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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Jul 21. 2024

월급의 추억2

두번째 이야기 - 명함의 무게

2003년, 나는 P사에 입사한 지 2년 차였다. 연봉이 2400만 원으로 인상되었다. 처음으로 손에 쥐게 된 두툼한 월급봉투를 보며, 나는 앞으로의 길이 밝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화는 항상 문턱에 있었다.

경영진과 주주간의 갈등으로 입사 3년 차에 회사는 스핀오프를 결정했다. 누구는 남는다 하고 누구는 따른다했다. 또 다른 어떤이는 이참에 창업을 하겠다했다.

남을 것인가, 사장을 따라 새로 분할하는 회사로 갈 것인가.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그를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연봉 2900만 원으로의 인상은 그 결정을 더욱 견고히 했다. 


새로운 회사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여러 신규 사업들이 쏟아졌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두 달, 세 달. 당시 외벌이 신혼이었던 나는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버티다보면 해결되겠지, 회사와의 의리가 있지 어떻게 혼자 도망을 가나? 등의 이유로 고민의 고민을 했지만 결국 모두 퇴사해버렸고 회사에 끝가지 남은 건 단 3명 사장과 사장의 형 그리고 나뿐이였다.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안정된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결심했다. 지방대에 조그마한 중소기업 출신인 나를 받아주는 대기업이 있을까? 걱정이 컸지만 그렇다고 또 다시 비슷한 규모의 구멍가게에 들어가 다음달 월급걱정을 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다행히 구직 활동을 시작한 3개월 만에 몇몇 기업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래도 지난 몇년간 밤낮없이 일해온 경험을 인정해주는 것 같아 기뻤다. 


난 그중에서 가장 큰 H그룹에 입사하기로 했다. 연봉은 전 직장과 같은 2900만 원으로 동결되었지만, 그래도 안정된 회사라는 것에 감사했다. 새로운 직장 생활은 기대 이상이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회사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부러움의 눈빛을 느꼈다. 더 큰 변화는 은행에서였다. 전 직장에서 월급이 밀렸을 때, 대출을 받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신용도가 떨어져 은행은 나에게 여러 서류를 요구했고, 결국 대출은 거절되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재직 증명서 하나로 신용대출이 가능했다. 놀라웠다. 


입사하면 의래히 받는 '명함'의 의미가 바뀌었다. 명함을 연락처를 알리는 작은 종이 쪽지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였다. 그 무게를 실감했다. 월급날마다 깨달았다. 돈의 가치는 액수만이 아니었다. 정시에 입금되는 그 안정감. 그것이 진정한 가치였다. 이 교훈을 가슴에 새겼다. 대기업의 혜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내 복지와 교육 프로그램은 훌륭했다. 나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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