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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Nov 30. 2018

내겐 너무 재미없는 그와의 로맨스

노래도 못 부르는 새벽형 고양이 J에게

“뭐 해?”     

“놀아”     

“심심한데 좀 껴주면 안되나?”     

“책 읽는데 어떻게 껴주냐?”     

“헹... 멸치국수 먹을래? 죽여주는 데 아는데.”     

“쫌 전에 나가사끼 짬뽕 먹었어.”     

“쳇... 그래도 또 먹을 수도 있지 뭐.”     

“내가 돼지냐.”     

“... 무슨 책 읽어?"    

“<한국의 사상가 10인 : 수운 최제우>”     

“소설이야?”     

“쯧쯧 논문집이다.”     

“... 난 책 읽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넌 아니구나.”     

“난 책 읽는데 젤로 좋아.”     

“... 심심하면 또 문자 하자.”     

“그러든가.”     


새벽 1시 20분. 핸드폰의 문자 알림 알람이 울려도 난 궁금하지가 않다. J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양잇과라고 감히 말하는 J는 언제부터인지 새벽만 되면 문자로 수다를 걸어온다. 어차피 새벽에 많은 걸 해내는 특이한 생활습관 때문에 그 시간에 난 대체로 깨어있으니 답을 해준다. J가 내 친한 친구의 친구라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리고 솔직히 딱히 그의 문자가 싫지는 않다.      


J가 날 처음 본 건 내가 엉망으로 취했을 때다. 그래서 난 J를 보지도 못했고, 그저 맥주를 홀짝이며 우울한 노래를 몇 곡 부르고 있었다. 그곳은 내 친구가 아지트로 정한 변두리의 조용한 라이브 카페였는데, J는 그곳을 놀이터로 삼던 새벽형 고양이였다.      


“노래를 너무 잘 부르세요.”     


두 번째로 거길 갔을 때 처음 보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뭐야? 징그럽게? 너무 상투적이잖아?     

난 재수 없다는 듯 그를 훑어보고는 그곳을 나왔었다.      


“너 왜 그래? 쟤 내 친구야”     

“어쩌라고.”     


난 말이다. 도저히 용서 못하는 남자가 있는데, 바로 징그러운 데다 재미까지 없는 남자다. 여기서의 징그러움이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뭐라 딱 예를 들긴 어렵다. 그냥 그날의 내 느낌이다. 반면, 나에게 재미없다는 건 상당히 구체적인 것으로 재치와 학식을 겸비하지 않은 경우 상대가 재미없게 느껴지고 곧 싫증이 나서 절대 롱런 관계를 유지하고 못한다.      


그리고  그는, 징그럽고 재미없었다. 그러니 어쩌라고.      


그 후 너무 배고프던 어느 날, 조개찜 집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마치 내 친구가 가는 곳을 미리 알고 그전에 먼저 가 있는 듯 늘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젠장. 내가 얘랑 헤어지든지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어쩌겠어? 먼저 와서 먹고 있는 인간을 쫓아낼 수도 없고, 그냥 나올 수도 없고.      


“많이 드세요. 이 집 조개 맛있어요.”     

“네.”     

“전 칼국수 먹을 건데 드실래요?”     

“아뇨. 전 뜨겁고 길고 매운 거 못 먹어요.”     

“엥... 그렇구나. 이 집 김치가요, 아주머니가 다 직접 담근 거라 진짜 맛있거든요. 국물에 솔솔 풀어 먹으면 맛있는데.”     

“전요, 칼국수 국물에 김치 풀어 먹는 거 진짜 싫어하거든요.”     

“헤헤 그러시구나.”     


J의 징그럽고 재미없는 새벽 문자가 시작된 건 그 날부터였다. 친구는 아무래도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라며, 잘 되면 명품백 하나 사줘야 한다며 큭큭거렸지만. 아니, 도대체 뭐가 로맨스 예감이라는 거야? 통하는 게 있어야 얘기를 하든 문자를 하든 하지? 로맨스라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애틋한 감정 아냐? 니 눈엔 이게 애틋한 걸로 보이니?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그냥 니 팬클럽 하나 늘었다고 생각해. 살살 관리해 주고. 인생이 말이야, 팬클럽 관리 졸~ 못 하면 망하기 십상이거든”     


틀린 말은 아니지. 변변한 팬 클럽 하나 없는 나인지라. 그 날 이후 새벽에도 오는 문자를 받아주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3시가 다 된 시간에 멸치국수라니.      


그런데 지금, 모닝카페에 앉아 베이글과 커피로 아침을 먹는 지금, 어라? 왜 멸치국수가 생각나는 거? 오 마이 갓. 이건 내 스타일 아닌데. 징그럽고 재미조차 없는 J의 구린 스타일인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삐롱.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다.      


“굿모닝! 오늘부턴 줄곧 캐럴 송을 틀어대도 될 것 같은 무드지? 멋진 캐럴곡 부르고 싶은데 이따 거기서 볼래?”     

아, 캐럴 곡을 라이브 카페에서 부르는 지질한 어른이라니. 난 그런 거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가 생각하고 있는 멋진 캐럴곡은 뭘까? 설마 포켓몬 크리스마스 캐럴? 아님 마샬리스 할아버지의 리틀 드러머 보이? 오 노 그건 진짜 아닌데.... 혹시 조 브룩스나 매트 휘슬러를 그가 알까? 이번에 좋은 곡 발표했는데, 그 노랠 부르는 건 아니겠지? 네버, 그럴 리가... 아니, 근데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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