가씨. 여기는 병원이에요." 달려온 의사가 칼로의 맥을 짚으며 말했다. 그 사이 정신이 든 칼로는 이제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제가 왜 여기에 있지요?" "기억 없어요?" 기억? 칼로는 흐릿한 잔상을 되짚었다. 먼저 떠오르는 건 하굣길 버스에 올라탄 장면이었다. 그다음 기억한 건 귀가 찢어질 듯했던 굉음이었다. 그래, 그때 웬 전차 한 대가 버스로 돌진하고 있었다. 전차에 쾅 부딪힌 버스는 통째로 들렸고, 승객들 또한 다 공중에 붕 떴고, 곧 화염과 비명이…. "그 사고로 제가 이 꼴인 건가요?" "그래요." 칼로의 물음에 의사가 진료기록을 넘기며 대답했다. "칼로 양." 의사는 목소리를 깐 채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이런 말을 하게 돼서 유감이에요." "네?" "아가씨는 척추와 쇄골, 늑골, 골반에 다리까지 골절돼 있어요. 그리고…." 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버스 손잡이 난간 말이에요. 녀석이 아가씨의 옆구리를 뚫고, 자궁을 관통했어요. 평생 심각한 후유증이 따라올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당신 삶은 결코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재활에 집중하되, 앞으로의 인생도 고민해보세요." 이제 칼로는 고개 떨군 의사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차츰 멀어질 때까지 말없이, 계속. 이는 1925년, 칼로가 고작 열여덟 살 때 마주한 불운이었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칼로는 어릴 적부터 총명한 아이였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칼로는 고작 여섯 살인 1913년에 뜻밖의 병에 걸리고 말았다. 척추성 소아마비였다. 이 때문에 오른쪽 다리가 얇아지는 장애를 안아야 했다. 칼로는 그럼에도 당차게 살았다. 1922년에는 멕시코 국립 예비학교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칼로는 이곳에서 의과대학 진학 자격을 딸 수 있는 5년 과정을 등록했다. 그녀는 의사가 돼 자기처럼 몸이 편치 않은 사람들을 도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3년 뒤 그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었다. 불행이 또 한 번 그녀의 생을 죽어라 끌어내린 격이었다. 칼로는 1년 가까이 꼼짝없이 병원 침대에서 생활했다. 어느 날 부모가 그런 칼로의 침대 위에 거울을 달아줬다. 하릴없이 자기 얼굴만 보던 그녀는 문득 자화상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에 이끌렸다. 칼로는 손만 겨우 움직이며 화폭에 선을 그었다. 찔끔찔끔 색을 칠했다. 그녀는 어느새 온종일 그러고만 있었다. 칼로는 의사의 충고대로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그게 화가로의 일생이었다. "깁스를 하고 누워있는 게 끔찍해서 뭐든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그림을 시작했지요." 훗날 그녀의 회상이었다.
칼로는 진지했다.
칼로는 자기에게 예술 감각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신물이 나는 재활 훈련 끝에 퇴원한 그녀는 곧장 누군가를 찾아갔다. 그녀가 아는 가장 유명한 화가, 리베라였다. "그러니까, 이 자화상을 보고 네가 재능이 있는지를 판단해달라고?" 리베라는 다짜고짜 그림을 들이민 칼로에게 되물었다. "네. 저는 정말 심각해요." 리베라는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요청을 승낙한 건 소녀의 당찬 눈빛과 당돌한 매력 탓이었다. 리베라는 칼로의 그림을 훑어봤다. 그의 동공이 점점 커졌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리베라는 장난기를 싹 걷은 얼굴로 칼로에게 되물었다. "프리다…. 프리다 칼로요."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좋아요." 리베라는 이날부터 칼로의 멘토를 자처했다. 칼로는 드디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몰랐다. 훗날 "나는 두 번의 큰 사고를 겪었다. 첫 번째 사고는 경전철과 충돌, 두 번째 사고는 리베라와 만난 일이었다"라고 말하게 될 줄은. 나아가 "두 사고를 비교하면, 경전철보다도 리베라가 더 끔찍했다"며 피를 토하게 될 것을.
