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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Jul 29. 2018

스타트업,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김동신 외 5명, <Why, YC> (북저널리즘)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은 많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 곱절의 곱절은 많다. 서점의 서가에 빼곡히 꽂혀 있는 글쓰기 서적의 종류를 보라.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물론 나도 잘 쓰고 싶은 사람들 중 하나라서 책장에 글쓰기 관련 책만 당장 세어봐도 네댓 권 된다. 나도 안다. 사실 이건 대단히 멍청한 짓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다독, 다작, 다상량'을 그저 잘 지키기만 하면 된다. 모든 글쓰기 책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지적하고 있는 바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 실천으로 지키지 못해서 안 되는 것이다. 실천이 중요하다. 아, 물론 '실천' 역시도 세상의 모든 글쓰기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다.


나는 스티븐 킹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을, 심지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조차 하나도 접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창작론을 다룬 <유혹하는 글쓰기>가 남긴 굵직한 깨달음 덕분이다. 근데 이것도 역시 글쓰기 책 아니냐고? 맞다. 맞는데, 아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창작론 이야기가 들어간 자서전이다. 소설가의 자서전이다 보니 자연스레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강조하고 싶은 건 스티븐 킹이 이렇게 저렇게 써라 강변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는 '독자들이 재밌어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라고 선언하고는 '독자들이 재밌어하는 글'을 써 내려간다. 재밌는 글을 보여주는 것, 그게 끝이다. 에이, 그게 뭐 대단한 메시지 씩이나 되냐고? 그러면 되물어보자. 당신이 만약 필수 교육과정을 이수했다면 윤리 교과를 배웠을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생활과 윤리>에서는 정말 다양한 삶의 국면에서의 윤리를 다르고 있는데 실생활에 살을 맞대고 있는 사례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들이 당신의 행동에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그로 인해 삶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그 책은 분명 우리의 행동을 털끝만큼도 바꾸지 못했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추상적이기 때문에. 좋은 당위를 충분히 반복적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스티븐 킹은 정말 독자가 좋은 글을 쓰게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영리하게 행동했다. 400페이지가량의 책 한 권 속에서 한 가지 메시지만을 전달한다. '독자들이 재밌어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라고. 머리에 알게 하는 것과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만드는 것만큼이나 다르다. 경영학원론 같은 책을 하나 열심히 읽었다고 해서 경영을 잘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 책들에는 너무 많은 추상적인 내용이 들어있고, 그것은 애초에 독자의 행동을 바꿀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즉, 하나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 줄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 변화는 한두 번의 특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관성의 동물,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극단적으로 요구하는 곳은 아무래도 시장일 것이고, 그중에서도 '스타트업' 판이 그럴 것이다. 그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하냐 이해하지 못하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북저널리즘의 <Why, YC>에서는 미국의 유명 엑셀러레이터 'Y-Combinator'에서 코칭을 받은 한국인 스타트업 창업자 6인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하버드라 불리는 그곳에서 창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요청되는 메시지는 단 하나다. 멘토들은 '시장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라'를 다각적이고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3개월이라는 짧은 프로그램 기간 동안 스타트업 창업자의 성공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일은 사람이 한다. 특히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타트업의 반년은 평생"이다. 일상과 실리콘밸리의 시간은 지구와 가르강튀아 블랙홀 인근의 만 행성처럼 중력이 달라 시간 자체가 다르게 흘러간다. 정신과 시간의 방 속에서 사는 이들 창업자의 마인드셋만을 단 하나만 바꿔놓을 수 있다면 어떤 것에 집중할 것인가. 고민 끝에 '고객에게 집중하라'를 뽑아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YC가 키워낸 대형 스타트업들의 이름(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레딧, 트위치 등)은 그 전략이 주효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Why, YC>는 책의 굵직한 메시지를 따라가는 것과는 별개로 곁가지 부분에 대해서도 적잖게 눈길이 가게 만드는 책이다.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대목들이다. 갖가지 색이 동그랗게 나열되어 있는 보색 대비표를 들여보고 있다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분명 비슷비슷한 색의 나열일 뿐인데 원의 반대편으로 가면 정반대의 색이 되어 있다. 그 두 가지 색상을 붙여놓고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Q : 실리콘밸리와 우리나라 창업 문화를 비교한다면.
A : 실리콘밸리에는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지하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한국에서 창업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고 방법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한국 친구들과 일요일 저녁에 술자리를 갖다가 일찍 일어나니까 "사장님인데 내일 늦게 출근하면 안 돼?"라고 하더라. 정부에서 창업 지원금을 받아 사업하다가 잘 안 되면 쉽게 포기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쉽게 도전하고 쉽게 발을 떼기보다 사업을 싲가하기 전부터 비즈니스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을 로컬로 부를 수 있다면, '한국적 특수성'은 분명히 장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이 무조건 옳고 한국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그것은 보편과 특수의 틀 속에서 한국을 필요 이상으로 왜곡해서 파악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방법이기에 위험하다.


그렇다고 같지 않은 걸 같은 것처럼 평가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장점이 될 수 있으려면 타자들의 기준에 비추어 어떤 점이 특수 한지를 충분히 따져보고 객관화해야 한다. 그러한 절차가 생략된다면 그저 우물 안 개구리의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어긋남'의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보편이 아님을, 수많은 특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체험은 소중하다. 비약일지도 모르나 이 체험이야 말로 편견을 걷어낼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체험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국 사회에는 더 많은 어긋남의 경험이 필요하다. 같아야 한다는 것, 한국 사회의 정상성 집착 경향을 벗어던질 때 더 많은 시도, 더 많은 미래의 경우의 수가 열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P.S : 글의 흐름 상 뒤로 별도로 뺄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중요한 미덕은 스티븐 킹이 본인의 책에서 그랬듯 스타트업 CEO들이 직접 스타트업 운영을 하는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데 있다. '잘하는 걸 직접 보여주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해보라. 시중에 얼마나 많은 글쓰기 서적이 팔리고 있는가. 그중에 진짜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마찬가지로 따져보자. 시중에 얼마나 많은 경영 서적, 그중에서도 스타트업에 관련한 서적이 있으며 그 책을 쓴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타트업을 성공시켜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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