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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Oct 20. 2020

일상의 언어로 말하는 밀레니얼의 정치

[퍼블리 큐레이터의 말] Ocasio-Cortez 관련 기사를 보고

2019년 1월, 퍼블리 큐레이터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선정하고 '큐레이터의 말'을 썼다. 퍼블리에서는 큐레이션 서비스 종료로 볼 수 없어 브런치에 옮긴다. 


선정 기사 https://nyti.ms/2HkiPN8


내가 나로 살아가게 하는, 정치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 ©Alexandria Ocasio Cortez


2018년 가을, 이 페이스북 게시물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힘을 가지세요(Own your power)”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우리는 모두 위대해질 수 있습니다(We can all be great)"로 끝나는 글 사이에 저를 가장 사로잡은 문장은 이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겐 나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나 자체로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For so many, it’s radical to feel comfortable in your own skin - and to know that you are more than enough, just as you are. 


저는 이 문장을 ‘내가 나로 살아가더라도, 편안하고 무탈한 일상을 만드는 일이 가장 급진적인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일상을 만드는 일이 대통령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거든요. 


이런 맥락에서, 정치의 역할은 각자의 삶이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주어로 불편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공적인 언어로 확장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을 벌이는 것. 이는 밀레니얼 세대가 공유하는 정치의 특성 중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즘 출퇴근길에 종종 코르테즈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관련 기사를 봅니다. 코르테즈가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정치인으로서 겪는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해서요. 그만큼 코르테즈가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발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국 정치 지형을 깊게 알고 있지도 않고 관심있게 지켜봐온 것도 아닌데 이런 관심이 생겨난 것이 저에게도 생소한 일입니다. 물론 29살의 역대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이 14년째 자리를 지키며 11선을 노리던 기성 남성 정치인을 이겼다는 이야기도 충분히 관심이 가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오카시오 코르테즈를 믿게 한 순간들 

매료된 제 마음을 단서로 삼아 오카시오 코르테즈라는 정치인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제가 보는 그의 삶이 몇몇의 장면 뿐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 몇몇의 장면만으로도 이만한 영향력을 만든다는 건, 굉장한 힘이니까요. 

©Adcocate  


일상의 언어로 말합니다

2019년 1월 19일에 있던 여성행진(Women’s March) 연설에서 그는 “정의는 책 속에만 있는 의미가 아니다. 정의는 물을 마시는 것이고, 숨을 쉬는 것이고, 투표를 쉽게하는 것이고, 여성이 얼만큼의 임금을 받는가에 대한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간결하고 정확한 방향을 가진 언어는 목표를 구체화시킵니다. ‘어떤 정책을 어떻게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인가’와 ‘나는 어떤 일상을 만들 것인가’는 움직이고 설득하는 사람의 동기를 다르게 만드니까요.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목표를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데 망설임 없어 보입니다. 상대 후보와의 선거 유세 비용이 큰 차이를 보이자 “더 많은 돈 정도로는 아주 큰 돈을 이길 수는 없다.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이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족한 자원에도 기업의 후원을 전혀 받지 않고 100% 개인 후원을 받는 것도 이 배경과 닿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 합니다.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선거 유세 영상은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바텐더로 일하던 그는 선거 운동 캠프를 자신의 집에 꾸렸습니다. 당선 후에는 워싱턴 D.C의 집값이 비싸서 어떻게 집을 구할지가 고민이라고 말합니다. 


인스타그램으로 요리를 하는 모습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등의 자신의 일상을 틈틈히 공유합니다. 앞서 말했던 유세 영상도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집에서 준비를 하고 나서서 지하철 플랫폼에서 구두로 갈아신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따라갑니다.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맥락을 공유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것을 느끼는지 일상을 공유하다보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는 이유도 결국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맥락을 알아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요리를 하면서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등 일상에서도 능동적으로 맥락을 나눕니다.