이날 결혼식은 칼로 부모의 말처럼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처럼 보였다.
리베라와 칼로는 키 20㎝, 몸무게 100㎏ 이상 차이를 가진 남녀였다. 나이 차만 해도 스물한 살이었다. 1929년, 그런 두 사람이 가약을 맺었다. 많은 이의 예상과 달리 칼로가 리베라를 더 사랑했다. 칼로는 리베라의 예술, 나아가 특유의 혁명 정신까지 숭배했다. 칼로는 매일 아침 리베라의 수발을 들었고, 매일 밤 그의 몸을 씻겨줬다. 남편이 아프면 더 아파했고, 이 위대한 화가에게 영감을 주고자 늘 화려한 옷을 두르고 다녔다. 이 무렵 칼로의 소원은 하나였다. 리베라의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실제로 칼로는 여러 번 임신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교통사고 후 망가진 골반과 자궁이 바람을 꺾었다. 잉태의 기쁨은 매번 상실의 좌절을 끌고왔다. 1932년, 끝내 두 번째 유산을 겪은 그녀는 절규하는 마음으로 〈떠 있는 침대〉를 그렸다. 그림 속 벌거벗은 칼로는 하반신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녀의 몸에서 뻗어가는 핏줄에는 끝내 만나지 못한 태아, 원망스러운 골반과 함께 달팽이, 시든 꽃, 철제 장치, 하반신 모형 등이 묶여있다. 그런 그녀가 있는 곳은 황량한 공장 구역이다. 물컹한 생명과 딱딱한 기계, 꿈틀대는 희망과 이를 말려버린 절망이 대비되는 모습이다.
칼로는 리베라가 힘들 때 함께 울어줬지만, 리베라는 칼로가 괴로울 때 함께 눈물짓지 않았다.
사실 리베라는 치명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병적인 여성 편력이었다. 리베라는 칼로와 만나기 앞서서도 이미 두 번의 결혼을 했고, 둘 다 바람기 때문에 이혼한 상태였다. 리베라는 '코끼리' 말고도 섬뜩한 별명을 더 갖고 있었는데, 그건 '식인귀'였다. 이 안에는 그가 닥치는 대로 여자를 덮치고 다닌다는 뜻도 있었다. 리베라는 칼로와 살면서도 그 버릇을 못 버렸다. 칼로가 여러 차례 병원을 오가는 동안 또 한눈을 팔았다. 칼로는 처음에는 모른 척을 했다. 하지만 그런 칼로도 리베라가 그녀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불륜을 벌인 일은 참을 수 없었다.
분노에 찬 칼로도 맞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둘은 언뜻 봐선 쇼윈도 부부가 된 듯 보였다. 다만, 칼로의 일탈은 리베라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한 행보에 가까웠다. 그 사이 그녀는 자신의 고뇌와 아픔을 화폭에 흩뿌리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칼로는 이 무렵 브르통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눈물겹도록 생생한 그간의 현실을 그렸을 뿐인데 초현실주의자가 된 것이었다. 이제 〈물이 내게 준 것〉 속 물이 새는 조개는 칼로의 아픈 자궁처럼 보인다. 무너지는 큰 건물은 리베라의 존재, 목이 졸린 여성은 칼로 본인처럼 여겨진다. 〈두 명의 프리다〉 속 메마른 심장을 찬 오른쪽의 칼로는 현재 모습, 이를 도려내고 핏줄까지 잘라버린 왼쪽의 칼로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본모습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결과적으로는 칼로는 브르통의 도움을 받긴 했다. 칼로의 이름값이 높아질수록 그녀의 기구한 사연 또한 널리 알려졌다. 칼로는 어느덧 초현실주의 울타리를 넘어 개인의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화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여기에 있으면 당신이 내가 쉴 공기까지 다 가져가는 기분이 들어."
