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야.
놀랐지?
있잖아.
네가 어제 나한테 해준 조언은
내 인생의 역대급 조언이었어.
나는 요즘 어쩐지 내가 내 인생의
큰 분기점 앞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생각이 들거든.
연애 문제는 그냥 그 현상 중 하나인 것 같고.
내가 말하는 분기점이라는 것은 선택하는 삶과
선택을 외면하는 삶의 기로를 말하는데,
냉정하게, 나는 후자의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
어쩌다 누른 파란 버튼도 어쨌든 눌린 것이라,
그 수많은 파란 버튼의 결과를
유일한 필연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건,
빨간 버튼이 줄 것 같은 고통을 예단하고
뒷걸음질 쳤기 때문인 것 같아.
지금 일을 하게 된 것도 그렇고,
가족, 연인, 친구 관계에서도 그렇고.
고통을 피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파란 버튼의 길도 결국은 고통이었고... -_-
고통을 선택할 ‘자유’를 포기해 고통의 ‘노예’가 된 셈이랄까.
결국 살면서 언젠가 경험해야 하는 건
숨어서 피해지는 게 아니라 지연될 뿐이고,
삶은 그저 여러 고통 중 그나마
조금 더 의미있고, 유쾌함의 함량이 조금 더 높은,
조금은 더 ‘간지나는’ 고통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어제 너와 얘기하면서 정리가 됐다는 말이야.
어차피 도긴개긴이니 즐길 건 즐기고,
뭐가 됐든 부딪혀 겅험하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고,
느끼는 바를 솔직히 다 전달하는 것
역시도 부딪혀 경험하고.
대화의 맥락은 연애었지만,
그냥 내 인생에 전반에 적용할, 지금 내가 꼭
들었어야 할 말이었던 것 같아.
지금까지 나는 자꾸 자신을 고립시켜 왔는데 (파란 버튼...)
지금까지 너와의 인연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는 건
전적으로 내가 너에게 고마워 할 일이야.
나의 친구로 지금까지 남아 주어 정말 고마워.
가끔씩 만나는 것으로 시간의 마디를 느끼면
그것대로 좋고,
만나지 않을 때도 응원하고, 기도할께.
이것은 내 일기이자, 명상이자,
네가 준 큰 통찰에 대한 긴 감탄사이자,
짧은 감사의 글이었습니다.
답장은 이응 이응 하나만 보내세요. (제발 ㅋㅋㅋ)
좋은 하루!
2024 갑진년 4월 2일 화요일.
(메모장 손필기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