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올해도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0월쯤 되면 교사도 학부모도 뭔가 불안하고 조바심 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느긋하고 좀처럼 주변의 말에 휩쓸리지 않는 엄마라 할지라도 귀를 쫑긋 세우고 레이다 영역을 넓히기 마련입니다. 유튜브 자녀교육 콘텐츠를 열심히 탐색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찾아보면 볼수록 더 불안해집니다. 미취학 아동을 둔 엄마는 입학이 걱정, 1,2학년 학부모에게는 3학년이 갑자기 어려워지니 잘 준비해야 한다네요. 또 초등 고학년을 놓치면 크게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서점에도 한 번 가봅니다.
‘전부’, ‘중요한’, 평생’, ‘모든 것’ 이란 단어가 확대되어 눈에 들어옵니다. 더 불안해지는 순간입니다.
도대체 중요하지 않은 시기와 학년은 언제일까요? 없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그동안 실시하지 못했던 학부모 공개수업과 대면 상담이 각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있습니다. 저도 3년 만에 아이의 학교생활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설레기도 하면서 긴장도 됩니다. 이번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 3회에 걸쳐 그동안 학부모 상담을 통해 가장 많이 들어온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해 제가 해드렸던 조언을 바탕으로 저의 생각과 제가 해온 방법들을 글로 쓰려고 합니다. 먼저 가장 질문이 많았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에 하고 다음엔 공부습관 관련 질문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원래 책을 좋아하는 성향의 아이도 있지만, 책을 읽도록 만들려면 대부분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선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노력과 연습을 통해 익힐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는 어릴 때 자신에게는 한글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 나가서 실컷 뛰어 놀아라’ 하시며 부모님은 항상 책을 열심히 재미있게 있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책은 정말 재미있는 걸로 가득 차 있고 그걸 어른들만 몰래 즐기기는 거야!’ 그래서 자는 척하다 부모님이 잠들면 몰래 일어나 책 읽는 흉내를 냈다고 합니다. 정재승 박사의 부모님 방법이 통했던 이유는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할려고 마음 먹었던 일도 옆에서 시키거나 강요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지잖아요. 아마 정재승 박사의 부모님은 아이 스스로 결핍을 느껴 간절히 그것을 성취하려는 동기를 심어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해 봅니다.
1) 부모님이 많이 읽으셔야 합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책을 재미있게 열심히 읽으면 아이는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책장을 슬쩍 넘겨보게 되지요. 저도 퇴근 후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서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식탁에서 소파에서 침대에서 각각 다른 주제의 책들을 손에 집기 가까운 곳에 두고 읽습니다. 그럼 아이가 오다 가다 아빠가 읽는 책이 궁금해 책장을 들쳐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슬며시 옆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이들은 제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가끔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책을 봐도 되는지 묻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점을 이용해 학생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일부러 읽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선생님주변에 머무르길 좋아합니다. 학년이 어릴수록 그 성향이 더 강해 책 읽기 습관을 들이기 정말 좋은 시기입니다. 힘들지만 아이에게 부모님이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습니다. 그래서 가끔 너무 피곤할 땐 책을 읽는 척 할 때도 있습니다.
2) 읽으라고 하지 말고 읽어주세요
부모님이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도 절대 책을 읽지 않는 강적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책을 읽어주는 것입니다. 초등학생 정도 아이라면 스토리가 있는 비교적 긴 호흡의 이야기책을 읽어주되 미리 그날 읽어줄 양을 정해두고 약속한 양이 차면 칼같이 ‘내일 계속’하고 멈추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실제 책을 읽지 않는 저의 둘째 아이에게 썼던 방법입니다. 어느 순간 뒷부분이 궁금해서 혼자 읽고 있더라구요. 이렇게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되면 서서히 혼자 읽기 시작합니다. 이 방법도 인내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학습만화만 보려고 해서 걱정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십니다. 학습만화만 봐도 괜찮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책은 읽는다라고 표현하는데 학습만화는 본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학습만화의 그림에 초점을 두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습만화의 대표 ‘why시리즈’ 중 한 권이라도 끝까지 읽어 본 책이 있으신가요?
