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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한 Feb 24. 2023

오랜만에 만난 친구

오랜만에 고향 친구가 카페에 놀러 왔다. 고등학교 시절에 같은 반을 했고, 함께 농구를 하기도 하고, 함께 야자 시간에 도망치기도 하면서 친해진 사이였다. 그러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조금은 뜸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도 명절에는 종종 만나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그 시절에 합당한 푸념을 하고, 미래에 대한 각오를 다지던 사이였다. 군대를 다녀온 뒤로는 공백이 있었다.


그러다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고향의 한 도서관이었다. 나는 임용시험에 몇 번 떨어지고 귀향한 상황이었다. 그도 금융 쪽 취업에서 몇 번인가 고배를 마시고 동네 도서관을 다니면서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낙오자였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쉬는 시간이 맞으면 함께 옥상에 올라가 자판기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도서관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몇 안 되는 메뉴를 골라가며 함께 밥을 먹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제법 되었다.


그럼에도 허송세월은 아니었던 것은 그 시절 각자에게는 사랑하는 사람 있었다. 취업준비생에는 사랑은 사치인데 우리는 그런 사치에 기대어 한 시절을 함께 견디고 있었다. 데이트를 마음 놓고 할 수 없었지만, 목표도 있었고, 꿈이 있던 시절이었다. 여전히 흐리지만, 밝은 미래가 있는 듯해서 괜찮은 시절이었다. 나는 그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며, 나의 자세도 점검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낮잠도 덜 자고, 덜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의 시선을 덕분에 누구보다 일찍 도서관에 가고 제법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몇 번의 겨울을 함께 지내고 함께 떨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함께 창업을 할까 고민했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지쳐버렸고, 지금 사귀는 사람과 다음 단계로 들어가고 싶었다. 해서 우리는 함께 카페나 해볼까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커피 공부에 뛰어들고, 그는 지역의 작은 회사에 취직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다. 그 이후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 드문드문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십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홀로 창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웠다. 나는 도서관을 다니는 것처럼 카페 문을 여닫으며 살았다. 어쩌다 넘어오게 된 다음 단계에서, 누구보다 절실하게 도달하게 다음 단계에서 십여 년을 보냈다. 그동안 드문드문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어떤 네트워크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 남들이 비트코인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때 돈을 넣어서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식, 그렇게나 꿈처럼 부풀었던 돈들이 어느 순간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짧은 점심시간에 그 친구와 오랜만에 밥을 먹었다. 도서관을 다니던 옛날처럼 시간에 쫓기는 먹는 한 끼였지만, 건강한 반찬에 햇살이 그득한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씹어먹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릴 적에는 성실하게 살기만 하면 다음이 있고, 다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먹는 국밥처럼 뭔가를 오래도록 끓이면 인생에서도 진국 같은 것이 나오고 그런 것으로 그런대로 먹고 살 줄 알았는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도무지 투자도 모르겠고 갈아타는 것도 모르겠다. 너는 어떠냐, 넥타이를 매고 조심스럽게 국물을 마시고 있는 너에게 물었다. 시간이 되면 술이나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일을 해야 하고 친구도 그래야 하니까 다음을 기약했다.


이제 제법 나이가 들어서 양복이 잘 어울리는 친구를 내려주고 나는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친구는 무언가를 팔러 누군가를 끊임없이 만나야 했고, 나도 이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다려야 했다. 도망칠 곳도 없고, 도망치려 하지 않는 우리는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가 되어있었다. 때때로 삶에 균열이 생기겠지만, 절대로 건너뛰어 버리는 일이 없는 우리는 나이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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