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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ster Kay Feb 15. 2016

우는 아이 약 먹이기

근래 프런트엔드 씬에서는 소위 '자고 일어났더니 신약 발표'같은 상황이 심심찮게 일어나곤 합니다. 아제로스의 마엘스트롬 같은 프런트엔드 개발 씬을 이해하려면 근 20년에 달하는 자바스크립트의 역사를 동원해야 합니다. 긴 글을 적으면 습관적으로 구라를 치는 저는 굳이 여기서 그 썰을 풀지 않으려 합니다만, 프런트엔드 개발의 핵인 자바스크립트가 안고 있는 레거시가 워낙 굉장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튀어나오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테제를 여러분의 조직 내에 전파하고자 한다 칩니다. 그럼 여러분은 곧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겁니다.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나타났다 사라진 프레임워크가 어디 한둘이냐로 이어지는 콤보에 찍히는 화룡점정에 여러분은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말갰죠.

'그래서, 잘못되면 네가 다 책임질 거야?'


너무 놀라지 마세요. 제가 그 콤보를 매우 매우 즐겨 쓰는 꼰대 중 하나입니다. 꼬꼬마 신입 명찰을 벗어던지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회사 내에서 하는 모든 의사 결정에 대해 좀 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개발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내가 짠 코드가 사업과 얽히는 순간부터는 사업적 가치에 본인의 재미를 튜닝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프레임워크를 멀리하고 jQuery만으로 모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되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모든 의사 결정을 본인 마음대로 할 수는 없을지라도, 내 주장이 사실 프로젝트의 안위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만 한다면 회사 생활을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오늘은 신약을 잘 파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1. 이유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초보 약팔이들이 가장 잘 하는 실수가 바로 이겁니다. 새로 나온 기술을 프로젝트에 접목하고 싶은 욕구가 너무 큰 나머지, 많은 개발자들은 종종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스스로의 의도와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프로젝트와 무관한 장점을 내세우지 마세요.  어처구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두서없이 떠들다 보면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는 실수입니다. 현재 프로젝트의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이 기술이 포함되면 이 난제를 극복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지에 집중하시고 그 밖의 내용은 버리세요.


2. 단점이 있다면 솔직히  털어놓아야 합니다.

세상에 장점만 존재하는 대안은 극히 드뭅니다. 중장기적인 약팔이 인생을 고려하신다면, 단점 역시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이 있다거나, 그 단점이 이번 프로젝트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본인이 기술적 리더십을 고양할 것이라고 설득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꼰대들이 말하는 '책임질 거야?'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예상 가능했듯 그렇지 않든 간에, 약의 부작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노력하는 약팔이는 다음 약을 더 수월하게 팔 수 있습니다.


3. 백문이불여일런

때로는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단순한 프로토타입을 제시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프로토타이핑의 힘은 강력합니다. 프로토타입 역시 실용화되기 위해선 수많은 예외상황과 싸워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적어도 프로토타입의 존재가 그 염려를  한편 뒤로 미루어 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생산성을 형상시켜주는 도구라면, 이 도구를 통해 얼마나 빨리 원하는 결과물을 구현해 냈는지, 성능을 향상시켜주는 도구라면 도입 후 프로덕트가 얼마나 빨라지거나 가벼워졌는지 직접 보여 주세요.


4. 정치력을 발휘하세요.

결국 약을 먹고 안 먹고는 대개 의사결정권자의 손에 달려 있을 겁니다.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하지 마시고, 귀가 얇은 동료를 먼저 포섭하세요. 동료가 많으면 설득을 위한 자료 찾기도 좀 더 짜임새 있고 손쉬울 겁니다.


5. 그럼에도 설득에 실패했다면?!

포기하세요 ㅋ는 농담이고, 다음 기회를 위해 잠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실패한 설득을 틈날 때마다 구시렁거리는 건 정말 최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입니다. 만약 프로젝트가 정말 절박해지고, 누군가가 여러분의 말을 기억한다면 그 누군가가 당신의 의견에 다시 힘을 실어줄 겁니다.




보험설계사의 약 2/3이  시작한 지 1년 내로 일을 관둔다고 합니다. 제가 받아 본 보험 권유 전화 중 단연 가장 황당한 경험은 '아니, 이렇게 좋은 보험 상품을 대체 왜 안 드신다는 거예요?'라는 절규였습니다 :-P '그건 니가 설명해 줘야지 인마!'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오던 걸 겨우 참았습니다.

본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미숙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한 의사 좌절은 후일 여러분의 열정까지 꺾을 수도 있습니다. 힘세고  오래가는 개발 라이프를 위해, 여러분의 설득에 약간의 요령을 더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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