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업 전문가들과 센스있고 효과적인 커피챗 나누는 법
커리어의 전향이나 고민의 해결을 위해서 업계의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받는 것을 ‘멘토링’이라고 부르죠. 멘토링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관계의 무게가 워낙 무겁다 보니까 요즘에는 ‘커피챗’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는 것 같아요.
저는 멘토링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멘티 분들께 상담을 드렸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들이 읽고 있는 이 브런치 ‘리서처의 노트’를 만들기도 했구요. 하지만 제가 UX분야와 리서치 스킬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을 갖추고 있어서 멘토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끔 저는 스스로를 멘토로 부를만한 자격이 있을까 망설여보곤 합니다. 저는 아직도 더 좋은 리서처가 되기 위한 경험과 시간, 그리고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에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멘토링을 하는 이유는 지금 제가 있는 이 자리까지 이르기까지의 여정 어딘가를 걸어오고 있을 누군가의 힘듦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에요. 이를 테면 저의 지난 여정 위에는 직업 전향이라는 도전과제(저는 마케팅에서 UX로 전향을 했죠), UX라는 당시에는 퍽 새롭고 낯설었던 분야에 입문하는 도전과제, 해외 취업이라는 도전과제, UX 직업 중에서도 수요가 적은 ‘리서처’라는 포지션을 쟁취하는 도전과제, 그리고 해외 취업 후에도 언어의 장벽과 자신감 문제를 극복하고 높은 성과를 거둬야 하는 도전과제가 있었죠. 이 하나하나의 과제들이 장벽처럼 제 앞에 우뚝 솟을 때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만 같은 기분이었어요. 나만 제일 힘든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었구요.
그때마다 나눴던 커피챗이나 멘토와의 대화는 마치 산길에서 나보다 앞서 걷는 누군가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리본조각처럼 새로운 돌파구와 방향을 제시해 주었어요. 설령 멘토분들이 나눠주신 지혜가 저의 상황에 꼭 맞는 정답은 아니었을 지언정, 그분들이 저의 고민을 접근하는 태도나 질문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멘토링을 하고 있어요.
지혜와 영감, 용기를 얻기 위한 커피챗이나 멘토링 상담을 받으실 때 여러분들이 염두해주시면 좋을 마음가짐이나 준비사항 몇가지를 공유해봅니다. 어렵게 약속을 성사시켰는데 막상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거나, 정작 궁금했던 것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해 자신 뿐 아니라 멘토의 시간까지도 낭비해버리는 일도 꽤나 많이 생기거든요.
여러분들이 준비해가는 질문은 대화의 질과 얻어갈 수 있는 정보의 밀도를 결정합니다. 내가 정말로 무슨 답을 듣고 싶어서, 그 답을 어떻게 나에게 적용하고 싶어서 이 질문을 하는 것인지 신중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질문은 여러분이 현재 처한 상황과 고민을 드러내줄 뿐 아니라, 만남에 응한 상대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도를 보여줍니다. 링크드인 프로필을 보면 뻔히 알 수 있었을텐데도 ‘어떻게 리서처가 되셨어요?’라는 두루뭉술한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모호한 질문을 받을수록 되묻습니다. 이 질문을 묻는 이유가 뭔지, 어떻게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말이죠. 도대체 왜 나를 만나고 싶었나 알고 싶기도 합니다.
질문을 너무 많이 준비해갈 필요는 없어요. 15분-30분 짜리 만남이면 3개, 60분 이상의 만남이면 5개 정도면 충분합니다. 내가 정말 이 만남에서 꼭 답을 듣고 가야 한다 싶은 거로요. 이들의 우선순위도 매겨놓으세요. 대화가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추가 질문이나 곁질문을 하게 되겠죠. 만약 질문을 10개 20개 너무 꽉꽉 채워 준비해가면 내가 나의 질문 리스트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작 대화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더 귀중한 정보나 조언을 얻을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커피챗이나 멘토링은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낮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 위한 만남이 아닙니다. 상대도 분명 그 만남으로부터 좋은 걸 얻어갑니다. 누군가를 도왔다는 뿌듯함, 나의 지난 경력을 돌이켜보는 성찰의 시간, 조언을 준비하면서 깨닫게 되는 지혜까지.
커피챗과 멘토링은 넓은 의미에서 네트워킹, 즉 인맥쌓기를 위한 활동입니다.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나누기 위해, 나와 전혀 다른 업계나 직종에 있는 사람에게 신선한 관점을 얻기 위해,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내가 빠르게 캐치하지 못하는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 등 다양한 목적과 이유로 이뤄집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상대가 내가 걷고 싶은 길 위에 앞서있는 ‘선배'라고 할지라도 나를 바로 ‘후배'로 두고 낮출 필요는 없습니다. (혹여나 커피챗에서 이제 막 처음 만난 여러분을 후배 취급하고서는 묻지도 않은 조언을 수도꼭지처럼 줄줄 흘리는 사람은 꼰대일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이 마음가짐이 왜 중요하냐면, 자기 자신을 마치 ‘미생'으로 여기고 낮춘 상태로 대화에 임하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거나 당황할 가능성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포트폴리오와 지난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에도 내가 상대방보다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고 알고 있음을 잊지 말고 자신있고 당당하게 설명하세요.
