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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한 May 04. 2023

창업을 위한 첫 단추




S는 우리 카페에 오기 전에 공장에서 일했었다. 화학공장이었는데, 무거운 드럼을 옮기는 것이 주된 일이라고 했다. 그전에는 대형 할인점에 있는 식당가에서 일했다고 했다. 푸드 코드라고 부르는 곳, 그곳에서 요리하는 일이 아니라, 배식구에서 호출 버튼을 누르고 음식을 내어주고 다 먹은 식기류를 정리하는 업무를 담당했다고 했다. 그와 커피의 연결점이 없었지만, 고된 노동을 경험했다는 점과 어떤 바쁜 상황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에 외에도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면접을 보는 그날 여자친구와 함께 왔었다. 이 카페에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을 전해준 사람도 여자친구라고 했다. 그는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말간 이마를 가지고 있었고 특유의 눈빛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있는데, 주말에 일하는 것이 괜찮냐고 물으니, 같이 다니는 교회가 근처에 있어서 예배를 드리고 카페에 출근하면 된다고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일단은 일 년 정도 함께 하자고 했다. 정확한 퇴직금을 약속했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워보자고 이야기했다.


S는 처음에는 모든 것에 무척 서툴렀다. 당연했다. 물을 붓는 것도, 쟁반을 나르는 것도, 서툴렀다. 나는 대학교에서 커피 관련 학과 학부생들이 교과서처럼 읽는 책을 한 권 빌려줬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이야기했다. S는 느리게 배웠지만,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필기를 하며 차분하게 하나둘씩 배워나갔고, 두 달이 지난 지금은 깔끔한 라테 아트도 할 줄 바리스타가 되었다. 여전히 느리게 만들지만, 요령을 피우지 않고, 원칙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깔끔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일찍 마치는 날은 여자친구와 카페 투어를 다닌다고 했다. 어떤 카페는 커피 젤리를 줘서 좋았고, 또 다른 카페는 분위기는 모던한데 공간이 너무 트여있어서 소리가 울려서 아쉽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공간을 구획 짓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를 볼 때마다 나의 과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조금씩 자라는 아이를 보는 듯해서 기분이 따뜻해졌다.


그런 그가 며칠 전에 작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커피를 배우고 조금씩 뭔가 원하는 맛이 만들어질 때는 자신감이 생겼는데, 카페를 다녀볼수록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자신이 하면, 이 정도의 흐름을 가진 카페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간 얼굴이 조금은 구겨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나이, 그의 상황을 대략 알기 때문에 어떤 절실함이 나에게 전해졌다.


그렇다면 언제 카페 창업을 하면 좋을까. 이 글은 그의 고민에 대한 나의 답이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언젠가 창업할 그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글이다. 자금이 모인다면 바로 창업을 하면 될 것 같지만, 대게 그런 경우는 오래 지속되지 않고 몇 년 안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자본이 많아서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하여도, 결국에는 장소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넓은 공간에 비싼 가구와 최신 장비를 갖추더라도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과 그곳을 찾는 손님이 원활한 교감을 하지 못한다면 그곳은 그저 비어있는 멋진 공간밖에 되지 못한다.


문제는 그런 공간이 세상에는 무척 많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도시 근교만 가더라도, 넓은 주차장에 3층짜리 건물에 비싼 샹들리에가 주렁주렁 매달린 공간이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그 외에도 바다를 풍경으로 가진, 강이 보이는 혹은 논과 산을 배경으로 한 카페도 무수히 많다. 그런 카페는 대게 그 공간에 머물고 싶은 욕망 때문에 주말에는 장사가 되는 듯하지만, 평일 장사는 어려운 편이고 직원에 대한 처우도 빡빡한 경우가 많다.


그런 카페는 대개 손님과 바리스타가 제대로 된 소통을 하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에는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된다.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다. 먼저 사장이 커피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자신이 내리는 커피에 대한 설명도 할 수 있어야 하며, 여러 입맛을 가진 손님들이 원하는 맛을 표현하고 그것을 반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반복적인 방문이 가능하다.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할 줄 알아야 한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음악과 적당한 깨끗함을 유지해야지 손님이 그곳에서 의미를 쌓을 수 있다. 그렇게 해야지, 그곳은 누군가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어떤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어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던 장소가 된다. 그렇게 될 때, 상시로 적당한 흐름이 생기고 직원에게도 여유 있는 보상을 줄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여력이 있다면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직원도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고, 장소의 퀄리티가 유지된다. 더불어 사장도 적당한 시간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S에게 필요한 것은 이 공간에서 보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숙련된 바리스타가 될 것이고, 바쁘지 않은 시간에 커피 관련 책을 읽다 보면 전문적인 지식이 체화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면, 커피 맛에 민감한 손님도 단골로 만들 수 있고, 커피 맛에 둔감한 손님도 단골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S에게 이 공간이 장소가 되길 바란다. 어떤 의미가 무수히 쌓여 뜻깊은 장소가 된다면, 그도 어떤 새로운 공간을 열 수 있는 작은 열쇠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의미를 견고하게 쌓고 그것을 지켜본 사람은 또 다른 깊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창업도 사랑과 일면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은 한 사람만 그 관계에 자신이 있어도 다른 상대를 감동을 줘서 결국 뭔가 이룰 수도 수 있다. 그러나, 창업은 그렇지 않다. 손님은 허공에 떠 있는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장만은 전문성과 자신감과 절실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연히 그 공간에 매력을 느끼고 들어온 사람도 손님으로 만들 수 있고, 그 공간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도 단골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창업 자본보다 우선해서 갖추어야 하는 예비 사장의 덕목이 아닐까 한다.




*

‘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김해에서 12년째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밤에는 글을 쓴다. 2019년부터 2년 동안 <경남도민일보>에 에세이를 연재했고, 2021년에 『너를 만나서 알게 된 것들』을 썼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ung.in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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