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에티카 4부 전반부를 읽고나서
윤리학 4부 : 인간의 예속 혹은 감정의 힘에 관하여 (정리 1~ 정리 37)
스피노자는 윤리학 4부를 시작하며 인간의 예속에 대해서 “감정을 제어하거나 억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력”이라고 정의내린다. 감정에 사로잡힌 인간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운에 따라 이리 저리 휩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는 또한, 완전성, 불완전성, 선, 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1. 완전성과 불완전성
스피노자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보통 생각하는 완전성과 불완전성은 참된 인식과는 거리가 멀며, 그것은 편견에 가깝다. 만약 제작자가 건축물을 짓고있는 것을 관찰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건출물이 완성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건축물을 짓는 제작자의 의도와 마음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즉, 특정한 기준이 선행되어야 그것의 완전성/불완전성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인간은 특정한 사물들 (예컨대, 집, 건축, 탑 등)에 대한 보편 개념을 설정하기 시작하며, 그러한 특정한 보편 개념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바탕으로 그것의 완전성과 불완전성을 규정짓는다. 근대 이후로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에 대해서 불완전성이라는 규정을 짓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러한 특정한 보편 개념에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인간들은 그것의 ‘목적’과 연관짓는다. 인간은 모든 사물, 심지어는 자연까지 특정한 목적이라는 그들의 사유를 접목시킨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보기에 그것은 인간의 목적론적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자연의 활동에는 목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신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국 완전성과 불완전성은 스피노자가 보기에 단지 사유의 양태일 뿐이다.
반면에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완전성은 ‘실재성’이다. 즉, “자신이 실존하고 어떤 결과를 산출하는 한에서 완전성을 그 사물의 본질로 이해한다.”
2. 선과 악
스피노자는 선과 악에 대해서 “우리가 사물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하는 개념 혹은 사유의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언급한다. 동일한 사물이 선이 될 수도 있으며, 악이 될 수도 있으며,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재미있게도) 이러한 용어들(선과 악)이 보존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한다. 그 이유는 스피노자에 따르면, “우리는 인간 본성의 모델로 여길 수 있는 인간의 개념을 형성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앞서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보편 개념을 형성하려 하며, 선과 악은 인간 본성에 관한 보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선’과‘악’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모델(가치와 이상)을 스스로 ‘형성’한다. 그렇기에 ‘선’과‘악’이라는 가치는 인간중심적이지만 여전히 가치있다.
스피노자가 정의하는 선이란, “우리가 형성하는 인간 본성의 모델에 점점 더 가깝게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며, 그가 정의하는 악이란, “우리가 그 모델이 되어가는데 있어 방해가 된다고 확실히 아는 것”이다.
3. 정리 독해
<정의 3~4>
스피노자는 정의 1~4까지 ‘선’과‘악’의 정의, 그리고 ‘우연적인 것’과 ‘가능적인 것’의 정의에 대해서 언급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스피노자가 우연적인 것과 가능적인 것을 구분하였다는 점에 있다.
우연적인 것이란, 우리가 사물의 본질만을 따져볼 때, 그 실존을 필연적으로 정립하거나 혹은 필연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개별 사물이라 이해한다.(정의 3)
가능적인 것이란, 우리가 사물이 산출되는 원인만을 따져 볼 때, 그것을 산출하게 만드는 원인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개별 사물이라 이해한다. (정의 4)
--> 내가 생각하기에 스피노자는 어떠한 사물의 본질과 원인을 구분하여, 그 사물의 본질의 개연성을 우연적인 것, 그 사물의 원인의 개연성을 가능적인 것으로 구분한 듯 싶다.
<정리 1~4> - 자연 속의 인간
정리1부터 4까지 스피노자는 인간의 수동성에 대해서 강조하는 듯 싶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다른 사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정리 2) 인간이 자기 존재를 보존하려는 힘은 한계가 있으며 외부 원인의 힘은 이를 능가한다.(정리 3)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정리 4) 그러므로 인간은 온 자연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 나 또한,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은 수동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는 바이다.
<정리 5~8> - 정념과 감정
스피노자가 보기에 인간의 정념이라는 것은 외부 원인과의 비교를 통해 형성된다. 인간 스스로의 역량에 의해서 성장하고 지속하지 않는다. 정념 혹은 감정은 인간의 활동 및 역량을 능가할 수 있다.(정리 6) 그러한 감정들은 더 크고 상반되는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면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없다.(정리 7) 선과 악에 대한 인식 또한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일 뿐이다.(정리 8)
--> 특히 스피노자가 인간의 정념이나 감정이 더 크고 상반되는 감정에 의해서만 억제되고 제거된다고 말한 부분이 흥미롭다. 인간은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정리 7에서 감정이 제거될 수 있다고 언급한 부분은 수정이 필요하다. 인간의 감정은 억제되거나 흐릿해질 뿐이지, 영원히 제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우리가 과거에 겪은 감정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제거된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기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언제든지 나에게 영향을 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더 큰 상반되는 감정에 의해서만 억제될 뿐이다. 물론 긴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감정이 나에게 주는 영향력이 무뎌질 수는 있으나, 이 또한 완전하게는 불가능하다.
<정리 9~13> - 감정의 힘
스피노자는 정리 9부터 13까지 감정의 힘에 대해서 언급한다. 모든 감정의 힘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그 원인이 현재 함께 있다고 표상하는 감정이, 더욱 가깝고 현재적인 감정이 더욱 강력하다.
<정리 14~ 17> - 선과 악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생기는 욕망들
스피노자는 정리14부터 17까지 선과 악에 대한 참된 인식에서 생기는 욕망들을 정리하며 그것이 제거되거나 억제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언급한다. 대표적으로 수동적 감정들로부터 생기는 많은 욕망에 의해, 현재의 기쁨을 향한 욕망에 의해, 현재 사물을 향한 욕망에 의해 더욱 쉽게 억제된다.
<정리 24~ 25> - 자기보존
자기 존재를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다. 그러한 노력은 그 사물의 본질에 의해서만 정의된다. 그 누구도 다른 것을 위해 자신을 보존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정리 29~ 30> 본성과 선과 악
어떠한 것이 우리와 완전히 다른 본성을 지니면, 그것은 우리에게 선이나 악이 될 수 없다. 우리와 다른 본성을 지닌다는 것은 공통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 32~ 35> 인간의 정념과 이성, 그리고 본성
인간들이 정념에 종속되어 있다면 서로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본성상 불일치하며 서로 상반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한에서 본성상 서로 일치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역설적으로 이성에 따라 생활하는 인간이 그 본성과 가장 잘 일치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성에 따라 생활한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 활동하는 것이다.
--> 매우 신기한 말이다. 보통 이성과 인간의 본성을 구분하는데, 인간의 본성을 이성과 동일시해서 스피노자는 생각하고 있다.
4. 결론
이번 4부 초반부를 읽고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선과 악에 대한 스피노자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선과 악(정의 1,2)은 인간 개개인에게 있어서의 정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유익한 것이 상대방에게 있어서 유익하지 않고, 나에게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유익할 경우를 생각해보면, 당연하게도 선과 악의 개념은 매우 모호해진다. 아직 완벽하게 이해를 못하고 있어서, 스피노자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