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같이 일하던 실장님께 쉬고 싶은 이유를 말해야 했습니다.. 10년 동안 함께 일했던 실장님께 ‘일하기 싫어요. 앞으로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어요.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말해야 했는데요. 실장님은 도대체 하고 싶었던 일이 뭐냐고 물을게 뻔했기 때문이지요. 골똘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습니다. 쉬는 동안 하고 싶은 일 말입니다.
그래서 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열일곱 때부터 마흔한 살이 된 지금까지 막연히 가지고만 있었던 꿈입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갖고 싶어서 여행작가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른부터 시작된 결혼-출산-육아가 이끄는 삶은 절대 녹록지 않았지요. 사업하느라 바쁜 남편은 제게 조금도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일도 하고 싶고, 아이도 직접 키우고 싶고, 취미도 놓치고 싶지 않아 그저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1분 1초를 간신히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덧 마흔한 살입니다. 엄마가 없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던 아이들은 초5와 초2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집에 없어서 자신들만의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합니다. 훌쩍 커버린 남편의 사업은 이제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버렸습니다.
억울합니다. 못 견디게 화가 납니다. 내 모든 걸 갈아서 가정을 일구어 놓았더니, 나 빼고 모든 것들이 자라 있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공치사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가 남편한테 이렇게까지 했다, 그랬는데 남편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나를 이렇게 대하더라. 잔뜩 욕을 써놓았습니다. 남편 욕을 써놓고 나니 조금 미안해집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표현을 누그러뜨립니다. 문제가 될 것 같은 챕터를 제거합니다. 내가 너무 징징거리나 싶어서 으른인 척도 해봅니다. 그렇게 스스로의 심의에 걸러져서 써 내려간 초고는 맥락 없이 흔들립니다. 어쩌려는 건가 싶은 생각이 가득합니다.
지인 찬스를 통해 출판사에 투고도 해보았습니다. 제목이 너무 심심하다더군요. 연쇄 창업가 아내의 고군분투라는 주제로는 흥미를 끌기 어렵겠다고요. ‘잘 나가는 스타트업 대표 만들기’ ‘21세기 평강공주 성공 스토리’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식의 접근이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런 방향성은 낯부끄럽습니다.
용기를 내어 다른 출판사에 투고를 해야 할 타이밍인지 아니면 글을 좀 더 다듬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고민을 핑계 삼아 혼자 와인만 홀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