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워봐야 다 부질없다
오늘 아침의 일이다.
나가야 하는 시간이 10분 밖에 안남았는데도 1호가 일어나질 않는다.
당연하다.
어제 늦은 밤까지 잠들지 않고 뒹굴거리는 소리가 났으니까.
심지어 어제는 초딩 고학년도 좋아한다는 초대형 키즈카페에 다녀왔기 때문에 상당히 피곤했을텐데도 마치 버티듯 잠들지 않고 노는듯 했다.
“일어나” 하면 “으응~”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 “일어나자”, “지금 *시 **분이야”라는 말을 과장 없이 30번쯤 한 것 같다.
아침 출근 준비에 정신 없는 와중에도 1~2분 간격으로 애를 깨워야 했다.
1호는 중간이 없다.
일찍 일어나면 훌쩍 일찍 일어나서 아침 밥(반드시 밥이어야 한다)을 차려달라고 하고, 아니면 거의 5분 전에 일어나서 초읽기 등교 준비를 한다.
1호의 등교 후 약간의 소강 상태.
이제는 1시간 안에 3호를 깨워서 등원까지 시켜야 한다.
3호는 거의 기절 상태였다.
어제 1호와 같은 키즈카페에 다녀왔으며, 원래 아침 잠이 많고, 마찬가지로 늦게 잤다.
잠든 채로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었다.
등원시키고 바로 출근해야 해서 내 가방도 챙기고 오늘 퇴사한 직원 주려고 산 선물도 챙겼다.
월요일이다 보니 3호의 낮잠 이불도 챙겼다.
현관에 줄세우듯 가방들을 정렬시키고 있으니 3호가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눈이 아직 풀려 있으나 이동 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패딩을 입혔다.
엘레베이터 앞에서부터 업어 달라고 했다.
엄마가 오늘은 짐이 많아서 몹시 힘드니 걸어가자고 했다.
업어 달라고 했다.
이제 곧 6살 언니도 되는데 아기처럼 업혀 다니는건 좋지 않다고 했다.
업어 달라고 했다.
공동 현관을 벗어난 아이는 버티기를 시전했다.
돌덩이라도 된 마냥 움직이지 않고 징징 거렸다.
내도 왠만하면 이상적인 훈육 코스를 밟고 싶었으나, 오늘은 늦었다.
나도 아침부터 미팅 일정이 있다.
업었다.
애도 패딩 나도 패딩.
오른쪽 어깨에는 아이패드가 들어 있는 가방.
양손에는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과 선물 쇼핑백과 낮잠 이불.
팔은 빠질 것 같고 쇼핑백이 걸린 손목은 피가 안통하고 애는 등에서 자꾸 흘러 내리니 허리를 피지도 못하겠고.
“내려와서 걷자. 엄마 너무 힘들어.”
“…”
“아가, 엄마 진짜 힘들어서 그래. 짐도 무겁고 자꾸 흘러내려서 균형 잡기도 힘들어.”
“…”
한 10번쯤 해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1호와 3호 사이에, 오늘부터 방학이라 이모와 있을 예정인 2호가 일어나서 엄마 가지 마라, 나랑 놀아라, 왜 가냐, 언제 올거냐 등등 한바탕 땡깡이 있었지만 그건 이제 기억도 안난다.
나이먹고 애들 커서 다 집 나가고 연락도 없으면, 역시 자식은 키워봐야 다 소용 없다는 생각을 한다는데, 사실 난 아침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금이야 옥이야 키우면 뭐하나.
매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셋 중 누구 하나라도 서운한 마음 가질새라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 다녀 봤자.
바르게 키워보겠다고 공부해가며 훈육하는 법을 익히고 예의와 매너를 가르치니 밖에 나가면 늘 칭찬 들으며 뿌듯해 봤자.
아침 등원 등교는 오로지 내 몫인 것도 다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나도 출근 준비해야 하는거 다 알고 있으면서.
아무리 서둘러도 늘 빠듯해서 이른 아침 미팅은 엄두도 못내고 겨우 출근 시간 맞춰서 가는데.
모르는거 아니면서 깨워도 일어나질 않고 못일어날거 알면서 빨리 잠들지도 않고, 엄마도 출근 준비로 정신 없는거 알면서 조금도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1호.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래 모를 수 있지.
그래도 너무 힘들다는데, 다 컸으니 조금만 내려와 걷자는데, 나중에 업어주고 안아주고 하겠다는데, 지금 엄마가 짐이 너무 많다는데.
그런거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지금 당장 내가 졸리고 힘드니 무조건 업고 가라는 3호.
내가 아무리 배려하고 위해줘봐야 뭐하나 싶다.
결국 돌아오는건 ‘엄마 상황은 알 바 아니고 난 안돼’ 뿐인데.
아직 한참 키우는 중이지만, 정말이지 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 없다.
나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거야.
이젠 아무것도 희생 안하고 양보 안하고 배려 안하고 돕지 않고, 그냥 나만 생각하고 살거야.
뾰족한 가시가 잔득 돋아서 심장이 성게가 됐다.
당장은 내가 찔려서 아프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거라곤 이것 뿐이라 꼬옥 끌어안게 된다.
사는게 뭐 이래.
정말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