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 imagine Nov 09. 2022

마흔하나에 아이스하키를 시작했습니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아이스하키

네, 마흔하나에 아이스하키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장비 질렀으니 무조건 해야 합니다. ㅎㅎㅎ 한 번의 체험 수업이 끝나고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감독님! 저 바로 등록할게요. ㅋㅋㅋㅋ


아이스하키는 일단 재밌습니다. 지금껏 꽤 많은 스포츠를 해봤는데 아이스하키만큼 재밌는걸 처음 봤습니다. 요가, 필라테스, 발레, 방송댄스, 테니스, 스쿼시, 패러글라이딩, 스키, 골프 중 최고입니다. 얼음을 지치며 신나게 나아가는 즐거움도 있고, 지금껏 조금도 길러지지 않았던 하체 힘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어시스트를 해서 골 넣는 기쁨도 큽니다.


단체 팀 운동은 살면서 처음입니다. 요즘 여자 축구붐이 일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서 여자축구팀은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부대끼며 훈련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많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아이스하키는 장비가 많아서 그런지 사람이 약간 뻔뻔해진다는 기분도 듭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부담이 없기도 합니다. 장비로 한껏 부풀어진 몸에서는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태도도 사라지고, 밝고 명랑한 나만 느껴집니다. 고민 없이 즐겁기만 했던 20대의 나를 보았습니다. 잠깐의 신데렐라 같은 기분일지라도 어릴 적 나로 돌아가 보는 것은 소중한 일입니다.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우리 집 아이 둘은 아이스하키를 배웠습니다. 연습 경기할 때마다 열심히 안 뛴다고 소리 지르는 하키맘이었던 저의 옹졸했던 과거를 반성합니다. 애들처럼 아이스하키를 하려면 저는 얼마나 더 열심히 훈련해야 하는 걸까요. 아득하기만 합니다. 직접 타보고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니, 우리 애들은 너무 잘하고 있습니다. 그간 아이들은 링크장에 넣어두고 혼자 장 보러 다니느라 몰랐는데, 직접 해보니 아이들 연습장면만 봐도 재밌습니다. 매번 볼 때마다 실력이 늘고 있습니다. 솔직히 부럽습니다. 마흔한 살이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기에 늦은 건 아니기를. 적어도 마흔다섯 살까지는 하고 싶거든요. 건강하게, 아프지 않게 말이죠.



널브러진 3인의 아이스하키 장비 더미를 만나는 화요일 아침. 사진 속에 보이지 않는 장비도 더 많습니다. ㅠㅠ 차곡차곡 장비 정리하고 닦아서 팬트리에 쌓으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상훈련까지 해서 다리가 아프다는 아홉 살 아들은 곡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살면서 허벅지에 힘을 처음 줘본 저는 다리에서 지진을 느낍니다.


그래도 너무나 즐겁습니다.

마흔한 살은 호기심이 많은 나이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