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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못미 Jul 29. 2018

우리는 인간, 아날로그 속에서 살아간다

데이비드 색스 - 아날로그의 반격

"한 세대의 기술의 한계가 다음 세대에게는 미가 된다"


어느 뉴미디어 비평 강연에서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이다. 우리는 타이프라이터에서 이 문장이 뜻하는 바를 쉽게 알아 챌 수 있다. 삐뚤빼뚤한 글씨, 찰칵거리는 타이핑 소리, 페이지가 끝날 때마다 새로 종이를 감아 넣어야 하는 이 모든 불편함들이 아이러닉하게도 오늘날 사람들이 타이프라이터에 매료되게 만드는 특성들이다. 여기에 타이프라이터가 쓰였던 시대의 분위기와 다양한 에피소드는 그것을 둘러싼 맥락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이 강연에서 디지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타이프라이터 못지 않게 구시대적 기술의 미학을 디지털 상에서 구현하고 있는 포맷을 소개했다. 바로 우리가 흔히 '움짤'이라고 부르는 GIF다. GIF 포맷은 인터넷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일무이한 포맷이다. 텍스트와 저화질 이미지만 간신히 주고 받던 시기 동영상을 전송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이미지와 동영상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등장한 압축기술이 등장한 이유다.


그렇다면 조금 이상해진다. 수십 기가급 동영상도 수 분 내로 전송할 수 있는 시대에 GIF는 어떻게 동영상에 대체되지 않고 남아있는가? 사라지기는 커녕 심지어 IT 공룡 페이스북은 GIF 이미지를 채팅 애드온 기능으로 지원하는 스타트업 GIPHY를 인수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과거의 기술이 현재의 기술로 온전히 대체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동영상은 짤방을 대체할 수 없다. 우리는 짤방을 통해 감정을 풍부하고도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때로는 움짤을 통해 우리의 감정이 거꾸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A라는 기술이 B라는 기술로 이동할 때 배제되거나 편집되는 맥락이 어떠한 부분에서 존재하는지 면밀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너무 많은 디지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을 통해서 신속하게 연결되고 원하는 정보를 찾아냈다. 하지만 제한된 하루 24시간 속에서 디지털의 비중이 늘어났다는 것은 아날로그적 감각의 비중이 줄어들었음을 뜻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의미심장 했던 대목은 디지털이 도처에 깔리기 시작하면서, 즉 공급이 늘어나면서 그것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말은 다시 줄어들고 있는 아날로그적 감각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수요가 일정하다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하는 가정이겠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다보면 아날로그적 수요가 일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제 3의 공간'의 재발견이다. 우리에게는 3가지 공간이 있다. 집, 일터, 그리고 '제 3의 공간'. 이 세 번째 공간은 사적인 장소와 공적인 장소의 사이에 있으며, 노동과 친교의 중간 지대에 놓여있기도 하다. 최근 '로컬' 혹은 '주인장' 혹은 '큐레이션' 혹은 '공간'과 같은 단어들로 우리를 만나고 있기도 하다. 각종 카페, 책방, 맥주집, 다목적 공간 등이 네트워킹 등의 오프라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다양한 수익모델을 시도하고 있는 추세다. 최근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한 잡지들도 이러한 아날로그적 가치, 디지털로는 접근할 수 없는 맥락들을 담으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있다고 보인다.


한국의 뉴미디어 콘텐츠 스타트업들이 처한 현실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콘텐츠는 공짜다. 휘발성이 높고, 뉴스피드 알고리즘이라는 불안정하게 유동하는 발판 위에서 독자를 만나야 한다. 아날로그는 다르다. 분명한 물리적 토대가 존재한다. 게다가 책이나 잡지나 음악을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그 속에 담긴 콘텐츠를 사는 것과 동치가 아니다. 창작자에 대한 호감이나 능력을 인정한다는 차원에서 굿즈를 산다는 편에 가깝다.


결국 남는 것은 손에 만져지는 것이다. 소유되는 것이다. 김리뷰가 얼마전 콘텐츠 수익화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리뷰어로서의 활동 중단을 선언해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콘텐츠란 원래 그런 것이다. 인간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존재고 새로운 감각을 찾아 헤멘다. 반면 디지털의 감각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일회용 카메라를 처음 만져보며 신기해하는 밀레니얼들을 보면 이 현상은 가속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날로그의 반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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