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차를 탈 일이 있어 9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할텐데, 운동을 해야할까, 산책을 해야할까, 아님 아예 나서지 말고 아이가 깨기를 기다릴까.
고민하느라 20여분이 늦어졌다. 산책을 나섰다.
그래도 하루의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부지런히 오감을 위한 시간을 꼭 가지기 위해 땅에 발을 딛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살아있기 위해
살아있다는 기쁨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해야하는구나
여름의 무더위가 이제 좀 지쳤는지, 새벽의 나무들은 그 서늘함을 맹렬히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오늘의 어떤 시간과 공간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구나.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나무의 입김을 느끼기 위해선,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는거다
돌아와선 아이를 부지런히 학교 보내고, 기차역까지 운전대를 잡았다. 사실 9시에는 늘 라디오를 틀곤 했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나는 그냥 그날그날의 내 감정의 색에 맞춰서 음악을 틀고 있었다.
9시에 있던 그녀의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배우가 같은 자리에 앉아 또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음성을 송출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대신 할 수는 없다.
더 부족하거나 덜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오롯이 그녀의 목소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없다. 존재 하나하나의 특이성을 과연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설령 앤디워홀의 수많은 카피본으로 지구의 시각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 수많은 카피본 하나하나 고유의 프린트번호와 질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음성은 그러니 어떻겠는가.
기차를 타고 도착지에 내리는동안 새벽의 그 기운을 되살려내려 애써봤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일은 내일 새벽의 고유한 색채를 보기 위해 지체말고 신발을 신겠다고. 20분의 고민은 하지 않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