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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디트 Feb 14. 2022

어린이라는 세계 : 키덜트라는 세계

Compiling 1.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초입에는 이런 글이 있다.


  '원래는 내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사소하고 싱거운 이야기라도 좋으니 내 생활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자꾸 어린이 이야기가 나왔다. 깊은 무의식을 발견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나눈 이야기나 어린이에 대해 생각한 것, 지나가다 본 어린이나 어린이에 대해 누군가와 주고받은 대화들이 제일 쓰고 싶은 이야기였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저자가 당황했듯 나도 당황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뭐라도 쓰려고 하면 직장에 대한 이야기, 게임에 대한 이야기, 결국 게임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당황한 김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좋게 생각하자면 뭔가 새로운 걸 하려고 들면 당황하게 마련인데, 지금처럼 먼저 당황하고 시작하면 좀 덜 당황하지 않을까.(지금까지로 판단하건대 그다지 차도가 있는 것 같진 않다.)


  반드시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마주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 김소영 님은 진지하게 일을, 어린이를 바라봤다. 내 이야기를 썼는데 쓰고 보니 깊고 유쾌하고 자연스러운 어린이의 이야기가 되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침 나도 내 일을 진지하게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동기로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책의 내용도 나의 멘토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린이의 순수함을 한창 보여주다가도 어린이를 향하는 어른의 편견을 슬쩍 꼬집는다. 그중에서도 편견, 그러니까 어린이라는 단어에 마치 '미성숙하고 불완전하다'는 택이라도 달려있는 것처럼 구는 어른들의 무례함을 조곤 조곤 나열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널려 있어서 그렇다. 나 자신이 어른이니까 당연히 무례한 어른에서도 공감했지만, (나도 참 무례한 어른이었다.) 무례한 편견에 당하는 피해자로서도 공감했다. 나의 자의식도 그런 편견에 종종 시달려 왔다.


  그러니까 게임 말이다. 게임.


  게임을 선두로 한 여러 문화들을 즐기는 어른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키덜트다. 감히 이 단어를 판단해 보자면 무례함 + 무례함, 아니 무례함 * 무례함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 단어에 숨어있는 무례함은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어린이는 미성숙하다', '어린이가 즐기는 문화가 따로 있다', '어린이 때나 즐기는 문화를 어른이 즐긴다.' 등등.. 오만 편견들이 똘똘 뭉쳐서 볼품없다. 고전 명작, 괴혼을 아는지? 왕자님이 데굴데굴 굴려서 온갖 잡동사니들을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행성이랑 꼭 닮았다.


  급을 나누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한 것이다. 월세 사는, 전세 사는 아이들에게 '월거지', '전거지'라는 언어를 덧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키덜트처럼 명백한 차별의 뉘앙스를 띠고 있지 않으면 더 쉬워진다. 마치 '재미로 그랬는데 왜 정색하고 그러냐'라고 말하는 가해자의 언어와 흡사하달까. 덩달아 프레임에 갇혀 있는 우리로서는 하하하 자조적으로 웃을 수밖에.


  단어로 정의되고 나면 그 단어에 붙어있는 자잘한 뉘앙스들이 도매급으로 묶여 온다. 키덜트, 오타쿠, 서브 컬처, 온갖 차별들이 은밀하고 치밀하게 틀이 되어간다. 서브 컬처라니. 내 생각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 언어로 프레임화 되었기에 원색적이고 직관적인 재미에 매몰된 게 아닐까. 눈 크고 머리색이 화려한 캐릭터들이 사회 현상에 대항하는 그런 애니메이션들이 주류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언어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간간히 게이머들이 자조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곤 한다.


  '게임이 재미만 있으면 되지.'


  정말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걸까. 언어가 공고해질수록 마음이 아팠다.


  결국 내 직업을 진지하게 마주하기 위해서는 이런 언어들을 깨고 나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는 것이렸다. 근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마 거기에 대한 해답이 이 책일 것이다. 어린이라는 단어 속에 편견이 숨어있음을 온 세상에 조곤 조곤 공표할 수 있는 방법. 책을 스테디샐러로 만들어버려서 어린이에게 무례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어버리는 것.


  그 지점에서 나는 또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스테디샐러가 되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책이 되는 것부터가 너무 큰 난관이잖아, 이거.


  하지만 편견을 깨는 건 그 모든 난관을 넘어서는 대 난관일 것이다. 정말 지난한 역사를 거치고 거쳐야 서서히 바꿔나갈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이토록 하찮고 작은 내가 그런 막중한 임무의 최선봉에 설 순 없는 노릇일 테지. 하지만 적어도 뒤에서 조금씩 지원사격을 하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딱총으로 제대로 된 조준 없이 마구 남발하는 것일 뿐일지라도 아무튼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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