1939년, 리베라가 대뜸 칼로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지요?" 칼로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리베라는 그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이혼할 때가 된 것 같군." 둘은 그렇게 갈라섰다. 칼로도 처음에는 외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미국으로 훌쩍 떠난 칼로는 자유분방한 삶을 즐겼다. 그런데, 그럴수록 공허함도 커져만 갔다. 칼로는 인정해야 했다. 리베라 말곤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 걸. 그녀는 눈에 띄게 시들었다. 리베라는 칼로가 있어 숨을 쉴 수 없다고 했지만, 칼로는 리베라가 없어 숨을 쉴 수 없었다. 십수 년이 지난 듯했는데 고작 1년이 흘렀다. 널브러진 칼로 눈앞에 리베라가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꿈인 줄 알았다. "매 순간 그 말을 후회했어. 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백하는 그는, 환영이 아닌 진짜였다. 당신도 같은 마음이었구나. 칼로는 훌쩍이는 리베라를 말없이 끌어안았다. 둘은 다시 결합했다.
칼로도 이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불운의 신은 아직도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리베라는 얼마 안 돼 여배우와 또 염문을 뿌렸다. 그는 이제 칼로가 알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칼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았다. 표면적으로는 리베라의 부인이었지만, 이미 오랜 세월 그와 동침하지 않았다. 재정적인 면에서도 독립을 일군 상태였다. 칼로는 1946년에 〈상처 입은 사슴〉을 그렸다. 칼로는 사슴의 모습을 한 채 숲을 달리고 있다. 그녀 몸에는 아홉 개의 화살이 깊숙이 박혀있다. 소아마비, 열차와의 충돌, 여러 차례 겪은 유산과 후유증, 그리고 리베라, 또 리베라…. 그것은 그녀가 여태 겪은 모든 대형 사고였다. 그럼에도 그림 속 칼로의 표정은 담담해보인다. 화폭 왼쪽 밑에는 운명을 뜻하는 '카르마(Carma)'도 쓰여있다. 피가 뚝뚝 흐를 만큼의 통증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결국' 스러지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자. 칼로의 강한 의지가 캔버스 너머로도 전해진다.
칼로는 리베라와 재혼한 직후부터 급격한 건강 악화를 겪었다.
이미 오래전 망가진 몸은 서서히 기운을 빼고 있었다. 그간 서른다섯 번의 수술로 나사를 조이고, 다시 조였지만 그때뿐이었다. 차츰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걸 칼로 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병세가 악화한 그녀는 곧 오른발을 절단해야 했다. "발이 왜 필요하지? 내게는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는데." 칼로는 이 무렵 이런 글을 썼다. 〈인생이여, 만세〉. 칼로는 죽기 여드레 전 이 그림을 완성했다. 옹골찬 수박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다. 새빨간 과육, 섬세하게 박힌 검은 씨는 그녀의 강렬하고도 질겼던 삶을 의미하는 듯해 보인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 없지만, 그래도 "인생 만세"를 외칠 만큼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처절한 유작이었다.
"당신 곁에서 곧 떠날 것 같아요."
1954년 7월, 칼로는 리베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폐렴에 시달리던 그녀는 그날 잠들 듯 숨을 거두었다. 47년간의 기구한 생은 그렇게 마지막 장에 도달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칼로가 일기장에 쓴 마지막 글이었다. 매일 도망치지 않고 마주했기에, 매 순간을 원 없이 품고, 유영하고, 맞서 싸웠기에 남길 수 있는 문장이었다.
〈참고 자료〉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 프리다 칼로, 비엠케이
프리다 칼로, 수잔 바르브자, 북커스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르 클레지오, 다빈치
프리다 칼로, 반나 빈치, 미메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