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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캣 Dec 14. 2018

생리처럼 우울이 찾아오면, 그 남자랑 한 잔

뭐든지 잘 만드는 남자가 내 편일 때

"오늘 왜 그래?"

"뭘?"

"좀 이상한 거 알지? 말도 안 하고. 무슨 일 있어?"

"내가? 내가. 내가 말이지... 가지치기 하고 있어서 그래. 인생의 가지치기"


녀석은 피식 웃는다. 또 시작이네, 뭐 그런 비웃음 가득한 얼굴이다. 

하긴, 나의 울적함은 좀 주기적이긴 하다. 심리적 생리라도 되는 듯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마니까. 늘 옆에서 그 꼴 다 보는 녀석이니, 날 한심하다 여길 만도 하다. 


"그러지 말고, 집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

"..."

"이것 좀 봐봐. 죽이지 않아? 반질반질한 게, 꽤 탐스럽단 말이지. 크크."


녀석이 내놓은 건 까만 술병과 잔이다. 뭐든 조물조물 잘 만드는 녀석이 이번엔 술병 세트를 만들었나 보다. 흘끔 관심 없는 척 보긴 하지만 꽤 예쁜 건 사실이다. 


"... 술은, 있냐?"

"암뇨!"


뚝딱. 


어느새 술병엔 따뜻하게 데워진 사케가 가득 담겨있다. 그뿐이 아니다. 잘 구운 오븐 새우와 버터구이 감자까지. 눈물이 핑 돈다. 내 편이 있다는 건, 역시 좋다. 


"뭐, 그럼 마시지 뭐."

"자! 쭉 마셔라. 오늘 같은 날엔 축 늘어져 있는 것보단 좀 오버하는 게 나아. 아니, 어쩌면 우리 인생이 늘 그 모양인지 모르겠어. 지치고 힘들어서 축 절여진 상태라 하더라도. 그냥 조금씩 오버하면서 댕댕거리고 사는 거지. 나 자신과 내 팬클럽들을 위한 오버 포커페이스. 낫 베드?"


그래. 어쩌면 니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가지치기? 하면 뭐하냐. 곧 다시 귀신딱지들처럼 득실득실 피어오르는데. 그런 게 내 옆의 인간들이고, 못나먹은 내 감정인데. 이젠 지친다, 지쳐. 그래, 친구야, 술이나 한 잔 하자. 오늘?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그냥 그런 날이니까. 치어스!     

그리고 녀석과 난 뻗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비 내리는 가을날이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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