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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디트 Apr 11. 2024

굿 윌 헌팅(1997) : 삶에 정답은 없을지라도

Compiling 3. 굿 윌 헌팅

  어느덧 성큼 봄이 다가왔다. 이 말인 즉슨, 봄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오고, 꽃들이 가지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와중에, 빌어먹을 벌레들이 강 주변에 떼지어 몰려다니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즉, 바깥 활동을 하기에는 참 좋은 조건이라는 뜻이다.(그 벌레 무리가 심히 거슬리긴 하지만, 아무튼.) 


  이 맘때가 되면 슬그머니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쳐든다. 비록 타고나길 몸치인지라 아무리 해도 잘 늘지가 않지만, 더군다나 봄 시즌에만 깔짝 하고 다시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기 일쑤인 스케이트보드지만, 아무튼 사람인지라 발전에 대한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모양인지 봄만 되면 마음이 이 모양이다. 


  스케이트보드는 참 재미있다. 어떤 점이 그렇냐면, 사람의 체형과 움직임에 정말 민감하다는 점이 특히 재미지다. 다리나 팔의 길고 짧음, 몸통의 굵고 얇음이 사람마다의 그 미묘한 무게중심을 뒤틀어 놓아서 아무리 같은 기술이라도 그 몸동작 하나만 놓고 보자면 정말 같은 기술인가 싶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보더들은 이걸 '스타일'이라고 했던가. 


  이 '스타일'이 중요하다. 스케이트보드 연습 중에 다른 사람의 팁을 아무리 훑어내도 결국 내 것이 되지 않는 이유이다. 즉, 안타깝게도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굿 윌 헌팅은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케이트보드로 치면 '스타일'이다. 당신은 당신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는가? 


  윌 헌팅은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이다. 영화의 묘사만으로 본다면 학문의 구분 없이 수없이 많은 책과 이론을 통달하고 있어서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심지어 저명한 학자들에게도 자유자재로 논리를 끌어와 눈 앞에 들이밀 수 있다. 하버드 대학생 새내기 정도는 그 논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눈 감고도 알아맞출 수 있다. 윌을 처음으로 찾아내게 되는, 세계적인 수학자 램보조차 풀어내지 못하는 수식을 '정답'이라고 흥미 없다는 듯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쉽게 정답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답이 분명한 문제가 주어진다면 최단경로로 정답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는 과연 어떨까? 윌은 안타깝게도 정답이 없는 곳에서도 빠른 시간 안에 정답을 찾아낸다. 숀의 '아내'에 대한 반응을 본 후 그는 확신한다. 이번에도 정답을 찾아냈구나. 이 약점이야말로 숀에 대한 정답이구나. 그의 연인 스카일라에 대해서는? 자신의 약점은 거짓으로 꾸며내고 자신의 장점은 우후죽순 쏟아낸다. 이것이 정답이다. 윌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윌과 램보는 동일한 인물상이다. 끊임없이 정답을 갈구하고, 정답에 목메며, 정답이 아닐 바에는 좌절을 택한다. 그렇기에 늘 정답이 있어야 한다. 램보는 숀의 인생을 '오답'이라고 정의해야 자신의 정답을 정답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숀에게 오답임을 강요한다. 술집에서 바텐더에게 저명한 인사들의 이름 끝에 자신의 이름을 들이밀었던 이유는 그 저명한 인사들이 그의 삶의 정답지였기 때문이리라. 


  그에 비해 숀은 어떤가. 


  숀은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정답에 가까워보이는 길이 있다손 쳐도 아무런 미련 없이 그 정답에 가까워보이는 길을 걷어차고 자신의 길을 갈 줄 아는 사람이다. MLB 명승부를 걷어차고 미래의 아내와 데이트를 할 수도 있고, 아내가 암으로 사망할 걸 알면서도 자신이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늘 정답이 있는 삶을 택하던 사람이 보기엔, 그의 그런 삶은 오만으로 보였을까, 아니면 만용으로 보였을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 스케이트보드는 '스타일'이 중요하다. 삶 역시 그렇다. 


  숀의 집요하고 따스한 공감 끝에 윌은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오로지 정답만을 쫓으며 정답으로 정한 테두리 바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윌의 패배 선언은 과거의 아픔으로 세워진 높은 벽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그 댐이 무너지며 속에 있던 것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윌과 숀은 껴안았다. 


  영화는 끝없는 길을 달리는 윌의 자동차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끝이 정해져 있는 비행기와 달리 자동차는 어느 길로든 빠져나갈 수 있다. 아마 지금 시대였다면 네비게이션을 썼을테고, 그러면 수많은 길 사이로 내가 지나쳐온 길을 확인할 수 있을텐데. 


  그 길은 결코 정답은 아니지만 그가 지나온 길일 것이다. 


  어느 길로 갔든 선택을 포기하지 않은 이상 그는 굿 윌 헌팅이라 불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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