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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디트 Apr 15. 2024

가타카(1997) : 타이탄 안에도 뭔가가 있다

Compiling 5. 가타카

  온통 흐릿한 곳에서 명확하게 펼쳐진 길이 있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길을 따르게 될까? 예컨대 어두운 밤. 달빛 하나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이 단 하나의 길을 비추고 있다면.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라 걷게 될까?


  빈센트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부적격이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공 수정이 일반화되어 있는 세상에서 자연 분만을 통해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의 특징들을 마치 찰흙 주무르듯이 매만져서 정형화된 특징들만 남기는 작업. 인간의 구조에 자본주의와 공장이 결합하여 주입된 사회에서의 그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마치 로또 랜덤 뽑기를 하듯이 자식을 낳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빈센트의 부모는 그렇게 했다. 프랑스의 리비에라와 같은 이름의 자동차 안에서 빈센트를 잉태했다. 그것은 의도한 선택이었을까? 사회에 대한 반항심에 의해? 물론 아니었다. 빈센트의 아버지는 '완벽한' 자식에게 줄 안톤이란 이름이 그에게 돌아가게 될 상황이 되자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치는 부분에서 그 사실이 명확히 표현된다.


  사실 '완벽한 유전자'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환경에 적응할 뿐이라고 했다. 예컨대 키가 크다는 것은 장점일까? 손 발이 작은 것은 단점일까? 눈이 큰 것은? 심지어 오래 사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단일 개체가 아닌 종, 더 작게는 유전자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들은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오래 산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면, 너무 오래 사는 종은 번식에 대한 욕망이 확연히 작을 것이고, 종 전체적으로 보면 완만하게 그 수가 줄어들 것이다. 


  다시 '종의 기원'과 진화로 돌아가자면, 우리에겐 그것을 의도적으로 거세하여 사회 다윈주의와 우생학으로 변질시켰다는 과거가 있다. 아마 그랬던 과거가 과학과 결합한다면 이 영화의 배경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걸 대변하듯 영화의 모든 소품들은 과거 회귀적이다. 그 투박하고 복고풍의 미래 양식들은 과거와 미래의 유전자를 잘 조합하여 만들어진 듯하다.


  온통 흐릿한, 랜덤 뽑기로, 그렇게 나온 돌연변이로 진화를 거듭해 오던 인류의 정체는 바로 뚜렷이 빛나는 길, 유전자 조작을 통한 우생학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결합한 우생학은 얼마나 잘 동작할 수 있을까? 더 많은 돈이 더 좋은 특질, 아니 더 프레임에 걸맞은 특질들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가능성이 완전히 자본으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빈센트가 가능성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타인의 유전자를 빌려 쓰는 방법뿐이다. 빈센트는 그렇게 제롬이 된다.


  '가능성'이 거세된 세상에서 가능성의 존재를 믿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빈센트는 동생과의 수영을 통해 그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정해진 틀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틀 바깥을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빈센트는 그 바깥을 상상할 수 있었고, 제롬은 그 바깥을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제롬은 달리는 차 앞으로 몸을 내던져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


  영화는 빈센트를 의심하던 감독관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점차 고조된다. 여기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반전이 일어나는 포인트이다. 부적격자들이 치우던 오물과 쓰레기, 하나의 각질과 눈썹마저도 이 사망사건에서는 중요한 것이 된다. 아주 하찮고 쓸데없는 것들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는 순간. 이 순간 가능성이란 어느 오브제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된다.


  마지막 순간, 빈센트는 제롬과 와인을 마시며 했던 말처럼 우주로 나아간다. 제롬이 타이탄에 대해 '아무것도 없지 않냐'고 하자 빈센트는 '무언가 있다'고 대답한다.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다면 아무리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그저 보이는 길에만 의지하지 않고, 천천히 짚으며, 가끔은 빠른 차들 앞으로 흐릿한 시선으로나마 용기 있게 가로지르며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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