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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디트 Mar 24. 2022

반칙왕(2000) : 비주류 문화의 반란

Compiling 2. 반칙왕

  김지운 감독님의 초창기 작으로 반칙왕(2000)이라는 영화가 있다. 무슨 영화인고 하면, 평범하지만 무기력한 은행 직원 임대호가 프로 레슬러로 데뷔하는 내용이다. 다음(Daum) 영화에서 개요를 따오자면 아래와 같다.



은행원 임대호(송강호)는 은행 창구를 지키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살맛 나는 일이라곤 지지리도 없다. 지각도 잦고 실적도 없어 부지점장에게 욕먹고, 그의 헤드록(목조이기) 기습에 당하기 일쑤며, 짝사랑하는 은행 동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의기소침하게 지내던 임대호가 엉뚱하게 찾은 해방구는 '장칠삼 프로레슬링 체육관.'


어린 시절 반칙 레슬러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를 좋아했고, 상사의 헤드록에서 빠져나올 궁리를 하던 그는 레슬링을 배우러 나선다. 레슬링 고수 유비호와의 시합에 나설 반칙 선수를 요구받은 장 관장은 망설이다가 대호를 받아들인다. 밤이면 반칙 레슬러로 탈바꿈하는 대호는 잃었던 활기를 되찾아가고, 마침내 유비호와 혈투를 벌인다.



  어린 시절,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은 아직까지도 꽤 인상 깊다. 영화의 구성에 감명받았다거나 그 어떤 메시지에 인상 깊었던 건 아니고.. 어떻게 된 거냐면 이런 연유다.


  그 어린 나는 전형적인 일본 만화식 스토리 구성에 완전히 푹 절여져 있었다. 주인공이 수련을 겪고 그를 바탕으로 시련을 이겨낸 후 해피 엔딩에 도달하는 그 전형적인 구성 말이다. 그 틀에 이 영화를 맞춰보자니, 뭐랄까. 이 구성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완전히 어긋나는 부분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더란 말이다. 예컨대 주인공이 발돋움하기 위해 선택하는 페르소나가 호감보다는 비호감에 훨씬 가까운 '반칙 레슬러'라는 점이라거나. 소심한 주인공이 용기로 대담한 엔딩을 이끌어내는 전형적인 구성을 얼핏 따라가는 듯하다가도 마지막, 부지점장에게 우렁차게 소리 지르며 달려들 때는 미끄러지며 끝이 나는 점이라거나. 여러모로 내 기준 전형적인 이야기가 분명한 큰 틀에, 전혀 생소하고 어색하고 비호감인 재료들을 얼기설기 엮어놨더란 말이다. 그러니 영화를 다 보고 난 이후의 내 감상이 이런 식이 될 수밖에.  '어, 음.. 어?....'


  영화의 주인공이자 전형적인 은행원인 임대호는 전형적이지 않게도 늘 지각을 일삼는다. 보편적인 탄탄대로의 길을 따르고는 있지만 매우 무기력하다. 하지만 허름한 프로레슬링 체육관을 발견한 후 그 무기력함은 완전히 반전된다. 프로레슬링을 시작한 후 대호의 삶이 달라진다. 새벽같이 연습하고 집에 들어오고 부지점장의 헤드락도 간질간질, 말랑말랑한 방식으로 회피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대호와 똑같이 무력하게 삶에 짓눌려, 업무를 마치고 함께 술 마시는 정도가 일탈의 전부인 친구는 대호와 서서히, 이윽고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친구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일상들이 짓눌리다가 크게 폭발하고 만다. 아마 대호가 프로레슬링을 만나지 못했으면 갔을 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늘 지각하는 은행원으로서의 대호와 반칙 레슬러로서의 대호는 임하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이기기 위한 도구'일 게 틀림없는 반칙 도구도 사용법을 정성스럽게 연구한다. 세상이 비주류라 정의했지만,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몰두하고 노력하고 정진한다. 이런 대호의 모습에서 게이머, 나아가서 게임 제작자들의 모습을 읽는 것이 비단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게임을 대중문화라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표현이 무색하게도 게임은 아직까지도 술, 도박(나아가서 마약)과 같은 선상에서 도매급으로 묶이는 처사다. 그만큼 심하진 않지,라고 완곡하게 표현하는 사람들도 어린애들(혹은 미성숙한 어른들)이 즐기는 문화라는 마지노선은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뉴스나 칼럼은 게임이라는 문화 아래, 세부적으로 나뉘는 수많은 장르들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급진적인 비약으로 일부 게임의 단점들을 게임 전체의 문제인 양 다룬다. 세상은 여전히 게임을 비주류 문화로 본다는 증거들이 지천에 널려있다시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게임을 한다. 만든다. 즐긴다. 대호가 술 마시자고 권하는 친구에게 '나 레슬링 하러 가야 한다'라고 말하듯이 우리는 어떤 상황이건 '나 게임하러 가야 한다'라고 대답할 준비를 가슴속에 담고 살고 있다. 사람들이 '그까짓 거'라고 할 것들에 끊임없이 시간을 붓고 노력하고 갈고 닦는다.


  우리는 아마 대호와 비슷한 엔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부지점장이 아무리 눈을 흘기며 '평범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비주류 문화'에 어김없이 정진할 것이다. 게이머는 게이머대로, 개발자는 개발자대로 게임이라는 장르 아래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오늘도 공략을 뒤지고 API 사용법을 익힐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마 힘차게 부지점장에게 달려들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대호처럼 크게 미끄러지면서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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