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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Feb 12. 2024

월급의 추억

첫번째 이야기

2001년 8월 어느 날. 

마이애미 국제공항을 출발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던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졸업 한 학기를 남겨놓고 어학연수차 미국으로 떠났던 나는 현지의 멋진 캠퍼스와 시스템에 반해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열의가 충만했다. 

지원 가능한 대학원을 찾아보고 부모님과의 협상(?)도 잘 끝내놓은 후 1년 착실히 유학준비를 했다.

귀국 한 달 전쯤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무래도 유학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사업에 어려움이 생겨 유학 지원이 힘들다는 말씀이셨다.


'내가 미국으로 다시 올 수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착잡한 마음에 오만가지 잡생각이 떠올랐다. 

막상 귀국해 보니 집안 사정은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실망이 컸지만 부모님께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일단 빨리 취업부터 하고 나중에 다시 기회를 만들어 보자' 

짧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취업이었다.


인터넷 취업사이트에 이력서를 정성스레 작성해 올렸다. 

바로 다음날 벤처기업인 P사의 H대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OOO 씨 다음 주 목요일에 오후 2시까지 면접 보러 올 수 있습니까?"

이력서를 올린 지 하루 만에 연락이 와 조금 당황했지만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당시 면접에 입고 갈 정장 한 벌도 없었던 나는 학교 앞 정문에서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호객하는 아주머니를 찾아가 카드를 신청해 발급받았다. 그리고 근처 할인매장을 찾아 정정 한 벌을 구매했다.


긴장했던 면접장에선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답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합격통보를 받았다.예상보다 너무 쉽게 취업이 돼버렸다. 

합격했으니 출근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좀 더 나은 회사가 있을지 찾아봐야 할까? 

당시의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아무런 지식과 경험이 없었다. 

또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고민 끝에 결국 출근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IMF 이후 대기업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였던 시절이여서 찾아본들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저 하루빨리 자립해서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드리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학과 교수님께 조기취업을 알리고 출근을 시작했다. 

2001년 11월 1일 이었다.

취업한 P사는 정보보안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고 엉성하지만 자체적인 솔루션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매출의 대부분은 금융 IT인프라를 제공하는 중견기업인 K의 업무를 대행하는 것으로 발생시켰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은 시작되었다. 면접을 오라고 전화했던 H대리는 내 사수가 되었다. 첫 직장에서 5년간 근무했고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거나 경험했다.


2001년 12월 1일, 내 인생 첫 월급날.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내 연봉은 2,100만 원이었다. 

세금과 4대 보험료를 제하고 받은 금액은 한 달에 160만 원가량 되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당시의 20대 청년이 생활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돈이었다. 

더구나 사회 초년생으로서 아침에 출근해 자정이 다 돼야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던 나는 따로 돈을 쓸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첫 월급의 일부를 어머니께 드렸고 나머지는 할부로 구매한 양복과 친구들에게 미리 한 탁 냈던 카드값으로 지출했다. 

그날은 첫 월급 날인 동시에 내 수입을 카드사가 관리하기 시작한 첫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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