특히 예상치 못하게 질문을 걸어올 때 당황하는 걸 정말 많이 봅니다. 당황하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마치 법정에 선 것처럼 말이죠. 질문을 받으면 그 답변 만큼이나 그 답변을 소화시키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잘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생활에서 협업을 하고 신뢰를 쌓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와인 한모금 음미하듯 곰곰히 생각하고, 느리게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하세요.
잊지 마세요. 이 만남에서 상대가 질문을 건네는 이유는 딱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더 도움이 될만한 답변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정말 여러분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물론 만남을 요청한 상대가 시간을 내어주고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눠주는 데에 대한 감사와 리스펙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와 리스펙의 표현은 다음 사항을 지켜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약속을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잡는 태도 (eg. “다음 주 평일에 30분정도 시간 괜찮으시나요? 저는 월, 수, 목 3시-6시 사이에 가능합니다. 혹시 이 시간대가 좋지 않다면 언제가 좋으신지 알려주시면 최대한 일정 조정해보겠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대화를 이끌고 마무리하는 태도 (eg. “이제 5분정도 시간이 남았으니 마지막 질문을 하고 마무리할까 하는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상대에 대해 미리 조사했음을 암시하는 질문 준비(eg. “AAU에서 광고전략을 석사로 공부하셨는데 그 때의 지식이 UX 업무에 많이 도움이 되었나요? 저도 대학에서 광고를 공부했고 UX로 전향하고 싶어서 궁금했습니다.)
대화 후 감사 메시지 (eg. 이번 만남에서 특히 마케팅과 UX의 접점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어서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멘토만 만나면 그 분을 통해 취업 제안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오해를 했던 적이 한 번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당시 저의 꿈의 직장이었던 IDEO에 근무하시는 한국계 영국인 여성분을 만나 대화를 나눴었죠. 대화가 잘 통했습니다. 포트폴리오 리뷰도 받았구요. 헤어질 때 그분은 IDEO에서 출판한 서적들을 잔뜩 주시면서 저를 응원하셨습니다. 저를 엄청 마음에 들어하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추후에 IDEO에서 엔트리레벨 entry level 포지션 채용공고hiring notice가 떴을 때 저는 그 분께 추천referral을 넣어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았습니다. 그 분은 거절을 하셨죠. 취업이 간절했던지라 꽤 서운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나중에 그 위치에 있어보니 그분이 왜 거절을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Internal Referral은 그 사람이 직장에서 쌓은 평판과 신뢰를 담보로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Referral을 통해 제출된 지원서는 바로 hiring manager와의 인터뷰나 방문면접으로 갑니다. 내가 정말 인정하고 추천하는 후보가 아니라면 자칫하면 직장동료의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 됩니다.
커피챗으로 한번 만났다고 해서 그 사람의 멘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멘토'와 ‘멘티'라는 이름으로 맺어지는 멘토링 관계에는 책임과 신뢰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멘토링 관계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시간과 세월의 변화와 대화의 쌓임이 필요합니다. 물론 맞선 한번에 결혼에 골인하는 경우도 존재하듯, 좋은 만남 하나가 취업의 기회로 이어지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걸 당연하듯 기대해선 안된다는 것이죠.
커피챗으로 만난 상대가 정말 마음에 들고, 존경할만하고, 상대도 여러분과의 대화를 즐긴 것처럼 보였다면, 적극적으로 계속해서 연락해보세요. 뭐라고 연락하냐고요? 그냥 여러분의 업데이트면 되어요. “저 인턴십 시작합니다!” “저 졸업 했습니다!” “저 파이널 포트폴리오 만들었는데 한번 봐주실래요?” “요즘에 UX 스프린트에 대해 공부중인데 추천해주실 책이나 영상 있나요?” “취업이 정말 안되는데 저좀 한번 만나 얘기들어주시겠어요ㅠㅠ"... 뭐든지요! 혹여 답변이 안오더라도 상처받지 마세요. “얘 뭐야" 하고 무시했다기보다는 “아 답변해줘야지"하고 까먹었을 가능성이 99.999%일테니까요.
여러분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취업은, 승진은, 이직은 결국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인연은 찾기 정말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노력이 필요합니다. 커피챗에서 만난 인연이 마음에 들었다면 “저 분에게 어찌 감히” 혹은 “바쁘실텐데 시간 안되시겠지" 이런 어림짐작은 거두고 계속해서 손을 내미세요. 나이와, 업종과, 연배를 뛰어넘어 정말 좋은 인생의 벗이 될 수 있으니까요.
퇴사 후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그동안의 경험을 정리해보자 라는 의미로 <리서처의 노트>에 제가 UX리서처로 일하면서 얻은 교훈과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에 대한 글을 공유했는데요. 몇 편 안되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이메일로, 인스타그램으로, 링크드인으로 많이 연락을 주셔서 정말 놀랐어요!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엔 멘토링 해드리는걸 참 좋아했었는데 프리랜서와 양육을 병행하면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져서 메시지에 답변조차 드리지 못해 무척 아쉬웠어요. ㅠㅠ 그래서 이번에 오랜만에 멘토링을 주제로 글을 한편 써 보았습니다.
아.울.러! 저와 제대로 커피챗과 커리어상담을 받으실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저의 글을 읽다가 UX, 해외 유학, 해외 취업, 커리어 전향, 자기계발, 글쓰기와 관련하여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연락주세요. 저도 여러분들의 사연을 듣고 더 열심히 고민해서 저의 경험담과 나름의 조언을 준비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