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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미아 May 14. 2024

백수 11일차 ‘공주 선언의 날’

점성술, 6하우스, 믿는 구석

올해로 연세가 아흔 다섯 되신 친할머니께서 카카오톡 사용법을 배우시고 얼마 전 손녀에게 톡을 보내셨다.


"공주님 할머니가 사랑해요"


공주님. 황홀했다. 살면서 별로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공주님이고 싶다.’




한 십 년 전쯤, 친구와 용하다는 곳으로 별점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점술가가 내 생년월일을 치고 당신 앞에 눈에 펼쳐진 무엇을 보더니 잠시 말을 떼지 못한다. "음, 일복을 타고나셨네요." 우리에게 몇 개의 동심원이 시계처럼 열두 조각으로 나뉜 '차트'를 보여주었다. 같이 간 친구의 차트에는 별자리 기호들이 시계 위에 고루 흩어져 있는데, 내 차트는 세 시 - 네 시 부근에 바글바글 몰려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점술사가 보인 그 잠깐의 침묵, 누가 봐도 어느 한 부분이 과밀했던 나의 별자리 지도, '일복을 타고났다'는 말과 '건강을 조심하라'는 말. 그것으로 이미 들을 말을 다 들은 것 같았다. 출력해 준 차트를 갖고 집에 들어와, 그 과밀한 칸의 정체가 무언지 검색했다.


"6 하우스: 고되고 힘든 환경/노동/노역/질병/아랫사람/애완동물/가축/노예"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 키워드를 읽는 즉시 나의 타고난 운명은 ’역시나 노예’였던 것으로 ‘판명’이 나버렸다. ‘그래. 지금까지의 삶이 다 설명이 된다.’ 혹시나 조금 더 희망적인 해설이 있지 않을까 여러 사이트를 뒤적여 보았지만, 키워드는 반복됐고 나머지는 다 그냥 애써 전하는 위로 같았다. 나는 온순한 노예처럼, ‘아랫사람’처럼 그 운명을, 아프지만 각오가는 돼 있었다는 듯 꾸욱, 위장에 눌러 담았다.




얼마 전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이라는 책에 '질문 완성 검사' 문항 몇 개를 보았다.


1)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_______이다.

2) 나는 _______ 할 때만 안전하다.


어렵지 않았다.


나에게 1)의 답은 '자유'다.

2)는 '병원에 가서 앉아있을 때'다.


다시금 나의 '차트'가 떠올랐다.


1) 자유: ”재미로 보는 거지, 뭐.“ 대수롭게 여기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저 점성술 차트는 생각보다 내면 깊은 곳에 똬리를 틀었고, 뭔가 너무 힘들 때면 바로 의식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가령 몸이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은데, 이번 달 카드값 걱정에 경비가 삼엄한 학생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설 때. 1층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올 때. 도대체 이 상태로 어떻게 수업을 하나 절망하는 와중에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안녕하세요~!" 할 때, 6 하우스가 생각났다. 내가 수업 다니는 집들은 대체로 부유했다(그래 보였다). 노예. 가축. 아랫사람. 더욱더, 조금 더 쥐어짜서, 열심히 일 해서 빚을 다 갚고 자유인이 되자. 돈은 곧 자유, 자유은 곧 돈이다.


2) 병원: 나는 항상 몸이 불편했다. 잠을 잘 못 자고, 항상 소화가 안 되고, 숨이 찼다. 그래서 병원에 자주 갔다. 그런데 병원에 앉아 대기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잠도 솔솔 오는 것이, 병이 다 나아 버린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도 늘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래, 난 별 문제가 없어!' 몸과 마음의 질병과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나올 수 있는 곳. 병원뿐이었다. 그래서 난 괜히 더 아프고, 더 병원에 자주 간 것 같다. 6 하우스, '질병'.




공주님.


공주님이어서 좋은 점이 뭘까? 나는 왜 공주님이고 싶을까?


내게 '공주님'은 <모래시계>의 윤혜린(고현정),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김태리)과 같은 이미지다.


순수하다. 겁 없이 제 뜻대로 군다. 그러다 위험해지면 어디선가 반드시 굉장한 호위무사가 나타난다.


순수하고, 자유롭고, 언제 어디서나 보호받는 존재.


믿는 구석이 있는 존재.


물론, 극 중에서 저 공주님들의 삶은 딱 그 믿는 구석이 단단한만큼 굴곡지다. 강하고 냉정한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에 저항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자기 뜻을 펼치며 스스로 엮어 간 비극적 운명을 감내해야 한다. 무엇보다, <모래시계>의 혜린의 가장 든든한 호위무사들은 결국 모두 죽는다. 아버지(박근형), 재희(이정재), 태수(최민수) 모두 죽으니까. <미스터 션샤인>의 애신이도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이호재), 구동매(유연석), 유진초이(이병헌) 모두 죽는다.


나는 궁금하다. 이 공주님들은 극이 끝난 이후에 어떻게 살아 가려나? 사는 게 어렸을 때처럼 제뜻대로 되지 않고, 언제나 발 벗고 뛰어와 지켜줄 존재도 사라졌을 때, 그 인생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나는 왠지 이 공주님들이 잘 살아갈 것 같다. 그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은 호위무사가 계속 나타날 것 같아서. 자석처럼 당연하게 믿을 구석을 당겨올 것 같아서.




이케가야 유지의 책 <삶이 흔들릴 때 뇌과학을 읽습니다>에서 말한다. 공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섭지 않다'라는 또 다른 기억이 공포를 뒤덮는 것이라고. (p. 28)


"공주님 할머니가 사랑해요"


할머니의 카톡을 되뇌이며 생각했다. 점성술 6 하우스의 '노예'와 '질병'의 저주가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공주님'으로 살며 그 기억으로 차트를 덮어버리겠노라고. 나는 태어난 그날부터 할머니의, 어쩌면 더 많은 이들의 공주님이었다고. 그래서 아주 부끄럽고 민망하지만 카카오톡의 내 이름은 ‘공쥬님(하트)’가 되었다. 내가 정말 나를 공쥬님이라 믿을 때까지 카톡에 나는 ‘공쥬님(하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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