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모험, 내일의 댄스> 서문
“이제 슬슬 나갈까?”
라는 말에 “10분만 있다가”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일어서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당장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소개하면 추진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지금 당장 찾아가서 오해를 풀고 싶다. 내가 이렇게 좀 살아봐서 아는데 이쪽 사람들은 열이면 열, 뒷심이 꽤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화력이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정전기력을 가진 사람. 정전기의 전압이 궁금해서 당장 찾아봤더니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정전기의 전압은 보통 수천~수만 볼트. 일반 가정용 전압이 220볼트인 것을 생각하면 정전기의 전압은 굉장히 높다. 하지만 정전기는 전압만 높을 뿐, 전류가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흐르기 때문에 감전의 위험은 극히 드물다.
그러니까, 정전기는 의외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지속력이 지독하게 짧아 그닥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자기소개서 같네.
나는 자주 나가고 싶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고층 빌딩 안에서 키보드를 치며 살고 있지만 동경하는 세계는 언제나 밖에 있었다. 한낮을 활보하는 사람들, 근육을 쓰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 깊이를 모르는 물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 밖을 베이스캠프로 둔 사람들이 하는 경험이 진짜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몸을 움직여 체득한 지식이야말로 지혜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무실 노동자가 바깥을 소망하면 시선은 본능적으로 창가를 향한다. 자리는 최대한 창문과 가깝게, 블라인드는 민폐가 가지 않을 최대치로 올려 모니터 반사광을 감내한다. 유리창을 통과한 볕에는 비타민D가 없다던데. 비타민D 한 알을 입에 털어 넣고 영양가를 쏙 뺀 볕으로 마음을 달랜다. 도시의 스카이라인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퇴근길 귀가를 지연시킬 폭설에 넋을 놓는다. 저 지붕 너머에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나갔다. 오전 근무와 오후 근무 사이, 퇴근과 출근 사이, 금요일과 월요일 사이에 바깥이라는 환승지를 정해두고 정전기처럼 타닥거리며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잘 알던 나에서 잘 모르던 나로, 잘하는 나에서 잘 못하는 나로 자주 갈아탔다. 그래서 무엇을 발견했느냐 하면 다음 날 점심시간에 떠들 이야깃거리를 얻었다. 전날과는 다른 점심시간을 만들게 되었다. 어떤 날에는 점심시간으로는 부족한 긴 이야깃거리를 얻었다. 지난 달과는 다른 술자리를 만들게 되었다. 어떤 날들의 발견은 어떻게 살고 싶다는 각오가 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재미있었다.
그래서 더 멀리, 더 자주 나가보았다. 건물 밖으로, 경로 밖으로, 직업 밖으로, 시선 밖으로, 두려움 밖으로 한 발 한 발 나가보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주머니가 불룩해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머리카락에 앉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치며 배운 것을 쓰다듬었다.
이것은 내가 정전기력이 생길 때마다 밖으로 뛰어나가 몸으로 배운 것들에 관한 기록이다. 숨이 차게 돌아다니고 거친 호흡이 가라앉기 전에 썼다. 바깥의 흥분감을 날것으로 전하려고 애썼다. 외출이 일탈인 시대에 매우 전복적인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유로 못 나올 뻔했지만, 또 그 덕분에 정전기 인간이 끝까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완성할 수 있게 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의 바깥으로 나오게 되어 기쁘다.
당신도 나오길. 그리고 우리가 만나길.
2021년 여름, 노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