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인프라 엔지니어가 되다!
한 8개월정도? 일할곳이 필요했습니다. 어차피 전문대 졸업장은 있으니 이걸 이용해서 단기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꼭 일하고 싶은 분야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잡 코리아 리쿠르트 등 인터넷 구직에 이력서를 올리고 저도 열심히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중에서 딱 맞는곳이 한군데 발견되더군요. 24시간 3교대 근무. 그리고 시스템관리 및 운영. 간단히 OP였습니다. 뭐 말로는 OP는 아니라는데 굳이 더하면 OP에 약간의 시스템 어드민이 쪼금 포함되어있는상태? 라고 보면 정확할듯 합니다. 지원을 하고 서류에 통과되어서 운 좋게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을 보는데 의외로 쪼금 힘들었습니다. 시스템 운영자를 뽑는데 개발관련 질문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당황했지만 질문에 모두 답하였습니다. 예전에 랩실에서 선배에게 강의를 들은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선배가 중요하다고 얘기한것들이 주로 많이 나왔습니다. 이때 선배들의 위대함이 느껴졌습니다. 면접본 사람이 총 4명이었는데 그중에 저만 대답을 다하였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좋은 기분을 안고 집에 도착했는데 그날 저녁에 전화가 왔습니다. 합격이라고. 내심 자신감이 풍만해졌습니다.
24시간 3교대 근무.
IDC시설을 갖추고 있는 회사이니 만큼 3교대로 운영업무를 했습니다. 1조는 9시부터 18시까지 2조는 18시부터 그다음날 아침 9시까지(이날은 쉽니다.), 1조 9시 출근 18퇴근, 3조 18시 출근 그다음날 9시 퇴근. 이런식의 3교대 근무였습니다. 혼자 근무할수가 없어서 알바와 함께 근무했습니다. 특히 저녁부터 새벽근무는 잠이 많이 쏟아지기 때문에 교대로 번갈아가며 자면서 근무를 섰습니다. 그런데 저와 다른 직원들은 깊이 오래 잘수가 없었습니다. 장애가 터지거나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이상한게 보이면 알바분이 직원을 깨우기 때문에 늘 설잠을 자곤 했습니다. 특히 어차피 IDC옆에서 근무하기때문에 엄청 시끄러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두달간은 신입이라 선배들이 교육을 시켜주면서 응급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과 네트워크 리눅스 스토리지등 인프라 전반적인 교육과 쉘 스크립트 프로그래밍등을 알려주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모니터링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천천히 분석해보는건 정말 잼있고 좋았습니다. 2개월의 신입교육이 끝나자마자 바로 야간 근무조로 편입되었습니다. 야간조로 오니 꽤 좋았습니다. 알바와 저만 있으니 제 세상인것 같았고 아무도 눈치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 여기서 야간에 토익공부를 했습니다. IDC라 시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좀 집중하면 잘 안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퇴근하면 그날 당일과 그 다음날 오후까지 쉬고 출근해서 그런지 한달한달이 휙휙 지나갔습니다. 근데 문제는 야간 철야 근무가 쉬운건 아니더군요. 뱃살도 늘어나고 아침 저녁이 바뀌다보니 쉽게 몸이 피로해지는것 같았습니다. 안돼겠다 싶어 운동도 병행하고 몸도 만들며 다녔습니다. 이러면서 토익공부도 하고, 시스템에 대해 공부도 하고 하니 시간이 금방 흐르더군요. 마지막 시험 7월에 시험을 보고 당당히 600점을 넘긴후 학과 사무실에 가서 저에게 학사모를 빌려줄 수 없디는 조교에게 토익점수를 넘겨주면서 썩소를 한번 날려주었습니다. ㅋㅋ 그리고 졸업을 하고 그해 10월 말 그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대학졸업 후 진정한 나의 첫 회사.
졸업 후 첫 입사한 회사는 수능 온라인 교육 회사였습니다. 오프라인 학원과 온라인으로 수능교육을 하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학원이었습니다. 노량진에서도 꽤 오랜시간 해온 회사였습니다. 여기서 진정한 저의 인프라 월드(?)가 펼쳐졌습니다. 회사 내의 거의 모든 인프라를 제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리스트로 열거해보자면..
- 사내
LAN 네트워크, 메일서버, 파일 서버
-서비스 관련서버
웹서버, 와스서버, dns서버, database서버
-IDC장비관리
네트워크 장비, 박스
첫 인프라 관리자가 되었는데 정말 눈돌아가는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전 회사에서 IDC관리 OP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나름 자부했는데 아니더군요... 제가 얼마나 스스로 거만했는지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database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얇고 낮고 하찮은 수준인지 알게되었고 제 인프라 지식이 얼마나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고생길이 뻥뻥 고속도로로 뚫려 있다는것을 얼마 지나지 않게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설치로 끝이 아니라 성능을 끌어올릴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전 그런부분에 있어서 너무나 약했습니다. 웹서버, 와스서버, 데이터베이스 서버등등 기초이론 지식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계다게 메일서버와 파일서버는 일반 PC에 구성해 놓아서 그런지 뻑하면 깨지고 메일이 안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것들이 저에게는 나중에는 제 스킬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들이 되었습니다. 아파치와 톰캣은 리눅스 위에서 소스로 설치할 수 있는 내공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픈소스 메일 Qmail을 이용해서 메일 서버를 구축할 수 있는 내공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파일서버를 삼바를 이용해서 구축할 수 있었고 rsync를 이용해 이중화시키는 방법까지 터득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리눅스는 이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서 윈도우는 이제 서버로서는 불편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데이터베이스 장애처리와 백업 복구 스케줄링과 아카이브 백업 전럑까지 수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안 및 방화벽 정책을 스스로 만들어 적용할 수 있는 기초수준의 실력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입사 후 일년동안 똥줄빠지게 공부하고 실력을 키운게 점점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장애대처에 대한 빠른 판단려과 처리 시간이
단축되고 인프라도 안정화가 많이 되가던 시점이었습니다.
개발에 도전하다.
인프라는 한번 안정화가 되고 나면 왠만해서는 큰 장애가 터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회사를 도서관 다니듯이 그냥 왔다갔다 하기를 몇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때 팀장님이 개발 한번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주셨습니다. 물론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왜 서버관리자에게 개발을 시키려고 하시는 것인지 반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건 저에게 나중에 커다란 장점이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개발자로 전향이 된 케이스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접한 개발언어는 php였습니다. 회사 홈페이지가 php로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처음 떨어진 첫 미션은 수능 채점 매기기입니다. 관리자가 수능 시험지와 답안지를 등록하면 일반 사용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답안을 수능채점 매기기 서비스에 등록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알려주는 서비스입니다. 각 문제마다 정답여부를 알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지만 그때당시에는 웹 프로그래밍 경험이 교수님 알바말고는 없었기에 html부터 자바스크립트 php, ajax등 별걸 다 배워야 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머리 끝까지 받는 경험을 누려야 했습니다. 공부할게 어찌나 많은지 매일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때 개발자중 한분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자기도 그랬다고 모르는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해서 정말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별걸 다 물어봐도 인상한번 찡그리지 않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분이 제 첫 개발 사수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좋은 사수를 많나야 자신이 클 수 있다는것을 이분을 통해 배운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