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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호 Mar 22. 2016

김유신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보여주기(Showing)

쇼잉의 중요성

A라는 직원이 있다. A는 한적한 지방 중소도시 출신이다. 비록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잘 뚫려 있어서 고향 가기가 훨씬 편해졌지만 여전히 이동하기에는 먼 거리다.  A는 설이나 추석에는 고향에 가야 한다면서 명절 전후 항상 휴가를 낸다. 남들은 A가 명절 때 먼 거리를 가야 하기 때문에 휴가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A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A는 명절 때 2~3년에 한 번 정도 고향에 내려간다. 단, 이 사실을 동료들에게 절대 알리지 않는다.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른 직원들이 알면 명절 전후에 휴가 내는 것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명절 즈음,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고 부서원 전원이 불가피하게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A의 직속 팀장은 고향에서 급히 서울로 와야 하는 A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하지만 실제 A는 이번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집에서 편하게 쉬다가 출근한 것이다. 그럼에도 팀장과 동료들한테는 기차표가 없어서 저녁 6시에 겨우 출근한 것처럼 포장하였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팀장은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명절을 보내고 출근한 많은 직원들 앞에서 A를 극구 칭찬했고, 신이 난 A는 빠른 속도로 자신의 업무를 완수하고 퇴근했다. 


 이는 전형적인 보여주기(Showing) 사례다. 이런 보여주기(Showing)는 물질문명 사회인 현대에 등장한 것일까? 아니면 당쟁으로 물든 조선시대 이후에 등장한 일일까? 


 그렇지는 않다. 삼국시대에도 보여주기(Showing)는 존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유신이 자신의 누이동생 문희를 불태우려다 중지한 사건이다. ≪삼국유사≫ 태종춘추공 편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하루는 선덕왕이 남산에 놀러 나가는 것을 기다려 장작을 마당 가운데 쌓고 불을 질러 연기를 올렸다. 왕이 바라보고 무슨 연기나고 물으니, 좌우가 아뢰어 말하기를 “아마도 유신이 그 누이를 태워 죽이는 모양이외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말하기를 “그 누이가 남편도 없이 아이를 밴 까닭이라고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것이 누구의 소행이냐?”라고 물으니 이때 마침 춘추공이 왕을 측근에서 모시고 앞에 있다가 안색이 크게 변했다. 왕이 말하기를 “이것이 네 소행이로구나. 빨리 가서 구원하라!”라고 하였다. 춘추공이 이 명령을 받고 말을 타고 달려가 왕의 분부를 전달하고 이를 말렸으니 이로부터 드러내 놓고 혼례를 치렀다.    


  비록 연기를 본 선덕여왕이 화형을 중지시켰다고 하지만, 각 장면들을 하나씩 짚어보면 김유신의 치밀한 보여주기(Showing)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유신은 진심으로 문희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문희를 다른 방법으로 죽였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김유신이 직접 칼로 문희의 목을 치거나 문희에게 자결하라며 비단 끈을 던져줄 수 있고, 그 외에도 문희보고 강물에 뛰어들라고 할 수도 있다. 화형은 사형수를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게 만드는 것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잔인한 사형식이다. 연기를 피우면 몸에 불이 붙기도 전에 굉장히 뜨거운 고통에 신음하는 무서운 벌이다. 아무리 화가 났기로 뱃속에 자신의 조카를 임신한 누이동생을 불태워 죽일 수 있을까? 

 또한 화형은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화형수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낀다. 만일 김유신이 문희를 화형시키려고 했다면, 문희와 그녀의 뱃속에 있는 태아(훗날의 문무왕)는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고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다. 특히 태아가 나중에 아이로 태어나면 그 아이는 정신지체아동으로 자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희의 뱃속에서 태어난 문무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영민한 왕인다. 태아 시절인 엄마(문희) 뱃속에서 엄마와 함께 화형의 공포를 느꼈다면, 그렇게 총명하게 자랄 수 있을까?

 이런 정황을 고려해보면 김유신은 누이동생을 장작 더미 안에 넣지 않고 불만 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즉 김유신은 김춘추와의 혼인을 위하여 선덕여왕에게 시위성 보여주기(Showing)를 한 것이다. 김유신의 드라마틱한 보여주기(Showing)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였고, 김춘추와의 인척관계를 맺는데 성공했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신라의 권력 구도를 바꾸었다. 더 나아가 삼국통일까지 이루었다. 하나의 작은 보여주기(Showing)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것이다.


 흔히들 보여주기(Showing)에 대해서 안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양심상 찔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김유신이 보여주기(Showing)로 목적 달성한 사실을 생각해보면 자신의 업무 수행 중 보여주기(Showing)가 필요하다면 때로는 부득이하게 해야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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