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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길벗 소로우 Jan 26. 2023

색깔이 있는 쇠공

새벽꿈에 쇠 공을 보았다.

울퉁불퉁한 쇠공의 질감이 잘 드러났다.

그 공의 왼쪽 상단에는 붉은빛이 비취고 있었고, 오른쪽 하단은 푸른빛이 비취고 있었다.


쇠공의 고유한 색깔은 녹슨 적갈색이었다.

그러나 푸른빛이 비취자 푸른 공이 되었고, 붉은빛이 비취는 면은 붉은 공이 되었다.


쇠공에 고유한 색깔이라는 게 있을까?

쇠공은 본인의 색깔이 있다 할지라도 (사실 그것조차도 의심된다. 적갈색이 과연 본인의 색인지?) 비추는 빛에 따라 빛깔이 달라졌다.

푸른빛을 받으면 푸른 공, 붉은빛을 받으면 붉은 공, 둘 다 받으면 두 개의 색깔을 가진 공.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고 있는가? 나는 악마로부터 빛을 받고 있는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영롱한 빛 또는 칙칙한 빛을 받고 있는가?

나는 무슨 빛을 받아 반사함으로써, 그런 색깔의 그런 공이 되었을까?


내가 곱고 빛나는 공이 되고 싶다면, 나를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나를 바꾼다는 것이 내 본질, 내 색깔, 내 질감 등 내 속에 것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덮는 그 빛을 바꾸는 것이 나를 바꾸는 것이다.

빛만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자신의 과거 인생을 성찰하고, 잘못된 삶을 살아온 것을 자책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기에게 비친 그 빛이 마치 자신의 속에서 나온 빛이었던 것처럼,

마치 자신에게 광휘가 있기나 했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발광체이기나 했던 것처럼 착각을 해선 안 된다.


나는 발광체였던 적이 없고, 거의 오직 반사체로 살아왔다.

그러니 녹슨 쇠공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네가 선택하지도 않은 빛의 색감 때문에 더 이상 고민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 새로운 빛의 세계로 나아가자.

그러면 이쁜 공이 될 것이다.

네 겉의 rusty red가 사라질 것이다. 설령 그대로라 할지라도, 너를 감싸 덮은 그 빛으로 인해, 아무도 rusty red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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