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지난 5월 3일에 이곳에 신경 안정제를 삼키며 백수 생활의 시작을 알리고 오늘자 8월 3일, 정확히 3개월이 지났다.
눈 떠보니 모 어학원의 선생님이 되어 휘몰아치는 2주를 보내고 오늘 처음으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 역시나 휘몰아쳤던 교육 기간을 합치면 3주 차 되겠다. 과연 3달 같은 3주였다.
십수 년 1인 프리랜서로 살다가 생애 처음 큰 조직에 들어갔다. 내 한 몸이 곧 룰이었는데 이제는 십수 단계의 룰에 나를 맞춰야 한다. 다섯 층위의 단톡방에 초대됐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전장의 총알처럼 넘나 든다. 맡는 학생이 많아도 한 번에 여덟 명을 넘기지 않았는데 이젠 수십 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뒷골목 검은 고양이가 뒷목 잡혀 드럼세탁기에 던져졌고, 코로, 귀로, 눈으로, 입으로 쓰거운 세젯물을 마시며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사도 했다. 북향의 원룸 오피스텔에서 앞에 숲이 보이는 정남향 투룸 빌라 방으로 옮겼다. 세젯물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뜻하던 대로 나의 사랑하는 화초들이 좋아할 것 같은 집을 찾아냈다. 우선 나는 이 집이 확실히 마음에 든다. 자는 방이 따로 있다니! 그러고도 방이 하나 더 남는다니! 집에 볕이 든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지. 오늘은 아직 이삿짐이 널브러져 있는 가운데 창가에 앉아 책도 몇 줄 읽었다. 책에 드리운 볕이 글자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했다. 우리 화초들도 이 집을 좋아하길 바란다. 쑥쑥 무성해지고, 이젠 열매도 한 번 맺어보길 바란다. 그나저나 이사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가. 남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동시에 여러 가지를 감당하며 치열하게 살고 있었단 말인가.
앞으로의 삶이 녹록지 않을 것이 확실하지만, 모두 감사하다. 기도한 대로 주셨다. 새로운 십자가도 함께. 마땅히 품어야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