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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s Oct 17. 2023

펫캠으로 너는 메시지를 보낸다

네가 있는 풍경  

첫 고양이 애기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열흘 전, 밖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섰을 때의 방 안 풍경을 기억한다. 


그 풍경은, 박살 나 뒹구는 유리 파편의 이미지로, 끔찍하고 아프게, 내 안에 영구히 각인된다. 

방바닥 여기저기에 묻어있던 불그레한 피고름, 그걸 발견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심장이 곤두박질치던 몸의 감각, 애기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뛰어갈 때의 3월의 철렁한 밤공기.


애기는 항문낭 염증 수술을 받았고, 한 달 넘게 입원을 했고, 4월의 가장 아름다운 새벽에 죽었다. 


훗날 집에 펫캠을 설치하게 되었을 때 애기를 생각했다. 

만약 그때 이게 있었더라면.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더 빨리 보았더라면. 


부질없는 '~했더라면'일지라도, 그래도. 




애기를 보내고 나서는 보리에 대한 건강염려증이 생겼다.   

집착도 커졌다. 혼자인 보리를 두고 집을 나설 때마다 마치 대여섯 살쯤 된 아이를 혼자 두고 온 것처럼 온 신경이 집으로 쏠렸다. 풀타임 근무자가 아닌 파트타임 프리랜서라 집에 있는 시간도 적지 않은데 말이다.


그 와중에 세상 문물이 좋아져, 통신사에서 저렴한 비용에 펫 CCTV를 설치하게 됐다. 

펫캠을 설치한 후론 집 밖에서도 수시로 보리를 살피곤 한다. 집에 올 땐 휴대폰 속 카메라를 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보리는, 방랑하는 삶을 사는 나를 서둘러 귀가하게 만드는 유일한, 어쩌면 마지막 이유다. 




보안을 위해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카메라를 꺼두고 있다가, 집을 나선 후 원격으로 카메라를 켜고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원격으로 카메라를 끈다. 카메라를 켜면 녹색 불이 켜지고, 카메라를 끄면 커버가 씌워진다.

 

방 한구석에 설치된 새로운 물건을 인지한 후 보리는 호기심을 보였다. 그런데 화면 속의 보리를 보다가 언제부턴가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보리는 뭔가 깨우쳤다. 카메라의 온오프와 엄마의 귀가와의 상관관계를.  



펫캠 속에서 보리는 나름 자신의 규칙적인 루틴대로 하루를 보낸다.

내가 집을 나선 후엔 잠시 멍 때리다 밥을 먹거나, 터벅터벅 자기 잠자리로 향한다.  

정성스레 자기 몸을 그루밍하고는 똬리를 틀고 잠을 잔다. 

작년까지는 중간중간 깨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밥을 먹거나 잠자리를 바꿔 자곤 했는데, 올해 들어 기력이 떨어진 후로는 자는 시간이 늘었다.   

내가 옆에 있을 땐 세상 편한 표정으로 바닥에 배를 깔고 옆으로 드러누워 있지만, 펫캠 속의 보리는 바닥에 늘어져 있는 법 없이 제 잠자리에서 꽁꽁 웅크리고 잠을 잔다. 


저녁이 되면 자기 나름의 알람이 작동하는 모양이다.  

내가 일찍 귀가할 땐 보리는 한참 잠을 자고 있다가 게슴츠레 눈만 껌뻑이며 나를 슥 쳐다본다.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 분간이 잘 안 가 고민하는 표정이다. 그러다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으갸갸갸 한바탕 기지개를 켜고는 한 마디 한다. 

'어어... 벌써 왔어?'


하지만 내가 저녁 9시가 넘도록 귀가하지 않으면 그때부턴 잠자리에서 일어나 펫캠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빤히 응시하는 눈빛. 그 눈빛은 마치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왜 아직도 안 와?' 





저 물건을 쳐다보면 곧 엄마가 들어온다고 학습한 것일까? 저 조그만 머리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인지하게 된 것일까? 영특 기특한 보리의 머릿속을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나의 귀가 시간이 늦어질 때 보리가 현관문 쪽이 아닌 펫캠을 쳐다보며 기다린다는 것,

그 모습이 나에게는 재촉의 전화, 혹은 빨리 오라는 문자메시지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인간처럼 '언제 와?'라고 말을 할 수 없는 나의 고양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놀라운 시간감각과 빤히 응시하는 눈빛 하나로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 수 있다. 


예전에 애기는 내가 늦게 귀가하면 이미 현관문 앞에 오도카니 앉아있곤 했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 앞에 애기가 앉아있으면 내 귀가가 늦었다는 뜻이었다. 그런 날이면 애기는 나를 올려다보며 서운함 뚝뚝 묻은 목소리로 한참 동안 애앵애앵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된 보리는 현관문 앞에 앉아있는 수고를 절약하는 법을 혼자 터득했다. 그저 펫캠을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서늘하고 슬픈 날이 올 것을 안다. 

저 풍경 속에 보리가 없는 그런 날이. 

귀갓길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는 그런 날이.


때문에 수시로 휴대폰 속 어플에 들어가 보리를 살피는 조마조마함은, 그 자체로 꽉 차고 넘쳐흐르는 오늘의 행복이다. 촛불 같은, 그러나 반짝반짝 빛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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