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펫로스, 긴 애도의 시작
보리가 세상을 떠났다.
2025년 8월 15일 오후 3시 반.
급성간염 진단을 받은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날. 입원 2박 3일 만에 (더 이상 가망이 없어) 퇴원을 결정하고 집에 데려온 지 4일째 되는 날. 함께 한 지 5760일째 날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보리야, 이건 너의 싸움이구나.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이겠구나. 저쪽으로 넘어가기 위한, 너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구나.
하지만 네가 다리를 건너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가 옆에 있을게. 엄마가 네 몸을 끝까지 꽉 붙들고 받쳐줄게.
좋아하던 원형 스크래처 둥지 위에 축 늘어져 있던 보리는 이미 기진맥진한 채 개구호흡을 하기 시작했고 입에서는 침도 흘러내렸다.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급하게 병원에서 받아온 진통제 한 알을 아이의 목구멍에 집어넣고 주사기로 물도 한 모금 흘려 넣어보았지만 때는 늦어 있었다. 보리는 이젠 싫다고 거부했다. 약은 어찌 삼켜냈으나 물은 입 밖으로 지르르 흘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란 건 딱 한 가지였다. 이 시간이 길게 늘어지지 않기를. 보리가 얼른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기를.
그다음부터의 장면들은 조각조각 부서진 파편들로 내 안에 저장되어 있다.
나는 쉬지 않고 보리의 온몸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추고 뭔가를 계속 말해줬던 것 같다.
울 아가보리 아구 힘들어 그치, 너무 잘하네에, 어쩜 이렇게 잘하지? ... 그런 말들이었을 것이다.
울먹임은 최대한 참고, 목소리 톤은 한껏 높였다.
얼마 후 보리는 어딘가로 도망가려는 듯이 사력을 다해 몇 걸음 기어갔는데, 마치 마음으로는 전력으로 뛰어 도망가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것만 같았다. 그런 아이를 붙잡아 계속 계속 쓰다듬어주었지만 호흡은 매 순간 더 거칠어지고, 급기야 가래가 끓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헉헉거렸다.
어느 순간 동공이 크게 확장되면서 아이의 시선이 어딘가 허공을 향했다. 순식간에 색이 미묘하게 탁해진 채 한껏 확장된 그 눈동자를 보고 직감했다. 마지막 순간이 바싹 다가왔음을.
보리는 마치 눈앞에 무서운 천적이라도 본 것처럼 ‘꼬리 펑’을 하더니, 온 힘을 다해 네 발을 쭉 뻗으며 모든 발톱을 세웠다. 조그마한 발가락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 쫙 벌어졌다. 입을 딱 벌린 채 경악한 표정이 된 보리는 고개를 뒤로 한껏 뻗대며 마치 토하듯 기침을 커억 내뱉고 ‘억!’ 하고 비명을 지르는 표정이 되었다.
바닥에 바짝 웅크린 채로 두 팔로 보리를 감싸 안고 있었는데 바지 자락이 축축해지는가 싶더니 아이가 지린 오줌이 흥건했다. 마지막 숨이 끊기는 고통의 클라이맥스가 작은 몸뚱이를 훑고 지나가는 게 내 온몸으로 전해졌다. 곧이어 아이의 몸뚱이는 두어 번 작은 경련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축 늘어지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뒤로 한껏 뻗대었던 고개에도 힘이 빠졌다.
모든 순간, 나는 쉬지 않고 뭔가를 말하고 외쳐댔다. 강을 건너간 보리가 저쪽 기슭에 닿을 때까지, 마지막 순간이 지나서까지 내 목소리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도록.
버텨내느라 힘이 잔뜩 들어갔던 몸뚱이에 힘이 빠지며 말랑말랑해지는 게 느껴졌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아이의 눈을 감겨보았으나, 잘 감기지 않아 여러 번에 걸쳐 눈꺼풀을 쓸어내려 주어야 했다.
진통제를 받으러 갔던 병원에서 집에 도착해 약을 먹인 시간이 3시 10분에서 20분 사이. 모든 것이 지나가고 비로소 울음이 터져 나올 때 문득 고개를 들어 확인한 시간이 3시 30분에서 40분 사이였다.
거대한 슬픔과 압도적인 안도감이 우레처럼 밀려왔다. 보리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제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오열.
광복절 휴일, 비 온 뒤 개어 햇빛이 쨍한 한여름 오후 한복판. 가장 눈부신 시간에 보리가 떠났다.
엉엉 우는 내 울음이 빈 집 안을 가득 메우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낯선 사람의 소리처럼 기이하게 인식되었다.
보리는 마침내 내 손을 놓고 강을 건너가 버렸다. 자기 혼자 치러야 하는 싸움을 용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고 스스로 치러냈다.
병원에 다녀오느라 1시간 남짓 엄마가 집을 비운 동안에 잘 참고 있다가, 엄마가 오자 비로소 떠날 만큼 똑똑하고 기특하고 착했던 고양이. 내 아기, 내 새끼. 어쩜 이리 잘해. 어쩜 이리 용감해.
나는 구역질을 하듯 울음을 토해내며 거듭거듭 뽀뽀를 퍼부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한여름 오후.
보리가 내 곁을 사뿐히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