저도 제 큰 아이 때문에 똑같은 걱정을 했었습니다. 초등 2 학년까지 ‘why시리즈, 그리스 로마신화, 마법천자’과 같은 학습만화만 읽었고, 다른 책은 보려고 하지도 않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서울로 고궁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3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경복궁, 경희궁, 창덕궁 등 궁궐을 관람 하는데, 2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해설사의 질문에 모두 답을 하고 심지어 해설사도 모르는 내용을 저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뿐 아니라 저도 너무 놀라 ‘그걸 다 어디서 배웠어?’ 하니까 ‘why책에서 읽었어!’ 하더라구요. 여행에서 돌아와 딸아이가 평소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why 궁궐이야기’의 책장을 넘겨보니 정말 많은 학습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그동안 딸아이와 학생들에게 ‘만화책 좀 그만 보고 다른 책도 좀 읽어라’라고만 했지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더라구요.
1) 지식학습 스스로 반복해 즐길 수 있는 학습만화가 효과적
이후 학습만화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찬찬히 살펴보니 과학지식, 역사, 사회학, 한자 등 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학습만화가 효과가 좋았습니다. 무조건 읽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부모님께서 책을 보고 판단해 양을 조절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습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이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줄글책은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사회과학 분야의 방대한 지식을 힘들이지 않고 익히기에는 스스로 반복해서 즐길 수 있는 학습만화가 좋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만화로 된 책이 아니라 줄글책으로 읽으면 더 좋겠지만 학습만화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책을 정말 안 읽는 아이는 만화도 읽지 않더라구요.
2) 관심분야의 좋은 책을 찾아 함께 읽으며 확장시키기
그렇다고 만화로 된 책만 계속 읽는 것은 안되겠죠. 이후에는 바로 확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확장이 이루어지려면 이제 부모님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즐겨 읽는 학습만화의 분야를 눈 여겨 보았다가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책들을 찾아 권하고 함께 읽는 것입니다. 권하기만 하면 절대 읽지 않더군요. 제가 먼저 읽고 책에 대해 아이에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물론 엄청 재미있다는 과장을 보탠 유혹이 필요합니다.
“만약 네가 이 책을 읽으면 넌 정말 너 자신이 대견하다 생각할 거야!”
“아주 뿌듯한 느낌이 들 거야!”
“만화가 없어도 상상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걸. 도전해봐!”
거의 꼬시다시피 했지요. 그렇지만 책을 함께 읽으며 부모님과 대화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길어지다 보니 아이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 활동이 아이의 자존감을 크게 향상시켜줄 뿐 아니라 부모님이 자신을 아이가 아니라 어른처럼 존중해준다는 느낌까지 받더라구요. 저의 아이도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모두 좋아하는 활동이 되었습니다.
제 큰 아이는 그리스 로마신화 만화를 정말 좋아했는데, 이는 별과 별자리에 관심이 옮겨가게 되었고 이후 천문학과 역사에 관심을 가지며 관심주제와 읽기의 영역도 확대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학습만화를 보지만, 진짜 그리스 로마 신화가 궁금해 ‘일리아스’를 찾아 읽고 10대를 위해 쉽게 쓰여진 천체물리학책을 도전하여 읽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정말 많이 읽어서 신들과 님프 영웅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우고 있어서 ‘일리아스’가 많이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일리아스’는 저도 같이 읽다 진작 포기했는데 말입니다. 엄마, 아빠도 포기한 그 책을 혼자 다 읽어 냈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 지 모릅니다. 그때는 아주 양껏 칭찬만 해주면 됩니다.
학습만화라도 많이 보는 아이는 책에 분명 관심이 있는 아이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옆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 주시면 아이는 분명 아주 훌륭한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성장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