워싱턴 D.C.에서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정 스케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공유합니다. 신규 의원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는 신기함과 호기심을 드러내며 ‘호그와트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등의 소감을 전해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새로 뽑힌 미국 여성 하원의원의 사진을 공개했다. (왼쪽부터) 오카시오 코르테즈, 메사추세츠주 최초의 흑인 여성 하원의원 아야나 프레슬리, 최초의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 일한 오마르, 최초의 원주민 출신 여성하원 데브라 할랜드, 텍사스주 최초로 중앙 정계에 진출한 히스패닉 여성 하원의원 베로니카 에스코바르, 최초의 원주민 출신 여성 하원의원이자 캔사스주 최초 공개 성소수자 의원인 셔리스 데이비스 © Alexandria Ocasio-Cortez  


전면에 나선 정치인을 보는 것과 일상 안에 녹아든 정치인을 보는건 다릅니다. ‘정치적으로 이러저러한 의미를 가진 여성 의원이 당선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과 ‘우리는 의사당에 있고 내일이면 선서를 할 예정이다'라고 말하는건 온도가 다릅니다. 각자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맥락을 알고 있다면 두 문장으로도 충분합니다. 실제로 사진 속 여성 의원은 모두 ‘최초’라는 의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이 수단이 되지 않습니다 

나를 주어로 하는 정치도 상황에 따라 교환이 있겠지만 목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선택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에너지를 얼마나 소진하고 있는가만을 이야기하는게 아닙니다. 오해로부터 나를 지키고, (원하던 원하지 않던) 선택에서의 타협을 쉽게 하지 않습니다.


나의 일상에 대한 애정은 문제를 근사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 자원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존중하고 애정하는 마음은 여유를 주거든요. 여유가 있을 때 유머가 생기고요. 이런 힘은 신기하게도 금방 다른 이들에게 확산됩니다. 함께 하고 싶고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들죠. 


오카시오 코르테즈가 대학 시절에 찍은 댄스 영상으로 그를 폄하하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는 집무실 앞에서 춤 추는 영상과 함께 “공화주의자들이 대학 시절에 춤추는 여성을 추잡하다고 생각한다면 의회에서 춤을 추는 여성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말을 올립니다. 이미 지지자들은 즐거워하며 그 영상에 다양한 음악을 입혀 올리고 있었고요. 


© Alexandria Ocasio-Cortez 인스타그램


복잡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그래서 확장되어 가는 코르테즈의 영향력

앞으로도 저는 코르테즈라는 정치인을, 코르테즈가 만들어내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 입장에서의) 쾌감과 뜨거움, (지지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의) 당혹스러움과 가소로움을 흥미롭게 관찰할 듯 합니다.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그가 사람들에게 여러 의미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게 신기하고 근사하거든요. 


아무리 좋아하는 코르테즈라도 인정할 부분은 있습니다. 코르테즈가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해도 세상이 단번에 바뀌진 않을 겁니다. 물론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겠죠. 그러나 ‘내가 나로 살아가더라도 편안하고 무탈한 일상’을 모두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만들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런 일상이 가장 어렵고 급진적이라고 표현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념과 당위를 기반한 변화도 간단하지 않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다르더라도) 합의된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반면 나를 주어로 하는 정치는 다층적인 욕망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복잡합니다. 복잡해도 구체적이고 선명하기 때문에 코르테즈가 만들고 있는 영향력처럼 흥미롭고 매력적이죠. 


코르테즈가 얼마나 더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해나갈지, 그 영향력을 어떻게 다루어 낼지, 그 과정이자 결과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가 가능한 가장 큰 영향력을 다루면서도 많은 것을 단순화하지 않고 복잡한 맥락을 구체적으로 나누어가길 바랍니다. 


같은 밀레니얼 세대로서 그의 일상의 정치와 저의 일상의 정치가 어느 지점에서 공명할거라 믿고 있고, 그 말은 즉슨 그의 실험은 곧 우리의 실험이라는 뜻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가 반복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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