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바뀌는것은 정치인만이 아니다.나도 그럴수있다.
1398년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훗날 조선 3대왕 태종)은 두꺼운 갑옷을 꺼내 입는다. 출정 준비를 마친 그는 여러 장정들과 함께 대문 밖을 나선다. 이 전투의 상대방은 이성계 다음으로 높은 권세를 지고 있었던 삼봉 정도전. 여기서 지면 제 아무리 왕자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터, 이방원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는 것이다.
이방원이 정도전을 공격한 이유는 단순했다. 정도전이 왕자들의 사병을 없애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 초로 이어지는 혼란기,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은 많은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다. 조선 건국의 주역인 정도전은 왕자들이 사병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가에 큰 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태조 이성계에게 끊임없이 사병을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방원과 다른 왕자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하지만 정도전은 요동 정벌 추진을 명목으로 사병 혁파에 박차를 가한다. 위기감을 느낀 이방원, 그는 선수를 친다. 정도전, 남은 등 조선 개국 공신들의 상당수를 일거에 제거하고 권력을 잡는데도 성공한다. 이에 실망한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둘째 아들인 이방과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간다. 이방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2대 왕 정종(이방과)으로부터 왕세제로 임명되어 국정도 장악한다. 사병 혁파에 극렬하게 저항한 대가로 그는 엄청난 권력을 획득한 것이다. 이랬던 그가 왕세제가 되자 180도 변신한다. 어떻게?
현재 팀장이 된 김부장. 그가 팀장이 되기 전인 선임 부장 시절 매사에 합리적이고 온화하였던 자신의 팀장을 존경하였다. 다만 자신의 팀장에 대한 불만이 딱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팀장이 직원들이 휴가 승인서를 올릴 때마다 어디 가냐고 꼬치꼬치 묻는 것이었다.
김부장은 선임 시절 담배 피면서 후배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우리 팀장님은 휴가승인서 올릴 때마다, 내일 어디 가냐고 꼬박꼬박 물어보시네. 도대체 그걸 왜 물어봐? 아니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휴가를 쓸 수 있나? 아무 일 없으면 쉬지도 못하나? 이거 참 무서워서 휴가 승인서도 못 올리겠어.
열변을 토하는 김부장님 밑에서 많은 대리, 과장들은 김부장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장님! 부장님께서도 내년에 팀장님 되시면 지금의 팀장님과 똑같이 되시는 것 아니에요?”
“무슨 소리. 내가 팀장이 되면 팀원들이 휴가 승인서 올릴 때마다 보지도 않고 승인할거야. 팀원들이 어디 가든 말든 내가 알아서 뭐해?”
“야! 김부장님 너무 멋지다. 내년에 부장님께서 꼭 우리 팀의 팀장님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들도 제발 맘 편히 휴가 갔으면 좋겠어요.”
이랬던 김부장. 해가 바뀌어 김부장은 팀장이 되었다. 처음 몇 일간은 직원들이 휴가 승인서 올릴 때마다 말없이 결재하더니, 팀장 된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직원들에게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180도 변한 김팀장의 모습에 직원들은 적잖이 실망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김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팀장님! 선임 부장 시절 때는 옛 팀장님 욕하시면서, 휴가 승인서 올릴 때마다 바로바로 결재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왜 자꾸 어디 가냐고 물어보세요?”
이야기를 들은 김팀장은 허허 웃으며 대답한다.
“에이! 그때 팀장님과 나는 다르지. 옛 팀장님은 너희들이 노는 꼴을 못 봐서 물어본 거야. 하지만 내가 지금 물어보는 이유는 달라. 다 너희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너희들이 집에서 쉬면 모르겠지만, 만일 어디 놀러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해. 내가 빨리 상황 파악해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 아니야.”
이렇게 말한 김팀장. 하지만 그의 마음도 옛 팀장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막상 팀장이 되니까, 옛 팀장과 생각이 똑같아 지는 것이다. 직원들이 휴가승인서 올릴 때마다 ‘얘네 들은 어찌 그리 놀러갈 때도 많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즉, 나는 바빠 죽겠는데, 팀원들만 노는 것 같아 부아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옛팀장과 판박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팀원 시절과 팀장 시절이 180도 달라진 김부장. 이방원도 그랬다. 권력에서 소외되었던 왕자 시절에는 정도전의 사병 혁파에 목숨을 걸고 싸울 정도로 반대했지만, 자신이 막상 권력을 장악하니 다른 왕자들의 사병은 눈엣가시 그 자체였다. 왕자들의 사병이 자기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자, 그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신의 형(정종)이 왕위에 즉위하자, 형제들과 측근들이 거느린 사병을 야금야금 없애기 시작한다. 조선왕조실록 정종 편과 태종 편을 보면, 사병 혁파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온다. 그 중 대표적인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옮겨본다.
사병(私兵)을 혁파하였다. 사헌부 겸 대사헌(兼大司憲) 권근(權近)과 문하부(門下府) 좌산기(左散騎) 김약채(金若采) 등이 교장(交章)하여 상소하였다
병권(兵權)은 국가의 큰 권세이니, 마땅히 통속(統屬)함이 있어야 하고, 흩어서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흩어서 주장하고 통속함이 없으면, 이것은 태아(太阿)155)를 거꾸로 쥐고 남에게 자루를 주는 것과 같이 제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사를 맡은 자가 많으면, 각각 도당을 심어서 그 마음이 반드시 달라지고, 그 형세가 반드시 나뉘어져서, 서로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화란(禍亂)을 이루게 됩니다. ~~(중략)~~
소(疏)가 올라가니, 임금이 세자(이방원)와 더불어 의논하고, 곧 시행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정종 4권, 2년 4월 6일(신축) 9번째 기사)
그렇다. 우리는 흔히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스캔들’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남이 할 때는 왠지 뭔가 어색하고 불합리한 것 같지만, 내가 할 때는 어떤 것이든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남이 하면 틀리고 내가 하면 옳다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광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위가 변함에 따라 생각이 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남의 눈에 있는 티는 잘 봐도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너무 흥분할 필요도 없다. 정치인이 말을 바꾼다고 광분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려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왜냐하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렇게 변할 가능성이 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