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용지 한 장 분량의 독후감을 받았다. 평소에 다루지 않는 주제로 토론하는 모임을 운영했고, 마지막 뒤풀이 겸 파티를 하는 자리에서 건네받은 종이엔 담담하게 적어 내려 간 한 친구의 생각이 적혀있었다.
토론 시간이 부족해서 못다 한 의견을 건네주고 싶었다는 행동은 나에게 감동을 줬고, 반복하며 정독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답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책은 존 버거의 ways of seeing. 친구의 독후감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보면, 인식을 기반으로 한 바라봄과 보는 행위에 대한 고찰. 2장과 3장의 내용을 토대로 남성의 바라봄과 여성의 바라봄을 다룬 내용을 읽고, 자신의 바라봄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자각에 대한 내용이다. 길지 않고 담담했고 깊이가 있었다.
인식.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기준과 개념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정확한 답을 찾기에는 많은 것들이 얽혀있고, 시대와 시기에 대한 논의가 우선 시 되어야 한다. 다만, 나만의 정의를 내리자면, 결국 각자의 지나온 삶들과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과 변화를 겪는 순간에도 인식은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을 정의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을 설명하기보다는 그 시대의 사회 시스템, 환경, 문화, 교육을 설명한 것에 가깝다. 그러므로 인식을 기반으로 해서 무엇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 무엇이 놓인 한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바라봄이란 결국 시대의 바라봄을 말한다. 현시대의 바라봄은 갈등을 조장하고 방향성을 잃기 쉽게 만든다. 바라봄의 대상이 어떤 것이고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고 무엇이 이득인지를 자문하도록 만든다.
영화 Detachment가 생각난다. 배워야 하는 이유 그리고 나만의 사고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대리교사가 학생들에게 연설하는 장면 그리고 대사는 내 안에 큰 힘으로 남아있다.
잘못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또는 자연스럽게 거짓된 것을 믿는 것. 통제의 목적을 가진 사회 시스템은 우리의 사고에 자연스럽게 침투한 상태이고, 이것과 싸우기 위해서는 배우고 공부하고 사고해야 한다. 이것은 힘든 일이다. 반복되고 목적이 없는 삶에 지친 이들은 힘들다 생각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한다. 자연스럽게 피한다.
성에 대한 인식. 남자로서 또는 여자로서 시작하기보단 '지금 내가 사는 사회에서'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남자도 여자도 자신의 성별을 선택하여 태어나지 않았고 이 인식은 의도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이슈들을 바라볼 때, 현 사회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시도만으로도 우린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
남성의 기준에서 여성스러움과 여성의 기준에서 남성스러움. 주변에서 이것을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잘못을 물을 수 있는 대상을 만들게 된다. 지배의 위치에 있는 대상 또는 집단은 똑똑하다. 의도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시대의 의식, 언론과 매체, 교육 제도와 사회적 시스템 그리고 가정은 인식의 가랑비다. 인식이 젖는 줄 모르게 살랑거리며 내린다. 현시대의 홀로코스트라 칭할 만큼 많은 이들이 젖은 인식에 익숙해져 있다.
이 책은 읽는 이에 따라서 가랑비 또는 햇빛이 될 수 있다. 복잡하고 힘든 사고를 하기 싫은 이들에게는 받아들이면 그만인 그런 가랑비로, 젖어있는 인식을 자각하기 위해 힘을 쏟는 이들에게는 햇빛이 되어 준다.
나의 바라봄. 현시대의 나의 바라봄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친구의 독후감과 책이 나를 조금 덜 외롭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