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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명다양성재단 May 16. 2023

도토리 서재 3.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관계들

<관계>_안도현 저

도토리 서재는 생명다양성재단의 두 연구원이 번갈아가면서 책을 선정하고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매달 한 권의 생태 관련 책을 소개하고 책 소개 뿐 아니라 생태감수성, 생명 존중 문화, 환경 관련 이슈에 대한 연구원들의 생각과 대화를 전달합니다.  

   

<도토리 서재>는 생명다양성재단의 소식지 <하늘다람쥐>의 생태 문화 컨텐츠 소개 코너이기도 한데요, 하늘다람쥐/다람쥐는 먹이를 모으는 습성이 있는 대표적인 동물입니다. 마음의 양식이 가득 채워진 책방 - 생태적인 이미지에서는 도토리가 잔뜩 모여 있는 다람쥐의 저장고를 떠올리게 하여 <도토리 서재>이라는 이름으로 그 양식들을 한 권씩 소개합니다.


3편에서는 안도현의 <관계>를 소개합니다.


안도현.『관계』. 문학동네, 1998.


























성민규 연구원


생태 서적을 소개하는 ‘도토리 서재’ 코너에 좀 뜬금없지만 동화책 한 권을 들고 왔습니다. 안도현의 ‘관계’. 고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이 책을 꺼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들의 따듯한 시선에 반해서 열 번도 넘게 읽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꼭 선물로 이 책을 권하거나 선물했습니다.     


시인이 쓴 동화책인 이 책이 생태 책으로 읽히는 이유는 시인의 예리한 눈으로 포착한 ‘관계’ 그것이 이 책의 주요 테마이기 때문입니다. 재단 컨텐츠에서 여러 번 밝혔지만 생태학은 생물과 생물, 생물과 그 주위 비생물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이 책에서는 시인의 감성으로 생물과 생물 혹은 무생물간의 관계를 상상합니다. 시인이 바라보는 그들은 모두 우리가 쉽게 지나치고, 소외하는 작은 것들, 버려진 것들입니다.    

  

시베리아에서 자랐어야 할 자작나무가 아파트 단지에 심겨져 뜨거운 여름을 괴로워합니다. 구두가 주인 모르는 사이에 자기 몸을 깎아 주인의 발에 맞게 변합니다. 폭탄을 실어 전쟁터로 나르던 비행기가 잠자리와 자유와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구를 움직일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년의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뒷다리 부서진 의자를 그 의자를 만든 노인의 손이 쓰담아 줍니다.       


작고 약한 것들에 가 닿는 시인의 시선이 눈물나게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인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끔찍한 전쟁도, 숲의 벌목도, 습지의 매립과 하천의 개발도 다 없어질 것만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것은 전쟁도 환경 파괴도 덜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나름의 노력이자 희망의 전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명다양성재단의 활동을 응원하는 독자 여러분께, 우리는 모두 이런 세상을 만들고 싶은 동지라는 의미로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박지연 연구원


이 책은 “소설, 동화, 에세이, 시의 중간 어디쯤을 들락거리는” 형식의 글 22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안도현 작가는 건강한 관계망을 이루는 미덕이 무엇인지 현대인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서로 도와 이루어내는 꿈, 정해진 길이 아닌 자기만의 답을 찾는 모험, 물건을 함부로 하지 않는 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등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불교의 연기법에 따른 만물의 생사의 순환을 말하는 ‘끝없는 길을 가라’에서는 한 존재가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한 노스님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길가에 핀 염주나무 싹을 향해 “아, 스님!······” 하며 절을 올립니다. 노스님이 동자승일 때 만난 한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 것입니다. 길을 알기 위해 매일 길을 떠난다던 그 스님은 길을 가다 양지바른 곳이 있으면 거기서 볕을 쬐면서 앉아 졸다가 바람이 되노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던 염주도 그 자리에 묻혀 다시 싹을 틔울테니 길을 가다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거기 염주 싹이 무더기로 돋아 있거든 어떤 스님이 입적하신 곳이라 생각하고 절을 꼭 드리라 당부했습니다.  

   

한 존재에는 많은 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존재는 관계를 통해 확장됩니다. 노스님에게 염주 싹이 단순한 염주나무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안도현 작가는 책 말미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기계······ 이들이 서로서로 관계 맺고 있음을 상상하는 일은 무엇보다 즐겁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이 즐거움은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존재는 하찮고 소중합니다. 개별 존재가 하찮기 때문에 연결되어 함께하는 존재가 소중한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글|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박지연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


생명다양성재단|

생명다양성재단은 생물과 환경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과학을 바탕으로 자연 및 환경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2013년 설립된 공익 재단법인입니다. 환경 전문성을 바탕으로 과학적, 사회적, 문화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누구나 환경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삶 속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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